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신안 마련 앞서 '포스트 허창수' 물색 총력
차기회장에 쇄신안 추진작업 맡기기로 가닥
[미디어펜=김세헌기자]재계의 맏형 격인 삼성전자의 공식 탈퇴로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정체성이 사실상 무너지면서 향후 행보에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 지난달 2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시무식에 참석한 뒤 식장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손사래를 치고 있다.

7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전날 정식으로 탈퇴원을 냄에 따라 다른 삼성그룹 계열사는 물론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회원 대기업도 전경련 탈퇴를 공식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4대 그룹 중 LG그룹은 이미 지난해 12월 전경련에 탈퇴하겠다고 공식 통보했다. SK그룹 역시 최태원 회장이 지난해 국회 청문회에서 탈퇴 의사를 밝힌 이후 회비 납부를 하지 않는 등 사실상 전경련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공식적으로 탈퇴 의사를 밝히지는 않은 현대차그룹도 향후 활동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의 15개 계열사가 전경련에 내는 회비는 2015년 한 해 동안 133억원으로 전체 회비 492억원의 27%에 달한다.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그룹이 낸 회비는 총 378억원으로 전체의 77%에 해당한다. 

전체 회원사는 600개를 상회하지만 이 중 4대 그룹 계열사들만 이탈해도 전경련은 버티기 어렵다. 협회 운영비를 거의 모두 회비로 충당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전경련은 미르·K스포츠재단 등에 주요 재벌그룹들이 수백억원을 후원하는 과정에서 모금을 주도하는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밝혀지면서부터 해체 여론에 직면했다.

지난해 12월 국회 청문회에서 주요 그룹 회장들의 탈퇴 시사 발언이 나오면서 전경련은 곧 자체 개혁방안을 내놓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승철 상근부회장이 '최순실 게이트'에 깊숙이 연루된 처지인지라, 사실 전경련의 환골탈태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는 시각이 재계에 팽배했다.

이런 악화일로에서 허창수 전경련 회장(GS그룹 회장)이 이달 말 임기가 끝나는 대로 퇴임하겠다고 공개 선언한 가운데, 전경련은 차기 회장을 물색하고 있지만 현재까지도 적임자를 찾지 못하고 있는 처지다. 

차기 회장 구인난을 겪고 있는 전경련은 대기업 총수들이 일제히 회장직을 고사하고 있는 탓에 고위 경제관료 출신의 외부인사를 영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 창립 이래 대기업 총수가 아닌 사람으로 전경련 회장직을 수행한 경우는 1989년 19대 회장을 지낸 유창선 전 국무총리가 유일했다.

전경련 일부 회장단 회원사는 최근 비공식 모임을 갖고 한덕수 전 국무총리,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 등 고위 경제관료 출신 인사들을 차기 회장 후보로 거론한 것으로 전해졌다.

   
▲ 전국경제인연합회

무엇보다 전경련은 먼저 차기 회장을 정한 뒤 새 사령탑에 쇄신안 추진 작업을 맡기기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는 현 인사들이 쇄신안을 추진할 경우 그 자체를 두고 큰 비난이 쏟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에서 이달 정기총회까지 차기 회장을 영입하지 못하면 전경련의 붕괴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라는 게 재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전경련은 오는 24일 정기총회를 열기로 잠정적으로 일정을 정했으며 사전 단계인 이사회는 늦어도 15일까지는 열 계획이다. 아직 회원사들에 이같은 일정을 정식으로 공지하지는 않았다.

전경련은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한 의견수렴에 어려움을 겪자 전경련은 지난달 한 회계법인에 쇄신안 외부 용역을 의뢰한 상태다. 그간 자체 동력으로 쇄신안을 마련하려고 추진해왔으나 여러 여건상 쉽지 않다는 판단에 외부의 힘을 빌리기로 한 것이다.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과 모금 과정에 깊이 관여했다는 이유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전경련은 지난해 12월부터 자체 쇄신안 마련을 추진, 이달 하순 총회 전까지 쇄신안을 마련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실제로 회원사 비공식 모임은 물론 지난달 초 열린 정기 회장단회의의 참석률은 매우 저조해 쇄신 작업에도 동력이 생기지 않는 모습이다. 여론의 눈총이 따가운 상태라 각 회원사가 전경련 활동 참여에 부담을 느끼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쇄신안에는 전경련의 향후 조직 운용 방향 등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전경련은 싱크탱크로 전환하는 안을 비롯해 미국의 경제단체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을 벤치마킹 모델로 삼는 쇄신안 등을 검토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용역 결과가 이번 정기총회에 제대로 공개될지는 의문이다. 총회까지 남은 시간이 촉박한 데다 쇄신안을 이끌 차기 회장이 아직 선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허창수 회장의 후임이 정해지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쇄신안이 정상 궤도에 오를 수 없다는 의견이 대체적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후임 회장이 선출된 뒤 쇄신안 용역 결과가 공개되고 자체 쇄신안도 차례로 마련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그간 회장직은 전경련을 이끌어갈 수 있는 재계 내의 입지를 갖춘 인물이어야 하는 등 여러 조건을 다 만족하는 사람이어야하는 관계로, 전경련에 대한 각계의 시선이 차가워질대로 차가워진 상황에서 차기 회장 찾기는 이만저만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