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죄·내부거래·담합…경우에 따라 다른 '비현령이현령' 과잉규제
재벌 대기업들이 한국 경제 성장에 지대한 공로를 세웠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김과 석회석을 수출해 먹고 살던 세계 최빈국이 전자,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철강 등 여러 분야에서 경쟁력을 두루 갖춘 산업 강국의 반열에 등극한 것은 재벌들의 강력한 투자와 혁신 덕분이었다. 지금도 한국 대기업들의 영업활동 대비 투자활동 현금흐름 비중은 80%에 육박해, 미국, 일본 등 선진국 대기업들보다 훨씬 높은 편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재벌 대기업과 그 오너들의 소위 ‘불공정 행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그 불공정 행위라는 것들 중 대표적인 몇 가지를 꼽자면, 오너 일가의 사익 편취 행위로 간주되는 배임과 부당내부거래(일감 몰아주기)가 있고, 기업 차원에서 이뤄지는 납품단가 후려치기, 골목상권 침해, 중소기업 기술편취, 담합 등이 있다. 

이 중 납품단가 후려치기와 골목상권 침해는 시장 경제의 운영 원리 상 지극히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경영 활동임을 제 5부와 6부에 걸쳐 밝힐 것이다. 이번 편에선 나머지 4가지 불공정 행위의 실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 외국 기업들이 담합하여 한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부당 이득을 취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공정위는 한국 기업 잡기에만 몰두할 게 아니라 이러한 국제 담합을 조사하는 데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사진=미디어펜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본인의 임무를 위배함으로써 재산상의 이득을 취하거나 제 3자로 하여금 이득을 취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할 경우 성립하는 범죄’를 일컫는다. 경영자가 자신의 사익 추구를 위해 회사 돈을 함부로 유용하여 주주들에게 손실을 입혔을 때 바로 이 죄목이 적용된다. 회사 돈은 그 회사 모든 주주들의 재산이고, 경영자는 그 재산을 관리하도록 주총에서 선임된 대리인이란 점에서 법 적용이 가능하다. 여기까지만 보면, 남의 돈 떼먹은 사람에게 죄를 묻는 게 뭐 그리 대순가 싶다.

문제는 현실에서의 법 적용에서 나타난다. 대체로 한국 검찰과 사법부는 오너 경영자들이 우량 계열사로 하여금 부실 위험이 있거나 신사업을 영위하는 계열사를 지원토록 했다가 손실이 난 경우에 이 죄목을 적용한다. 이러한 계열사들은 규모가 영세하다보니 오너 일가의 지분율이 높은 경우가 많은데, 사법당국은 이들에 대한 지원을 ‘경영자의 사익 편취를 위해 우량 계열사 주주들의 재산을 부당하게 빼돌린 행위’로 보는 것이다. 

물론 그런 의도로 계열사를 지원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의도로 지원했을 가능성도 분명 존재한다. 기업 집단 전체의 이익을 위한 경영상의 판단일수도 있는 것 아닌가? 특히나 신사업을 영위하는 계열사라면 경영자가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선진국에선 판례와 관련법을 통해 ‘경영 판단의 원칙(Business Judgement Rule)'을 폭넓게 적용하고 있다. 경영 판단의 원칙이란 ’경영자가 기업 이익을 위해 신중하게 판단했다면 예측과 달리 손실이 발생한다 해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원칙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독일, 일본 등과 더불어 배임을 형벌로 다스리는 몇 안 되는 국가다. 대다수 국가에선 배임에 대해, 주주들이 집단소송이나 대표소송 등으로 경영자에게 민사상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데에 그친다. 그나마 독일과 일본의 경우에도, 경영 판단의 원칙을 관련법에 명시해뒀다. 

또한 우리나라의 경우 상법은 물론, 형법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까지 배임죄 처벌 규정을 두고 있어 법망이 너무 엄격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영 판단의 원칙마저 법에 명문화하지 않는다면, 경영자들의 모험 경영에 큰 제약이 될 것이다. 시장 환경의 변화 속도가 나날이 가팔라지는 21세기에 매우 부적합하다. 

   
▲ 재벌 대기업들이 한국 경제 성장에 지대한 공로를 세웠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김과 석회석을 수출해 먹고 살던 세계 최빈국이 전자,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철강 등 여러 분야에서 경쟁력을 두루 갖춘 산업 강국의 반열에 등극한 것은 재벌들의 강력한 투자와 혁신 덕분이었다./사진=미디어펜


한편 부당내부거래는 대기업 집단 소속 회사가 제품과 서비스를 오너 지분율이 높은 계열사에 현저하게 싼 가격으로 판매하거나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구매하는 행위를 말한다. 일감몰아주기는 이처럼 유리한 거래 조건으로 자사의 일감을 특정 회사에 몰아주는 행위다. 이러한 행위들은 공정거래법의 규제를 받는다. 부당 지원의 주체가 되는 계열사의 주주들에게 결과적으로 손실을 입히고, 기업 간의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지난 1부에서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65%의 다락같은 상속세가 부당내부거래와 일감 몰아주기의 주원인이 되고 있음을 잠깐 언급했다. 상속세 개혁 없이는 어떠한 규제로도 부당내부거래를 근본적으로 막을 순 없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행위 자체가 제품의 가격과 품질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까닭에, 오너 입장에서도 심각할 정도로 부당 지원에 나설 순 없다. 굳이 힘들여 규제할 필요성이 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해당 행위가 공정하지 못한 것만은 사실인 만큼, 규제의 취지 자체는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계열사 간의 내부거래를 부당한 것으로 보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대단히 위험하다. 표면적으론 유리한 거래 조건으로 보일지라도, 계열사의 제품과 서비스가 다른 회사들의 것보다 질적으로 우수해서 비싼 것일 수도 있고, 가격 경쟁력이 높아 저렴한 것일 수도 있다. 

현대모비스와 삼성전기 같은 대기업 부품 회사들의 영업이익률이 중소 협력업체들보다 높은 이유도, 생산 과정상 요구되는 기술 수준이 높아 중소 협력업체들은 만들어내지 못하는 고급 부품들을 이들이 공급하기 때문이다. 일감 몰아주기의 경우, 경영상의 기밀이 외부에 유출되지 않도록 하거나, 반복적인 대규모 거래를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진행하기 위한 목적인 경우가 많다.

   
▲ 대체로 한국 검찰과 사법부는 대기업 오너 경영자들이 우량 계열사로 하여금 부실 위험이 있거나 신사업을 영위하는 계열사를 지원토록 했다가 손실이 난 경우에 배임죄를 적용한다./사진=연합뉴스


한편 중소기업의 기술을 부당하게 편취하는 행위는 별다른 변명의 여지가 없는 ‘도둑질’임이 자명하다. 특히 협력업체의 기술 자료를 다른 중소기업에 넘겨주고 싼 값에 부품을 조달받거나, 계약 체결을 위한 협의를 빌미로 중소기업의 기술 자료를 취득한 뒤 맘대로 유용하는 등의 악질적 행위는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 하도급법 및 부정경쟁방지법 상의 보호 대상 기술 범위 확대, 징벌적 손해배상 한도액 상향, 공정위의 상시적 직권조사 등 다양한 정책 수단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

담합 역시 시장에서의 경쟁을 제한해 소비자 후생을 감소시킨다는 점에서 강력히 규제함이 마땅하다. 다만 최근 공정위가 조사한 CD금리 담합 사건이 무혐의로 결론 난 것에서 보듯, 자연스러운 균형 가격 형성을 무리하게 담합으로 몰아가는 행태는 옳지 않다. 또한 외국 기업들이 담합하여 한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부당 이득을 취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공정위는 한국 기업 잡기에만 몰두할 게 아니라 이러한 국제 담합을 조사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에도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박진우 리버럴이코노미스트 편집인


(이 글은 자유경제원 '박진우의 경제논단'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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