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 불확실성 확대…인적 교류 중요성 부각
삼성‧SK 총수 출금 장기화 시 경쟁력 하락 우려 가중
[미디어펜=조한진 기자]재계의 ‘글로벌 인맥’ 관리에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로 주요 그룹 총수들의 발이 묶이면서 해외 사업과 교류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 특히 삼성과 SK의 위기감이 크다. 그룹 리더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태원 SK회장의 해외 경영에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27일 재계 고위관계자는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경영공백 등) ‘총수리스크’가 단기적으로 경영활동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다. 그러나 오너의 해외 경영 공백이 길어지면 중장기적으로는 상황이 달라진다”며 “해외의 주요 인적 네트워크가 손상될 경우 투자와 인수합병(M&A), 영업 등 경영활동과 미래성장동력 확보에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2일 서울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

최근 글로벌 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인적 교류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 ‘G2’가 자국우선주의 정책을 들고 나오면서 인적 네트워크가 기업의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경제 선진국 기업들의 최고경영자(CEO)들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시장의 흐름을 읽고, 새로운 인적 네트워크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크다.

최근 일본과 중국의 핵심 기업들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줄을 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자국보호 정책과 미국 내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일본의 대표적 자동차 회사인 도요타는 미국에 1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일본 정보기술(IT) 기업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도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미국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500억달러를 투자해 일자리 5만개를 만들겠다고 했다.

중국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도 앞으로 5년간 미국에서 일자리 100만개를 약속했다. 애플의 위탁제조 생산업체로 알려진 대만 폭스콘도 70억달러를 들여 미국에 디스플레이 제조 공장 신축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 기업들은 트럼프 정부와의 스킨십에서 뒤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뚜렷한 인맥이 없는 가운데 네트워크 형성도 여의치 않는 상황이다.

미국 시장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는 가운데 이 부회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잇달아 놓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달 중순 주요 글로벌 정보기술(IT) 업체의 수장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팀 쿡 애플 CEO와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 엘론 머스크 테슬라 CEO, 에릭 슈밋 알파벳 CEO 등의 이 모임에 참석해 트럼프 대통령과 의견을 교환했다.

이 부회장도 트럼프 대통령의 초청자 명단에 포함됐다. 비 미국계 IT기업의 리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러브콜을 받은 인물은 이 부회장이 유일했다. 그러나 특검이 출국금지 명령을 내리면서 만남이 불발됐다. 이 부회장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도 초정을 받았으나 결국 참석하지 못했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수사를 피해 도망 가겠냐”며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동 무산에 큰 아쉬움을 나타냈다. 새로 들어선 미국 정부와의 교감이 중요한 상화에서 돈을 주고 사기 어려운 기회를 날렸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 박람회 CES 2017에서도 삼성의 주요 거래선들은 이 부회의 불참을 아쉬워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삼성이 미래를 걸고 추진하는 미국의 전장기업 하만 인수도 잡음이 나고 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현지에서 상황을 조율할 수 없는 상황이다.

   
▲ 최태원 SK 회장이 지난달 6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

특검의 출국금지 대상인 최 회장도 이달 중순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 결국 참석하지 못했다. 그동안 최 회장은 다보스 포럼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미래 경제에 대한 통찰력을 넓힐 수 있고, 주요 국가의 정부 수반, 기업인들과의 교분도 자연스럽게 쌓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최 회장은 그룹 주요 계열사 CEO 들과 함께 다보스 포럼에 참석했다. 이 곳에서 그는 신재생에너자와 석유화학 분야의 글로벌 기업인들을 접촉하며 협력을 논의했다. 이달 초 예정됐던 최 회장의 중국 출장도 연기됐다. 최 회장은 중국 최대 국영 석유회사 시노펙 측 인사들과 사업을 협의 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는 삼성와 SK그룹의 수장들의 활발한 대내외 경영 활동을 바라는 모습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출 기업 총수의 공백이 길어질 경우 경제 전반에 걸친 악영향이 우려된다는 이유다.

재계 관계자는 “전문 경영인이 업무를 추진하는 것과 총수가 사업 전면에 나서는 것은 무게감 자체가 다르다. 해외 주요 파트너사들 역시 총수와의 소통을 선호한다”며 “총수들의 공백이 길어지면 오랜 시간에 걸쳐 구축한 핵심 해외 네트워크가 무너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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