정치원로 20명의‘내년 4월 퇴진’요구에 반대한다
망국언론 지적하고, 성난 민심 가라앉히는 게 정상
   
▲ 조우석 주필
1789년 프랑스대혁명의 대소동을 대서양 건너편에서 유심히 지켜봤던 게 영국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였다. 근대의 출발을 알렸던 프랑스대혁명이란 그가 보기엔 "경악할 만한 사건"에 다름 아니었었다. 전시대와는 차원이 달랐기 때문인데, 종교개혁 이후 유럽에서 발생했던 어떤 혁명과 구분됐고, 엄청 요란하고 전방위적 변화였다.

그건 거의 종교였다. 프랑스대혁명 초기를 이끌었던 자코뱅당의 개혁 열정에는 인간 구원, 사회 구원의 꿈, 이를 위한 정신개조 노력이 강렬했다.(그래서 마르크시즘과 통하며, 실제로 역사적 연결고리가 있다.) 그래서 사회적 광기에 다름 아니었다.

버크는 '자코뱅 복음'이라며 야유를 보냈고, 프랑스대혁명의 와중에 혁명적 인간이 무수히 탄생했다고 개탄했다. 실제로 그때 평등이라는 이름의 평준화가 강요됐고, 자유란 명목의 광기가 출렁댔다. 모두가 열광할 때 누군가는 냉정한 분석을 해야 하는데 버크가 그러했고, 지금까지 그는 서양근대지성사에서 보수주의철학의 아버지다.

에드먼드 버크가 광화문 촛불을 봤다면…

옛날 얘기하자는 게 아니다. 자코뱅 복음에 빛과 그늘이 함께 있었듯이 2016년 말 한국사회는 '광화문 복음', '촛불 광기'에 사로 잡혀 있다. 박근혜 대통령만 축출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은 모두 행복해질 수 있다는 식의 가짜 주술이 판을 친다.

이게 과연 정상인가를 누군가는 되물어야 하는데, 지금 수두룩한 이들이 제정신이 아니다. 프랑스대혁명의 와중에 무수한 혁명적 인간이 탄생했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멀쩡한 사람과 기관들이 혁명적 인간, 혁명적 기구로 변질되고 있다. 일테면 여성시인 최영미가 지난 26일 토요일 촛불집회를 두고  "광화문은 해방구였다"고 선언했다.

놀랍게도 그건 동아닷컴에 실렸던 촛불집회 참관기다. 중견시인 한 명과 주류언론 동아일보가 혁명적 인간, 혁명적 기구로 함께 변질된 특이한 케이스다. 이 와중에 중앙일보는 더 날뛴다. 요즘 국내 일간지 중 가장 거칠고 쉰 목소리를 그 신문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새 혁명일보로 변신한 그 신문의 오늘자(28일) 사설이 우릴 거듭 놀라게 한다. 제목부터 '시민혁명 앞에 선 대통령, 질서있는 퇴진 결단하라'로 되어있는데, 박 대통령이 이번 주 대국민담화를 통해 하야 시점을 제시해야 한다는 압박이다. "5주간 타오른 촛불은 빼앗긴 주권을 회복하려는 국민의 혁명적 외침"이란 주장도 가관이지만, 다음 문장을 보라.

"일개 사인(私人) 최순실과 국정 최고책임자 박 대통령이 한 몸이 돼 국정을 농단한 전대미문의 국치(國恥)를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단죄하고, 이런 초대형 범죄를 가능케 한 앙시앵 레짐(구체제)까지 총체적으로 개혁하라는 민심의 역사적 요구인 것이다."

"초대형 범죄", "전대미문의 국치", "민주주의 이름으로 단죄", "앙시앵 레짐까지 총체적 개혁"…. 예전 대학가의 대자보도 이런 호들갑을 떨지 않았지만, 중앙일보는 균형을 너무도 잃었다. 왜 그들은 미르-스포츠K재단에 비해 훨씬 규모가 컸고 내용도 음험했던 김대중-노무현-박원순 관련 재단의 불법모금에 입도 벙끗하지 않는가?

   
▲ 2016년 말 한국사회는 '광화문 복음', '촛불 광기'에 사로 잡혀 있다. 박근혜 대통령만 축출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은 모두 행복해질 수 있다는 식의 가짜 주술이 판을 친다. 이번 광화문 촛불시위는 1987년 6월 민주화항쟁 이후 또 하나의 '즐거운 시민혁명'이 아니다. 그러기는커녕 당초의 내 지적처럼 4.19와 광우병 난동이 하나로 합쳐져 썩 고약한 양상이다. 이 광기란 그토록 걱정해오던 체제변혁 민중혁명의 카운트다운일 수도 있다. /사진=연합뉴스

왜 한국의 지식인-원로는 모두 쟈코뱅인가?

국가반역에 해당하는 부역행위, 불순한 모금에는 눈을 감은 채 엉뚱한 일에 삿대질인가? 중앙뿐인가? 한국사회 전체가 좌익무죄, 우익유죄의 이중 잣대를 고집하고 있는데, 기회에 할 말을 더 하자. 여야 정치원로들의 17일 제언도 균형을 잃었다.

전직 국회의장을 비롯한 정치권 안팎의 원로 20명이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 선언을 하고 적어도 내년 4월까지는 하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총리 후보 추천과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는 개헌도 주문했지만, 왜 그들은 정말 중요한 사안에는 입을 다물었는가? 두 가지가 빠졌다.

한 달 넘은 최순실 게이트에서 우리가 참담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건 국가리더십의 공백만이 아니고, 대한민국이 송두리째 떠내려가고 있는 듯한 모습이 아니던가? 그런 현상에 원인제공한 것은 이 땅의 망국언론이란 지적을 정치원로들이 따끔하게 했어야 옳았다.

얼마 전 정홍원 전 국무총리가 발표한 글처럼 "진상이 드러나기도 전에 보도를 통해 모든 내용이 기정사실화되는" 마녀사냥의 구조와 '언론의 난(亂)'의 성격을 왜 그들은 외면했을까? 또 있다. 그들이 진짜 원로라면 '분노하는 민심'이란 괴물에도 일침을 가했어야 했다.

그게 북핵 위기에 따른 엄중한 안보환경, 추락하는 경제상황을 염두에 둔 큰 훈수였을 것이다. 27일 원로들의 제언에서 지금 크게 흔들리고 있는 국가정체성 문제까지 언급해줬더라면 물론 더 좋아있으리라. 그게 대통령만 쫓아내면 대한민국이 행복해질 것 같다는 거대한 착각 속의 우리에 대한 가장 따끔한 충고였을 것이다.

여전한 체제변혁 민중혁명의 그림자

정리하자. 이번 광화문 촛불시위는 1987년 6월 민주화항쟁 이후 또 하나의 '즐거운 시민혁명'이 아니다. 그러기는커녕 당초의 내 지적처럼 4.19와 광우병 난동이 하나로 합쳐져 썩 고약한 양상이다. 이 광기란 그토록 걱정해오던 체제변혁 민중혁명의 카운트다운일 수도 있다.

지금은 당장 멋진 시민혁명으로 포장되고 있지만, 상황은 유동적이다. 지금도 걱정이지만 12월 2일 혹은 12월 9일 국회 탄핵 일정 이후 '준(準)혁명적 상황'이 '혁명적 상황'으로 또 한 번 뒤바뀔 것이다. 그때 이 나라의 언론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고, 한국 전체가 녹아내리는 최악의 불행도 얼마든지 예상된다.

뿐인가?, 검찰과 특검, 반역집단 국회 그리고 배신의 지식인집단은 또 한 번 '광화문 복음', '촛불 광기'에 정신을 빼앗길 것도 우려된다. 그게 에드먼드 버크가 말했던 '자코뱅 복음'과 거의 같은 구조라는 게 내내 두려울 뿐이다. 내 생각 변함없다. 기회가 나는 대로 한국사회를 향해 소수의견을 낼 생각임을 새삼 밝혀둔다. /조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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