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68%·미국 65%·일본 40% 보편화…중소기업 경쟁력 향상 효과
협력업체(하청 중소기업)로부터 제품을 납품받는 대기업이 단가 인하 압력을 행사하는 것을 ‘납품단가 후려치기’라고 한다. 재벌 대기업이 한국 경제의 ‘독버섯’이라고 주장하는 좌파들은 이러한 납품단가 후려치기가 경제난의 주범이라고 몰아 부친다.

대기업이 극심하게 낮은 납품단가로 협력업체를 수탈해, 협력업체의 투자와 고용 여력이 떨어진다는 게 좌파들의 핵심 논리다. 이러한 논리는 결국 대기업의 단가 후려치기가 산업 경쟁력 약화와 실업률 급등을 초래해 민생 경제를 파탄으로 이끈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낙수효과로 전 국민이 잘 살게 된다는 주장은 사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시장 경제의 운영 원리를 전혀 모르고 하는 주장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수백만 원에 육박하던 32인치 LED TV의 가격이 100만 원 아래까지 떨어졌고, 과거의 벽돌 같은 휴대전화보다 지금의 스마트폰이 더 저렴하다.

자동차처럼 가격이 오른 공산품도 있지만, 지금 보편화된 기능들이 10년 전에 장착됐다면 그 가격은 지금보다 훨씬 높았을 테니 실질 가격은 떨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 이러한 현상은 좋은 제품을 싼 값에 공급받길 원하는 소비자들의 본성이 기업들의 치열한 생산성 혁신을 유도하면서 빚어진 결과다. 

이처럼 수요 측면에선 가격 인하 압박이 상존한다. 이를 이겨내고 혁신을 통한 품질 향상과 원가 절감을 달성한 기업들이 경쟁자를 제치고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선택 받는 것이다. 선택 받는 기업이 성장하는 기업이고, 성장하는 기업이 투자도 하고 고용도 한다. 삼성전자도 현대차도 모두 세계 시장에서의 혹독한 가격 인하 압박을 견뎌내고 품질 향상과 원가 절감을 이뤄냈기에 굴지의 대기업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 2011년~2015년의 재무제표를 분석해보면, 삼성전자 협력업체 20개 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6~9%, 현대차 협력업체 14개 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5~6%로 30대 그룹 상장사 평균인 4~5%보다 높다./사진=연합뉴스


소비자와 협력업체 사이에도 이러한 원리는 그대로 적용된다. 다만 협력업체들은 최종재가 아닌 그 최종재에 포함되는 자본재를 생산하는 까닭에 약간의 착시효과가 생긴다. 소비자로부터의 가격 인하 압박이 협력업체에 직접 전달되지 않고, 대기업이라는 ‘대리인’을 거쳐 전달되기에 우리 눈엔 대기업이 협력업체를 수탈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요컨대 대기업의 단가 후려치기는 최종재에 대한 소비자들로부터의 가격 인하 압박이 반영된 결과일 뿐이다. 

일각에선 이러한 주장에 대해 대기업이 중간에서 최종재 판매로 얻은 이익을 독점하고, 협력업체엔 과도하게 낮은 납품단가를 요구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가격은 시장에서의 경쟁 상황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만약 협력업체가 경쟁사 대비 압도적으로 낮은 가격에 높은 품질의 자본재를 납품할 능력을 갖춘다면, 대기업 입장에선 단가를 후려칠 수가 없다. 그 가격에 그 정도 품질의 제품을 납품할 수 있는 업체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단가를 후려치는 것은 좋은 제품을 더 싸게 납품해 줄 수 있는 업체가 시장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자본재 시장 내부의 치열한 경쟁이 단가를 결정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가 인하를 요구하지 않는 것은(또는 협력업체를 바꾸지 않는 것은) 시장에서 저가의 고품질 자본재가 공급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이는 곧 혁신의 둔화로 이어져 자본재 산업, 나아가 최종재 산업의 경쟁력까지 약화시킬 공산이 크다. 그 사이 세계의 다른 중소기업과 대기업들은 생산성 혁신을 통해 한국 기업들을 추월할 것이다. 결국 상생이란 명분 하에 이뤄지는 단가 보전이 대기업과 협력업체의 ‘동반자살’로 이어지는 셈이다. 

이 대목에선 흔히들 '외국 기업 천사론'을 설파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외국의 기업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2013년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외국계 조사기관인 나우앤퓨처가 독일/미국/일본의 매출액 기준 상위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독일 기업의 68%, 미국 기업의 65%, 일본 기업의 40%가 다수의 협력업체에 일률적으로 단가 인하를 요구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임을 감안하면, 실제론 더 많은 기업들이 일률적 단가 인하를 요구했을 가능성이 크다. 

선진국 중소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이 한국보다 높다는 근거를 드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선진국들의 경우, 중소기업 영업이익률 뿐 아니라 대기업 영업이익률도 한국보다 높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오랜 기간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보다 우수한 제품을 만들어 내는 기업들이 많아졌을 테니 그런 차이가 생기는 게 당연하다.

특히 선진국 중소기업들 중에는 다른 나라 기업들이 생산해내지 못하는 자본재를 독점 납품하는 ‘히든 챔피언’들이 많다. 상기한 설문조사 결과를 참고해보면, 이들의 성장 역시 혹독한 가격 인하 압박에 대응하여 지속적으로 생산성을 높여왔기에 가능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의 단가 후려치기 때문에 정말로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면, 왜 그리도 대기업의 협력업체가 되기 위해 안간 힘을 쓸까./사진=미디어펜


이러한 결론은 엄청난 단가 후려치기에 시달리는 것으로 유명한 삼성전자, 현대차 협력업체들의 경영 성과를 통해서도 충분히 확인 가능하다. 2011년~2015년의 재무제표를 분석해보면, 삼성전자 협력업체 20개 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6~9%, 현대차 협력업체 14개 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5~6%로 국내 중소/중견기업 평균인 3~4%는 물론 30대 그룹 상장사 평균인 4~5%보다도 높다.

삼성전자, 현대차와의 납품 거래 과정에서 끊임없이 생산성 혁신을 거듭한 결과, 전 세계 수많은 기업과도 납품 거래가 가능해지면서 얻어진 성과다. 현대차 협력업체들의 경우 현대차와의 납품 거래 규모보다 해외 완성차 업체로의 수출 규모가 더 클 정도이고, 유진테크와 신흥정밀 등 삼성전자 협력업체들의 해외 진출도 활발하다. 

이들 협력업체는 1차 벤더이기에 그나마 나은 것일 뿐, 2/3/4차 벤더로 갈수록 협력업체의 경영 성과는 악화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하위 벤더가 생산하는 제품일수록 요구되는 기술 수준이 낮아져, 중소기업 간의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이들 역시 치열한 혁신을 통해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 수밖에 없다. 여기서 라고 시장 원리가 적용되지 않겠는가? 애플의 영업이익률이 근 5년 간 25%~35%로 고공행진을 이어갔지만, 애플의 제품을 생산하는 타이완 9개 1차 벤더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3% 내외에 머문 것도 이들에게 자체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중소기업들이 단가 후려치기 때문에 정말로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면, 왜 그리도 대기업의 협력업체가 되기 위해 안간 힘을 쓴단 말인가? 실제로는 안정적인 수익 창출은 물론, 원청 대기업의 기술 지원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최종재의 품질은 결국 고품질 자본재의 안정적인 공급에 달려있으므로, 대기업도 협력업체가 성장하길 바라는 게 당연하다. 따라서 '납품단가 후려치기'라는 자극적 수사로 대기업 비판 여론을 유도하는 것은 혁신이 아닌 '지대(rent)'를 추구하려는 중소기업과 포퓰리즘에 경도된 정치 세력의 선동일 뿐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박진우 리버럴이코노미스트 편집인


(이 글은 자유경제원 젊은함성 '박진우의 경제논단'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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