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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귀단장 고전특강(152)-담론 통해 지혜 익히는 이소크라테스의 수사학
승인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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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인 2017-01-26 09: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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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152)-개인의 의견(doxa)과 경험을 중시한 실천적 수사학
이소크라테스(BC 436~338) 『이소크라테스』

   
▲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이소크라테스(Isocrates, 기원전 436~338)는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 추구한 관념적 지혜보다 실천적 연설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한 교육자이다. 그는 연설문 대필가로 명성이 높았지만, 실제 대중 연설에 나서지는 않았다. 이는 스스로 웅변에 재주에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인 듯하다.  

이소크라테스가 작성한 세 편의 연설문을 감상해보자. 그의 연설문은 대부분 매우 복잡하고 긴 문장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른바 도미문(棹尾文, periodic sentence)의 형태이다. 이는 그가 연설문을 현장에서의 연설 대본으로 여기기보다, 연설 교습을 위한 열독을 염두에 둔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실제 연설에서 이렇게 긴 호흡으로 연설하기는 사실상 쉽지 않고 듣는 이에게도 전달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소크라테스의 연설문이 다소 장황하고 산만한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대칭 구조의 문장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등 문장 전체의 구조와 의미는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면밀하게 설계되었다. 이런 스타일로 인해 그의 연설문은 근대적 산문에도 영향을 준 수사학적 산문의 형식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된다.  

사람들은 이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에 속한다고 여겼지만, 자신은 정치 연설의 기법을 가르친다고 공언하는 다른 소피스트들이나 고액의 수업료를 선불로 받는 소피스트들을 비난했다. 이들이 정의나 진리 같은 가치에 관심이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나아가 천박한 지식을 가진 이들이 기계적인 웅변술을 아무에게나 가르치겠다고 공언하는 것도 혐오했다.  

반면에 이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수사학은 철학교육의 일종으로 여겼다. 그는 "철학교사의 일은 학생들에게 마음이 표현되는 모든 종류의 담론 형식들을 가르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 역시 수사학의 교육 목적을 궁극적으로 탁월한 연설가를 만들기 위한 것에 두었지만, 교사가 가르칠 수 있는 역할에는 일정한 한계를 인정했다.  

이소크라테스의 이런 면은 소피스트들이 모든 것을 가르칠 수 있다고 공언했던 것과 사뭇 다른 점이다. 이소크라테스는 연설문 『안티도시스』에서 교사의 역할 못지않게 연설술에 관한 학생들의 천부적인 재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울러 단순히 연설의 기법을 익히는 것보다 해당 영역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습득하고, 연설 기법을 활용하는 데 숙달되도록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타고난 재능과 전문 지식, 부단한 훈련과 경험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따라서 이소크라테스는 교사에 의한 수사학의 기법 전수보다 학생들이 스스로 연설문 작성을 연습하고, 동료들과 경합을 해보거나 비판적 토론을 행하는 일을 풍부하게 경험해 볼 것을 권장했다.

이소크라테스의 연설문 『소피스트들에 대하여』는 바람직한 연설 기술의 습득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이소크라테스는 탁월한 연술설이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요소로 "특정한 상황에의 적합성, 스타일의 적절성, 그리고 표현의 독창성"을 꼽았다. 또 연설가는 "자기의 주제에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연설을 할 줄 아는 동시에 그 속에서 다른 연설가들이 사용했을 경우에는 결코 동일한 정도의 효과가 발휘될 수 없는 요소들을 발견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소크라테스는 수사학에 필요한 지식을 바라보는 관점도 기존의 철학자들과 달랐다. 플라톤이 궁극의 지식(episteme)를 추구했다면, 이소크라테스는 개개인의 의견(doxa)를 존중했다. 이소크라테스는 궁극의 절대적인 지식은 인간 본성상 획득하기 어려우며, 인간의 경험에 기초한 의견을 통해 최선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관념적 지식보다 현실세계에서 사람들이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서 서로 나누는 담론의 중요성에 주목한 것이다.  

그러기에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담론의 기술을 연마하는 것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소크라테스는 "훌륭한 연설을 행하는 능력은 건전한 이해의 능력을 입증하는 가장 확실한 지표이며, 진실 되고 적법하고 정의로운 담론은 탁월성과 성실성을 지닌 영혼의 외적 표상"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연설을 행하면서 타인을 설득하는 데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주장의 방식을 인간의 사고 활동에서도 사용하게 되므로, 연설 능력의 계발은 지력의 증진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이 이소크라테스의 수사학적 지식관이다. 그는 천문학이나 기하학과 달리 사적 영역이나 공적 영역에서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이러한 연설술이 철학적 수련에 더 유용하다고 보았다. 이소크라테스가 "일체의 헛된 사변들과 우리 삶에 무의미한 일체의 활동들을 자신의 관심영역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이런 점에서 이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철학과 대립각을 세운다. 플라톤은 궁극의 지식(episteme)를 추구하는 이를 철학자로 보았다. 반면 이소크라테스는 개개인이 지닌 의견과 추측의 능력을 통해 가장 신속하게 최선의 결론에 이르는 통찰력을 획득하게 하는 학문에 헌신하는 사람을 철학자로 불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학문은 어떤 학문인가. 서로 다른 의견과 상반되는 생각들 속에서 듣는 이를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소크라테스는 이러한 담론의 기술을 추구하는 인간은 스스로 훌륭한 인간으로 담금질 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우선 청중을 설득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상대의 존경을 받기 위한 명예로운 삶을 추구하게 될 것이고, 해당 분야에 정통하기 위한 지혜 사랑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연설술은 철학자적 삶의 지향을 이끄는 도구 역할도 하는 셈이다. 이소크라테스가 되도록 많은 젊은이들에게 연설술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역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소크라테스는 담론의 기술을 각자가 원하는 바를 서로에게 명료하게 납득시키는 기술로써 인류가 문명을 이룰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능력으로 본다. 따라서 연설술을 "상당한 정도의 공부를 필요로 하며 열정과 상상력으로 무장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루어낼 수 없는 과업"으로 규정한다. 이 때문에 학생은 다양한 종류의 담론 형태를 학습하고 실제 사용하는 방법을 부단히 연습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완벽한 모범을 보여야 하는 교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연설술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소크라테스의 시각은 당대에는 어느 정도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그의 학원에는 많은 수강생이 몰렸고, 돈도 적지 않게 벌었던 것으로 보아 그렇다. 또 아테네에서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한 사람들에게 부과되던 기부금을 내는 공적 의무를 그가 이행한 것이 이를 입증한다.

그런데 그의 사후 그에 대한 평가는 그리 높지 않다. 오히려 그가 관념적 철학자로 비판했던 플라톤은 서양철학의 태두로 그 위세가 우뚝한 반면, 이소크라테스는 지금까지 서양 철학계에서 비주류로 주목을 크게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식 상대주의적 입장을 지녔던 이소크라테스는 절대적 지식을 추구하는 주류 철학계에서 소외되었다. 이는 개개인의 의견(doxa)를 지나치게 중시한 이소크라테스의 진리관이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불변의 진리와 지혜를 추구하려는 지적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그는 스스로 소크라테스와 같은 현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을 잘 알아주지 않는 아테네 대중의 몰이해와 과소평가에 대해 대응하기 위해 시범 연설문 <안티도시스>를 작성했던 것은 아닐까. 이소크라테스는 이 연설문에서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변론과 같은 양식을 모방하여 자신이 젊은이들을 타락시키지 않았으며, 아테네의 덕성을 갖춘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음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연설술 교습이 철학적 훈련 활동의 일환임을 역설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이 좋은 품성을 함양하는데 기여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삶이 "정의로운 삶"이었음을 자부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는 평생을 연설술이라는 도구를 갖고 "젊은이들로 하여금 편안한 삶을 경멸하고 대신에 스스로를 개선하는 일과 철학을 공부하는 일에 기꺼이 마음을 두도록 하는 일"에 매진했다. 그리고 총체적 삶의 가치에 대한 대중의 판결을 묻는 변론문을 남겼다. 이소크라테스의 삶과 사상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그가 <안티도시스> 변론의 마지막 문장에서 묻듯, 각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표결하는 일은 여전히 지금의 독자에게도 주어졌다. /박경귀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 ☞ 추천도서: : 『이소크라테스』, 이소크라테스 지음, 한기철 옮김, 한국문화사(2016), 238쪽.

[박경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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