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 실체 없는 민심과 여론조사 등에 업고 법치주의 파괴 선동
   
▲ 전동욱 변호사
법치주의(法治主義)라는 이름의 진주목걸이

법치주의는 넓게는 법에 의한 정치를 말하며, 절대주의 국가를 부정함으로써 성립한 근대 시민국가의 정치원리이다. 이 원칙은 영 ·미(英美)에서는 ‘법의 지배’로 전개되었고, 유럽 대륙에서는 ‘법치국가’로서 발전하였다. 법의 지배란 원래 ‘누구도 법 이외의 것에 지배되지 않는다. 주권자도 법의 지배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영국 헌법의 기본원칙을 말하며, 의회 우위의 원칙과 결부되어 법을 지상으로 하는 입장이다.

법치주의는 매우 포괄적 개념이고 지리적·사상적·역사적으로 다양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만, 대체적으로 국가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거나 국민에게 의무를 부과할 때에는 반드시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에서 제정한 법률로써 해야 하고, 행정작용과 사법작용도 법률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법치주의에 의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고 법적 안정성과 일반인의 생활의 예측가능성이 부여될 수 있다.

병신년(丙申年)인 올해 대한민국에서는 두 가지가 새로이 조명을 받고 있는데, 첫 번째가 헌법조항이고, 두 번째는 법치주의이다. 넓은 의미에서는 전자보다는 후자가 보다 포괄적인 개념이라 할 것이므로 이하에서는 2016년 대한민국의 법치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법치주의의 의의 1)

(1) 형식적 법치주의

형식적 법치주의는 국가 권력의 내용과 행사과정을 법에 규정함으로써 이를 제한하고 궁극적으로 국민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는 국가 구성의 본질적 요소를 법으로 규정하여 국가 기관을 구성하고, 그것으로부터 행사되는 권력의 내용을 정함으로써 국가기관과 권력의 구성원리로 작용하게 된다.

형식적 법치주의는 소극적인 측면에서 국가권력의 제한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국가 기관의 여러 가지 권한과 기능을 규정하고, 국가기관간의 권한을 조정하여 국가 활동의 전제 조건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국가기관 활동자체를 법치주의 원칙에 부합하게 함으로써 권력의 남용을 억제하고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고자 함이다. 따라서 법치주의에 따라 통치 질서가 이루어지면 일면 그것으로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 보장이 가능하다. 국가권력이 분립되고 법에 의한 통치에 의해 법적 안정성이 이루어지게 되어, 국민의 자유로운 활동이 국가의 자의적인 행사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형식적 법치주의에서는 권력분립의 원리, 사법권의 독립, 법치행정, 법에 의한 권리보호 등을 강조하게 된다. 하지만 형식적 법치주의는 법에 의하기만 하면 국가권력의 합법성과 정당성을 부여한다. 또 이 관점에 의하면 합법성만 가지게 되면 모든 국가권력의 행사는 정당한 것이 되며, 일단 법의 형식을 갖추면 그 내용이 옳고 그름과는 상관없이 법률로서의 효력을 가진다.

따라서 이 관점에서는 법률의 형식으로 행해지는 국가권력의 자의적 횡포와 통치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즉 법에 의한 불법이 저질러 질 수 있다. 이로써 법은 독재정치체제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보호의 목적이 아니라 법을 이용한 합법적 통치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는 지난 11월 26일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제5차 촛불집회 현장에서 “가짜 보수 정치세력도 대통령과 함께 물러나야 한다”면서 “반칙특권을 일삼고 국정을 사사롭게 운영한 이들을 횃불로 불태워 버리자”는 말을 하였다./사진=연합뉴스


(2) 실질적 법치주의

역사적으로 형식적 법치주의는 독재정치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작용하여 오히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남용되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법률의 내용과 목적도 정의에 부합하는 정당한 것이어야 한다는 이념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형태의 법치주의가 실질적 법치주의였다. 형식적 법치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에는 부족하였다. 법의 내용이 국민의 자유 평등 정의에 위반되는 것이 명백할 경우에는 그 법은 정당한 법이 아니다. 따라서 실질적 법치주의 하에서는 국민들의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실질적 내용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는 곧 헌법이 추구하는 이념에 부합하는 것으로써, 실질적 법치주의는 헌법 이념과 부합하는 법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실질적 법치주의는 헌법 합치적 법치주의를 말한다.

실질적 법치주의는 형식적 법치주의의 내용에 수정을 가하게 된다. 권력 분립의 원리에 있어서 단순히 권력을 분산하여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국가기관의 권력을 통제하고 국민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법률 제정권자와 행사권자를 분리 독립하여야 한다.

절대권력은 절대부패 현상을 낳고, 부패화된 권력은 남용되어 국민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많다. 따라서 권력분립의 원리는 실질적 법치주의에서도 중요한 기능을 작용하게 되고, 권력 분립이 단순히 권력을 수평적으로 나누는 것에 지나지 않고, 지방자치제도, 직업공무원제도, 정당제도, 헌법재판제도 등 수직적 권력분립을 통해 실질적 법치주의를 달성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법치주의

이상에서 간략히 법치주의의 의의에 관해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이와 같은 법치주의가 실질적으로 작용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는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건(이하 “이 사건”이라 함)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저마다 “법치주의”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들이 말하는 법치주의의 실체는 어떠한 것인지, 즉 대한민국 사회에서 법치주의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1) “특권 없는 법치주의”

2011년 야권통합을 주도하며 출범했던 민주통합당이 강령에서 법치주의를 제외하려는 시도를 하였다가, 여론에 밀려 “특권 없는 법치주의”라는 용어로 두루뭉술 넘어간 일이 있었다. 당시 정세를 고려하면, 이들이 추구했던 “특권 없는 법치주의”는 약자에게는 너그러운 그러나 강자에게는 문언적인 의미의 법치주의를 관철하자는 정도로 해석이 된다. 결국 이 “특권 없는 법치주의”는 법치주의를 자의적으로 적용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며,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과 같은 정도로 형해화되어 사실 법치주의라 부르기도 민망한 것이었다. 그런데 2016년에는 이러한 법치주의의 탈을 쓴 자의적인 법해석이 법원에도 정착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필자를 “욱”하게 만들었다.

상앙은 위나라 공족의 서출 출신으로 일찍부터 형명학을 좋아하고 조예가 깊었다. 형명학이란 법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뜻을 가진 학문이므로 그는 철저한 법치주의의 관철을 주장했다. 한번은 진나라의 태자가 법을 위반하자 그는 태자의 스승인 공손가에게 자자형을 시행하였다. 자자형이란 먹물로 몸에 범죄자라는 문신을 새기는 것으로 지금의 무기징역과 다름없는 무거운 형벌이었다. 이 사건으로 사람들은 법 집행에 지위고하가 없음을 깨닫고, 귀족들은 물론 백성들까지 그의 법을 모두 따르게 되었다. 이처럼 법이 애초에 피도 눈물도 없이 적용이 된다면 모두 같은 입장이므로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과거 유교국가였다보니 아직도 전통 동양유가사상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동양유가사상에서 위정자(爲政者)는 덕(德)을 중요시하여 덕으로써 인심을 감화시킬 수 있어야 하며, 이를 하늘에 떠 있는 별에 비유한다면 위정자는 북극성이고, 백성은 그 둘레를 도는 별과 같은 형상이다. 준엄한 형벌로써 인민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못하며, 도덕적인 감화를 통해서 백성이 심복하여 국법을 준수하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법으로 다스리는 것을 법치주의(法治主義)라 한다면, 이는 바로 인치주의(人治主義)를 뜻하는데 이는 왕정에 대한 견제의 의미를 갖는 서구의 그것과는 다른 원칙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대한민국에서는 법에 따스한 온기를 불어 넣어야 한다는 류의 주장에 대해 큰 반론이 제기되지 않는다. 기계적으로 법을 적용하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동양유가사상의 인치주의(人治主義)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러한 결과 사법부는 법의 해석 및 적용에 있어 막강한 권한을 손에 넣었다. ‘양형’과 같이 법에 의해 제도적으로 보장된 권한의 행사뿐만 아니라, 법의 해석 및 적용을 임의로 한 결과 재판의 효과마저 뒤집는 것까지도 가능해진 것이다. 최근 이러한 사건의 예로는 변희재 대표의 명예훼손사건과 진중권 교수의 손해배상사건 그리고 조희연 교육감 허위사실공표사건이 있다. 문제는 이러한 “특권 없는 법치주의”라는 이름의 대한민국 고유 변종 법치주의는 앞으로도 더 맹위를 떨칠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에 있다. 

   
▲ 문재인 전 대표는 최근 한 월간지 인터뷰에서는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기각한다면 다음은 혁명밖에 없다”는 말을 하였다. 이는 결국 이들의 목표 역시 법치주의가 구현되는 사회는 아님을 드러낸 것이다./사진=연합뉴스

(2) 의회독재로 나아가기 위한 방패막이

이 사건에서 대통령의 조기 하야 혹은 탄핵 인용을 주장하는 이들의 논리의 핵심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을 운영하면서 비선 조직에 따른 인치주의를 행해 법치주의를 위반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대통령은 국정 수행 과정에서 지인의 의견을 들어 일부 반영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사회통념상 허용될 수 있는 일이고(White House Bubble), 역대 대통령도 같은 방식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하였으며, 대통령이 국민의 대표자로서 국민을 대신해 최종 의사 결정권자로서 대통령의 역할을 수행한 이상 법치주의의 위반은 아니라는 반론이 가능하다. 가사 이들의 주장처럼 법치주의 위반이 있다한들 이는 법치주의 안에서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며 이는 실정법 절차에 의한 해결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을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논리를 전개한다. 헌법은 조문에서 이미 대통령의 궐위를 예정하고 있고, 일반적으로 대통령 자의에 의한 조기퇴진도 그 궐위의 한 모습으로 인정되고, 헌법전문에 불의에 항거한 4.19정신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는 바, 국가의 주인인 국민은 그 헌법정신에 기초해 불의로 판명된 정치권력에 대한 탄핵은 물론 조기퇴진 역시 당연히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헌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법치주의에 포섭하려는 단순 말장난에 불과하다. 이는 다수에 의한 압박이 법치주의에 위배된다는 반박에  대해 그 원인이 무엇인가는 중요하지 않고 조기퇴진의 양태가 자의에 의한 형식이기만 하면 법치주의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런 논리라면 어떤 행위도 실정법에의 포섭이 가능하다할 것이다. 

탄핵이 가결된 뒤 국회에서는 대통령 권한 대행의 역할을 제한하는 법률안 및 탄핵을 당하거나 실형을 받은 대통령의 예우를 박탈하는 내용의 법률안을 발의하였다. 이는 이른바 법에 의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법률만능주의의 발현이며, 국회가 이른바 촛불민심을 등에 업고 의회독재를 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선거라는 정당한 절차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을 구체적 실체가 없는 민심과 여론조사로 끌어내리는 것이 인치주의에 농락당한 법치주의를 살리는 것이라는 주장은 불법을 제거하기 위해 불법을 자행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며, 이는 법치주의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심지어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문재인씨는 지난 11월 26일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제5차 촛불집회 현장에서 “가짜 보수 정치세력도 대통령과 함께 물러나야 한다”면서 “반칙특권을 일삼고 국정을 사사롭게 운영한 이들을 횃불로 불태워 버리자”는 말을 하였다. 또 최근 한 월간지 인터뷰에서는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기각한다면 다음은 혁명밖에 없다”는 말을 하였다. 이는 결국 이들의 목표 역시 법치주의가 구현되는 사회는 아님을 드러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법치주의라는 가치가 어떤 상황에 있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병신년(丙申年)인 올해 대한민국에서는 두 가지가 새로이 조명을 받고 있는데, 첫 번째가 헌법조항이고, 두 번째는 법치주의이다./사진=연합뉴스

맺으며

2013년 10월 신계륜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인터뷰에서 “하지만 전교조도 현행법을 지켜야 한다는 게 정부 논리인데...”라는 질문에 “교원노조법상 조합원 대상을 교사로 규정한 것은 맞다. 하지만 현행법을 논하더라도 그것은 사회적 협의가 필요하다. 지금 고용노동부가 근거로 든 조항은 민주주의적인 것이 아니다. 물론 이 법 조항에 따르더라도 노동조합법상 이런 해고자 조합원 문제로 설립 취소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은 없다. 모법에서 시행령에 이런 설립 취소 권한을 위임한 것 아니지 않느냐. 해고자 몇 명이 조합활동을 한다고 해서 설립 취소한다는 것은 정말 과도한 일이다. 준법을 강조하려면 행정지도라든가 기타 여러 방법을 통해서 개선해나가도록 하는 게 맞다. 법에 따라 취소한다는 것은 핑계라는 의구심이 든다.”라고 답하였는데, 국회의원이 법을 해석하는 이 대목이야말로 대한민국의 법치주의의 현 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전동욱 변호사


1) 통합논술 개념어 사전, 한림학사, 2007. 12. 15., 청서출판


(이 글은 21일 자유경제원 리버티홀에서 열린 ‘위기의 대한민국, 네 ‘욱’에게 듣는다’ 세미나에서 패널로 참석한 전동욱 변호사가 발표한 토론문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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