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155)-훌륭한 삶을 위한 화법과 연설의 기술
쿠인틸리아누스(35? ~ 95?) 『스피치 교육』

   
▲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인간만이 자음과 모음으로 나누어질 수 있는 분절음을 사용할 줄 안다. 소리가 아닌 언어를 구사하는 인간의 능력이야말로 동물과 구분 짓는 명확한 요소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언어생활을 사회의 공적 기능 가운데 최고로 중시했다.

그들은 언어를 단순히 일상적 대화의 도구로써 뿐만이 아니라, 대중 사이의 공적 의사소통의 가장 효과적인 도구로 인정함으로써 말의 위상을 높였다. 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민주주의의 개화였다. 누구나 공공의 문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대중 앞에서 연설할 수 있게 됨으로써 설득적이고 조리 있는 말의 중요성이 높아지게 된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연설 기법을 가르치는 수사학이 태동했다.

기원전 5세기에서 4세기의 고대 그리스, 특히 아테네에서는 수사학의 교사를 자처하는 소피스트들이 다수 등장했다. 법정이나 민회의 현장에서 탁월한 연설 실력을 뽐내는 연설가들도 나타났다. 데모스테네스(기원전 384~322), 이소크라테스(기원전 436~338), 이사이오스(기원전 420~340), 아이스키네스(기원전 397~322) 같은 사람이 그들이다.

그리스인들이 창안해낸 수사학은 300여년 후에 로마인에 의해 계승되었다. 기원전 1세기에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BC 106~43)는 로마 공화정 시기에 최고의 연설가이자 변론가로 명성을 날렸다. 그는 『수사학』 뿐만 아니라 연설에 관한 역작 『연설가에 대하여(De Oratore)』를 남겼다.

변론법으로 명성을 얻은 이가 또 있다. 마르쿠스 파비우스 쿠인틸리아누스(35?~95?)이다. 그는 연설의 이론을 집대성한 12권으로 이루어진 저서 『스피치 교육(Institutio Oratoria)』을 펴냈다. 그는 그리스의 수사학 전통과 키케로의 수사학과 연설가에 대한 실천적 이론에 큰 영향을 받았다.

쿠인틸리아누스는 철학자 못지않게 연설가의 효용을 매우 높게 평가한 듯하다. 그는 “참된 시민이고, 공사 간에 임무를 수행함에 적합하고, 도움말에 의해 나라를 다스리고, 법에 의해 나라를 굳건히 하고, 재판에 의해 나라를 바르게 세울 수 있는 사람은 연설가 이외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그는 연설술의 교사로서의 자긍심을 한껏 드러낸다.

쿠인틸리아누스의 이 저서는 고대 그리스와 당시 로마의 수사학의 발전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다. 현존하는 그리스 수사학 저서들에서 볼 수 없는 구체적인 연설 이론들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들이 고대 그리스에서 상세하게 정립된 것들인지 아니면 로마 시대에 실용적 부분들을 발전시킨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아무튼 쿠인틸리아누스가 제1권에서 수사학의 구체적인 기법 논의에 앞서 초등교육, 가정과 학교교육의 중요성을 상술한 대목도 이채롭다. 그는 7살 미만의 어린이에 대한 조기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라틴어를 쓰던 로마인들에게 어린이라면 그리스말부터 학습시키라는 권고는 당시 그리스 학문의 섭취에 열정적으로 애쓰던 당대인들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듯하다. 

쿠인틸리아누스는 사람마다의 소질에 따라 교육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동 교육에서 적절한 경쟁심을 불어넣어주는 것도 권장한다. 이를 위해 학교 교육에 반대하는 이들에 대해 경쟁심뿐만 아니라 우정을 쌓고 공공심을 배우는데 학교 교육이 가정교육보다 좋은 효과가 있음을 강조한다.

또 어린이가 학습에 집중력을 쏟도록 이끄는 것은 중요하지만 체벌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체벌은 노예를 다루는 데 어울리는 일이고, “그 아이의 정신이 꾸짖음에 의해 교정할 수 없을 정도로 천하다면 맞는 일조차 최악의 노예와 마찬가지로 무감각한 상태로 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을 아픔과 공포심으로 강제하려 하지 말고 자발적인 의욕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의미다.

쿠인틸리아누스는 올바른 언어 구사를 연설 교육의 첫 대목으로 강조한다. 말하기는 쓰기와 읽기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확한 어법 교육이 필수적이다. 쿠인틸리아누스는 다양한 불순 어법의 예와 악센트, 문법 위반, 여러 품사들의 속성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아울러 추론의 어법과 관용 화법, 맞춤법 등을 상술한다. 이런 대목들은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매우 어렵다. 하지만 고대 라틴어 연구자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연구 자료가 될 듯싶다.

그리스인들처럼 로마인들도 읽기를 매우 중시했다. 호메로스나 베르길리우스의 작품이 첫 읽기 대본으로 애용되었음을 볼 수 있다. 로마의 어린이들은 서사 문학 읽기를 통해 영웅들의 숭고한 정신을 배우고 그리스의 다양한 비극과 희극 작품을 통해 중후한 어휘에서 우아한 어휘까지 배웠다. 로마인들의 문법 교육은 현대적 의미의 문법교육보다 폭이 훨씬 넓었다. 단순한 어휘와 문법 구조를 배운다기보다, 언어생활과 문학 교육, 그리고 일반교양 교육의 성격이 짙었다. 문법 교육이 자연스럽게 연설 교육의 첫 단계로 활용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쿠인틸리아누스는 아동교육에서 다양한 학과의 병행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음악교육은 적정한 발성과 억양, 자연스런 몸짓과 리듬을 익히는 데 도움을 준다. 또 자연의 질서를 배우고 추론하는 데 도움을 주는 기하학의 학습도 필수적이다.

제2권에서 쿠인틸리아누스는 바람직한 변론법 선생의 역할과 변론 교육의 유용성을 제시한다. 우선 변론 선생이 갖추어야 할 자질로 교양과 덕목을 든다. 또한 학생 수준에 자기를 맞출 줄 아는 사려 깊은 교육을 강조한다.

그는 변론 교육의 내용으로 역사적 서술에 대한 공부, 반박과 논증의 연습, 효과적으로 칭찬과 비난을 하는 방법, 의회 변론에 관련되어 있는 다양한 일반 명제를 이용한 사례 연습을 제시한다. 모의 변론으로 학습하기 위해 우선 최고의 문장을 암기하여 최고의 본보기에 친숙해 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쿠인틸리아누스는 교육의 상호성을 역설한다. 선생의 책무는 가르치는 일이고, 선생이 가르치기 쉽도록 행동하는 일은 학생의 책무다. 좋은 교육이 되기 위해서는 선생과 학생이 각자의 책무를 잘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르쳐 주는 자와 배움을 받는 자의 마음이 하나로 연결되지 않으면 연설을 교육할 수 없다"는 뜻이다.

연설술(수사학)이란 무엇인가? 쿠인틸리아누스는 선대 여러 학자들의 정의를 모두 소개한 후 자신의 정의를 내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을 "설득하기에 적당한 것을 사변적으로  발견하는 능력"으로 정의했다. 아리스톤은 "연설술이란 민중을 설득하는 변론에 의해, 공적 문제를 고찰하고 의론하기 위한 학문"으로 규정했다.

쿠인틸리아누스는 여러 정의들을 포괄하여 연설술을 "훌륭하게 말하기 위한 학문"으로 정의내리고 있다. 그는 연설술이 단지 법정이나 민회만 아니라 가정 내의 일이나 개인적인 사항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본다. 즉 공적 문제뿐만 아니라 사적 영역, 즉 인생 전체가 연설술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관점이다. 이런 시각은 키케로의 영향으로도 볼 수 있다.

키케로는 이렇게 말했다. "참 변론가는 인간의 삶 속에 있는 모든 사항을 더듬어 의미를 캐고, 듣고, 읽고, 의론하고, 연구하고, 숙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변론가는 인간의 삶을 다루기 때문에 그 인생이야말로 변론가에게 맡겨진 소재이기 때문이다." 연설술의 소재를 이렇게 확대하면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연설술의 유용성은 매우 커진다.

제3권에서 쿠인틸리아누스는 연설술의 구성요소와 연설의 종류를 소개한다. 그는 수사학의 전통적 5요소, 즉 착상, 배열, 표현, 기억, 발표의 요소를 든다. 이는 키케로가 『연설가에 대하여』에서 제시한 내용들의 재확인이다.

쿠인틸리아누스는 연설가가 수행하는 일은 세 가지로 압축한다. 가르치는 일, 마음을 움직이는 일, 그리고 즐겁게 해주는 일이다. 이를 위해 연설가가 다루는 문제는 법률에 관한 것일 수도, 추정의 문제일 수도 있다. 문제는 인물, 시간, 장소와 그 밖의 것으로 한정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적인 일반적 문제를 포괄한다. 이렇듯 연설의 제재는 무한정하지만, 어떤 연설이든 쟁점(status)을 갖게 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그리스인들은 쟁점을 스타시스(stasis)라고 불렀다. 모든 문제는 이런 쟁점을 포함한다.

대개 쟁점은 성질의 쟁점과 추측의 쟁점으로 나뉜다. 아르케데모스는 추측의 쟁점과 정당성에 관한 쟁점으로 나누기도 한다. 쟁점은 "항변에서 인출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주장을 뒷받침하려고 하는 쪽에서 인출"된다. 물론 쟁점의 삼분법, 사분법, 오분법, 팔분법도 있기는 하다.

중요한 것은 법정 변론가가 핵심 쟁점을 어떻게 드러내고, 어떻게 자신에게 유리한 추론과 증명을 전개하여 배심원들의 유리한 판정을 이끌어내는가이다. 여기서 변론가의 역량의 차이가 드러난다. 이를 위한 법정 변론은 서론, 진술, 입증, 반론, 종결의 다섯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쿠인틸리아누스는 법정 변론에서 승리하기 위한 변론의 구상과 순서, 그리고 실제 변론의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쿠인틸리아누스는 공적인 각종 민회 심의의 연설뿐 아니라 법정 변론, 제전에서의 연설 등 다양한 연설과 변론의 대상과 변론 전개에 대한 여러 이론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그는 실제 변론과 동떨어진 연습을 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친구들과의 협의, 원로원에서의 발언, 황제에게 어떤 상담을 받아 권고하는 일 등, 실천의 현장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실전에 가까운 모의 연습과 다양한 실전 참여가 연설술의 함양에 필수적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 책 『스피치 교육』은 쿠인틸리아누스의 12권의 원작 가운데 1권부터 3권까지를 번역한 책이다. 따라서 쿠인틸리아누스 저작의 전모를 온전하게 감상할 수 없어 아쉬움을 남긴다. 제1권은 초등교육과 가정교육, 그리고 문법교육의 방향과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제2권은 모의변론의 지도법과 모의 변론의 방법, 그리고 변론법의 의미에 대해, 제3권은 변론법의 종류와 법정 변론의 주요 부분을 기술하고 있다. 이 책에 붙은 부제 ‘변론법 수업’에 부응하는 부분들이다.

쿠인틸리아누스는 변론법에 통달한 아버지를 두었다고 스스로 말한 것으로 보아 부친으로부터의 가르침을 받았던 것 같다. 또 변론가 도미티우스 아페르를 존경했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의 교육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쿠인틸리아누스는 변론법의 교사이자 법정 변론가로도 활약했다. 당시 풍자시인 마르티알리스가 그를 "변덕스러운 젊은이들의 가장 명망 높은 인도자, 로마의 격조 있는 덕망가"라 불렀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퀸틸리아누스는 꽤 저명한 변론가였던 것 같다.

쿠인틸리아누스는 20여 년 간 직업적 변론가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변론에 대한 식견을 책으로 발간하라는 주변의 성화에 못 이겨 그는 말년에 이 책을 저술했다. 덕분에 오랜 기간 갈고 닦은 수사학자로서의 역량이 고스란히 담길 수 있었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에서 발원하여 로마에 이르러 실천적 변론법으로 발전한 수사학의 이론적 내용과 변천 사례들을 맛 볼 수 있는 귀중한 저작이다. /박경귀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 ☞ 추천도서: : 『스피치 교육』, 쿠인틸리아누스 지음, 전영우 옮김, 민지사(2014), 3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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