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의 여적·이적 집단이 정교하게 기획한 정황 모습…본질 벗어난 수사
   
▲ 김인호 한양대 명예교수·다이나믹 매니지먼트 학회장
법(法)은 질서를 유지하고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정의를 실현함을 직접목적으로 하는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적 규범 또는 관습을 말한다고들 한다. 이 말에 의하면 법은 분명 정의구현을 이루기 위한 마지막 보루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얼마 전 (2017년 2월 중순) 필자와 오랜 동안 교분관계에 있는 독일의 한 가톨릭신학대학교의 신학 교수이신 프랑스인 신부로부터 문안편지를 받았는데 그 내용가운데 한국이 공산주의(communism)와 전쟁(war)으로부터 보호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기원이 들어 있었다. 이 문구를 접하는 순간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소위 '최순실농단'의 실상이 유럽에서는 어떻게 인지되고 있는가가 분명히 적확하게 감지되어왔다.

박근혜대통령에 대한 헌재의 탄핵소추판결이 진행됨에 따라 새로운 사실들이 알려지면서 2016년 10월경부터 대한민국을 혼돈과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던 '최순실농단'의 실상이 점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그간 북한과 내통한 내부의 여적·이적 집단들이 정교하게 기획해 온 듯한(?) 정황들이 점점 드러나고 있는데, 그런대도 삼척동자도 다 알만한 사건규명의 가장 기본 사안에 대해서는 수사조차도 않고 오히려 숨기고 불법·탈법·초법의 반(反)법치를 자행하면서 국민을 격분시키고 경제를 망치며 사회를 불안케 하고 있다.

국권 찬탈을 꾀하고 있는 듯한(?) 막가파의 특검행태와 이들과 한패가 되어 마구잡이로 쓰레기 법을 양산하고 있는 막가파의 국회 입법행태, 사법부 판사들의 참으로 기가 막힌 기괴한 막가파의 판결행태 그리고 그간 기소독점권을 무소불위로 행사해온 막가파의 검찰행태 등등 …. 여기에 온 언론들이 일사불란하게 한 패거리가 되어 '최순실농단'이 아닌 '대한민국농단'을 똘똘 뭉쳐 자행하고 있음을 외국에서는 벌써부터 꿰뚫고 있었음이 분명함을 프랑스인 신부가 알려주고 있다.       
         
이런 와중에 경제정의와 경제민주화란 말이 들리며 이번엔 예전과는 달리 일자리창출이란 말도 함께 들리는 걸 보니 표심을 겨냥한 조기대선운동이 이미 시작되는가 보다. 그런데 필자의 과민한 탓인지는 몰라도 정의란 말만 들으면 제일먼저 이를 밥 먹듯 외쳐 온 집단·단체·정당 등이 보여 온 이중성과 기만성이 생생하게 되살아나 정의란 과연 무엇인가를 되묻게 된다.

   
▲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북한과 내통한 내부의 여적·이적 집단들이 정교하게 기획해 온 듯한(?) 정황들이 점점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도 사건규명의 가장 기본 사안에 대해서는 수사조차도 않고 오히려 숨기고 불법·탈법·초법의 반(反)법치를 자행하면서 국민을 격분시키고 경제를 망치며 사회를 불안케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우선 다음의 얘기를 통해 정의(justice) 불의(injustice) 자비(charity)의 개념부터 제대로 이해해 보기로 하자. 

"어느 집 주인이 막일꾼을 구하려고 오전 7시에 나가 일당 60,000원으로 품삯을 정하고 일을 하도록 하였다. 일꾼이 더 필요하여 9시에 나가보니 일거리 없이 서성이는 사람이 있기에 그에게도 '당신도 우리 집에 가서 일을 하도록 하시오. 그러면 당신에게는 일한 만큼 품삯을 주겠소.'하고 말하니 그도 일하러 갔다. 

집주인은 일꾼이 더 필요하여 낮 12시와 오후 3시 그리고 오후 5시에도 나가 각자 일한 만큼 품삯을 주기로 하고 일을 시켰다. 오후 7시가 되자 집주인은 모두를 불러놓고 가장 늦게 온 사람부터 시작하여 맨 처음 온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각자의 품삯을 주기 시작하였다."

자, 여기서 모든 일꾼들이 똑같은 일을 똑 같은 수준의 기술·기량으로 모두 열심히 일을 했다(즉, 단위 시간당 노동의 질은 동일하다)고 전제하고, 이들 일꾼들에게 품삯을 주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통하여 정의와 불의와 자비의 개념을 정립해 봅시다.

첫째방법은 각자에게 각각 일한 만큼의 품삯을 준 경우입니다. 즉, 제일 일찍 7시에 온 사람은 약속대로 60,000원을 받았고, 오전 9시에 온 사람은 50,000원을 (왜냐하면 단위시간당 노동의 질이 동일하다, 고   전제했음으로 시간당 품삯은 5,000원이지요), 12시에 온 사람은 35,000원을, 오후 3시에 온 사람은 20,000원을, 5시에 온 사람은 10,000원을 받았을 경우입니다.

여기서 귀하가 제일 일찍 7시에 온 사람이라고 할 때 어떤 생각이 들며 또 어떻게 느끼실까요? 이 경우 아주 공평하며 공정하게 주임이 품삯을 주었다고 생각하겠지요. (혹 다른 의견이 있으신 분은 필자에게 의견을 주셨으면 합니다.)  

둘째방법은 귀하가 오전 7시에 온 사람이라고 할 때, 시간을 달리하여 늦게 와서 일한 사람들에게도 귀하와 똑같이 60,000원씩을 주는 경우입니다. 이때에는 귀하의 마음이 어떠할 것이며 또 어떤 느낌일까요?

이 경우에는 사람에 따라서 그 마음과 생각이 다를 것이며 다음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i) 대단히 불공평하며 부당한 처사로 불쾌하다.
ii) 약속대로 내 몫을 다 받았기 때문에 남들이 얼마를 받건 상관 않는다.
여기서 ii)을 택한 경우는 잠시 미루고, i)을 택하신 분들만 아래의 셋째방법과 넷째방법을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셋째방법은 귀하가 제일 일찍 7시에 온 사람이라고 할 때, 당초 약속보다 덜 받은 경우입니다. 이때에는 당연히 받아야 할 몫을 강력하게 요구하겠지요. 예컨대 60,000원을 받기로 한 사람이 40,000원 또는 50,000원 또는 59,000원을 받았다면 못 받은 만큼 사기를 당한 것이고 그 때에는 기분 나쁘고 억울하며 불공평하다고 느끼면서 따져서라도 못 받은 몫을 꼭 받아내어야 하겠지요.

여기서 일한 만큼의 품삯을 받은 경우를 정의(justice)라고 부른다면, 일한 만큼보다 덜 품삯을 받은 경우에는 정의가 실현이 안 되었으므로 정의가 결여된 불의(injustice)를 당한 것이겠지요.

넷째방법은 귀하가 제일 일찍 7시에 온 사람이라고 할 때, 당초 약속보다 더 받은 경우, 예컨대 당연히 받을 60,000원보다 10,000원 또는 20,000원을 더 받은 경우에는 그 만큼 거저 더 받은 자비를 입은 것이고, 자비를 입은 것만큼 기분 좋고 감사하다고 느끼겠지요. 

그런데 만약 자비를 못 입은 경우에는 어떨까요? 자비를 입으면 감사하고, 못 입으면 그만 일뿐입니다. 이는 흔한 얘기로 자비는 '엿장수 마음대로'입니다. 왜, 나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않았느냐고 불평하거나 억울해할 수 있을까요?

절대로 그럴 수 없겠지요. 물론 자기에게도 자비를 베풀어 주십사 간청은 할 수 있어도 자비를 강요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비는 누구로부터도 강요될 수 없는, 베푸는 자가 그의 자유의지(free will)로 베푸는 지고의 덕목인 때문이지요. 

이상 본바와 같이 불의 정의 자비라는 개념은 정의를 기준으로 덜 받았느냐 더 받았느냐에 따라서 정해지는 개념임을 알려줍니다. 요컨대 불의와 정의는 서로 대립되는 두 개의 별개의 개념이 아니고, 정의가 있어야 할 곳에 정의가 없으면(결여되면) 그것이 바로 불의임을 알려줍니다.

같은 맥락에서 진실이 있어야 할 곳에 진실이 결여되면 그게 거짓이요, 겸손이 있어야 할 곳에 겸손이 결여되면 그게 오만이고, 사랑이 있어야 할 곳에 사랑이 결여되면 그게 미움이며, 사실을 다루어야할 곳에 사실이 결여되면 조작·날조이고, 공정하게 다루어야 할 곳에 공정이 결여되면 불공정·편파임을 알게 해줍니다.

이상 위에서 본바와 같이 '정의의 몫을 받았을 땐 당연하다고 느끼고, 불의를 당했을 땐 억울하고 부당하다고 느끼며, 자비를 입었을 땐 감사하다'고 느끼는 이 명제야말로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명제(universal proposition)임을 알 수 있습니다.

   
▲ 2월18일 16차 촛불집회도 이석기 석방운동 '활개'…이적단체 범민련 깃발 나부껴/사진=미디어펜

자, 그러면 이제 이 보편명제에 기초하여 일한 시간이 각기 다름에도 불구하고 다 같이 60,000원씩 받았을 경우 각자가 어떻게 느껴야만 될 것인가를 보기로 하지요.
 
오전 7시에 온 사람이 60,000원을 받았다면 당초 약속대로 받았으므로 당연하다고 느낄 것이고, 오전 9시에 온 사람도 60,000원을 받았으므로 50,000원의 정의의 몫에 대해 당연하다고 느끼면서 10,000원 더 받은 만큼의 자비를 입었으므로 그 만큼 감사하다고 느껴야 하며, 12시에 온 사람은 35,000원의 정의의 몫과 25,000원만큼의 자비를 입었으므로 그 만큼 감사하다고 느껴야 하고, 오후 3시에 온 사람은 20,000원의 정의의 몫과 40,000원큼의 자비를 입었으므로 그 만큼 감사하다고 느껴야 하고, 오후 5시에 온 사람은 10,000원의 정의의 몫과 50,000원만큼의 자비를 입었으므로 그 만큼 감사하다고 느껴야 하겠지요.

이제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모두가 60,000원씩 받았을 경우 아무도 불평하거나 억울해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점이지요. 심지어 제일 일찍 오전 7시에 온 사람의 입장에서도 당초 약속대로 60,000원을 다 받았기 때문에 그냥 당연하다라고만 느끼면 그만입니다.

이것이 바로 옳은 생각(right thought)인 것입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다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남들도 60,000원을 받는 걸 보고 불공평하며 억울하다고 느낀다면 이는 그른 생각(wrong thought)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른 생각을 갖고 말하거나 행동하면 그른 결과가 올 것이며, 반대로 옳은 생각을 갖고 말하거나 행동하면 옳은 결과가 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연계 안에는 뿌린 대로(give) 거두는(take) 정의의 질서가 엄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 그러면 이제 마지막으로 옳은 가치판단의 견지에서 다음과 같은 세상을 생각해 봅시다.

1) 만약 남이 얼마를 받느냐에 상관하지 않고, 자기 몫 (정의의 몫)만 받으면 된다는 사람들로만 이 세상이 꽉차있다면 이 세상은 과연 어떤 세상일까요? 그곳에서 과연 시기 질투 분쟁 다툼 전쟁 같은 것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겠지요. 왜냐하면 각자 모두 서로 남에 대해서는 일체 신경을 안 쓸 테니까요."

2) 만약 자기 몫만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보다 늦게 온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몫보다도 더 받은 걸 보니까 시기심이나 질투심으로 배 아파하기는커녕 오히려 자기 마음도 공연히 뿌듯해지며 기쁘다고 느끼는 사람들로만 이 세상이 꽉차있다면 이는 과연 어떤 세상일까요?
"남이 입은 자비를 시기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기뻐하는 사람들로만 꽉 찬 이런 세상이야말로 참으로 우리 모두가 그리는 천국·낙원이겠지요."

3) 만약 자기 몫은 다 받았는데도 자기보다 늦게 온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몫보다 더 받은 걸 보니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화가 나서 못 견디겠다는 사람들로만 이 세상이 꽉차있다면 이는 또 어떤 세상일까요? 
"자기 몫은 다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남이 입은 자비에 대해 배 아파하는 사람들로만 꽉 찬 세상이야말로 참으로 생지옥이겠지요."

결론적으로 이와 같이 천국·낙원과 지옥은 하나의 사실(fact)을 어떤 가치판단(value judgment)기준으로 판단하느냐에 따라서 좌우된다는 점입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이 불의와 정의와 자비에 대하여 옳은 가치판단기준을 지닌다면 대한민국은 천국·낙원이 될 것이고 그릇된 가치판단기준을 쫒는다면 생지옥이 될 것입니다. 실제로 남이 잘 되는 걸 진심으로 기뻐하며 축하해주는 옳은 생각과 자비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로만 대한민국이 꽉 찬다면 더 바랄 게 없는 낙원·천국이 이 땅에 임할 것입니다. 그리고 설령 자비의 마음은 못 갖는다손 치더라도 내 몫만 받으면 족하다는 정의의 마음을 가진 분들로만 대한민국이 꽉 차더라도 최소한 천국의 가장자리는 차지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몫을 다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남 잘되는 걸 배 아파 못 견디겠다는 불의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로만 대한민국이 꽉 찬다면 분명 대한민국은 참으로 생지옥일 될 것입니다. 이는 대한민국이 실제로 생지옥이어서가 아니라 자기가 지닌 그릇된 가치판단기준이 바로 자기 자신을 생지옥의 심연 속으로 떨어뜨리는 주역이 된다는 말입니다.  

'최순실 국가농단'의 실상과 실체가 밝혀지면 질수록 썩어빠진 쓰레기집단들(애국국민은 이제 그들이 누구인가를 모두 잘 알게 되었음)이 그간 똘똘 뭉쳐서 거짓·허위·날조·편파로 '배고픈 건 참겠지만 배 아픈 건 못 참겠다.'는 악한 그릇된 생각을 가진 상당수의 사람들을 부추기고 선동하여 대한민국을 절단 내려는 여적·이적의 반국가무리들이 벌린 거짓·악의 촛불집회였음이 점점 더 분명해 지고 있다.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에 가 본 사람들은 분명히 알 것이다. 그곳이 과연 평화로운 광장의 촛불시위란 말인가! 광란의 그곳이 과연 어떤 곳으로 느껴지든가 말이다!

참으로 말로 표현하기엔 너무나 끔직한 광장촛불 시위에서 그네들은 오히려 '이게 나라냐, 헬 조선, 1 : 99 등등' 입에 담을 수 없는 온갖 저주를 퍼부으며 반국가의 작태를 연출해 왔지만 그네들의 거짓·허위·조작·날조·편파는 이제 국내 전국 곳곳으로 그리고 국외에서도 맹렬하게 퍼져가는 진실과 애국태극기의 거센 파고 앞에서 여지없이 깨지며 단말마의 마지막 외마디소리를 지르게 될 것이다.

정의구현의 마지막 보루로서 법이 기능하려면 정의 불의 자비에 대한 옳은 판단기준만을 따라야하며, 거기에는 '배 아픈 건 못 참겠다.'는 그릇된 생각과 악한 마음들이 투영되는 민심(民心)이 자리 할 곳이 결코 아니다. 더 더욱 진실·애국국민과 거짓·반국가무리와의 투쟁에 있어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법에 대한 문외한이지만 법조계의 사이비와 얼치기 정객들을 접하면서 필자는 '대한민국에서 법은 과연 정의구현의 마지막 보루인가, 국회독재와 사법독재의 수단인가,'를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대한민국 농단'의 뒷수습에 하늘이 함께 하여주시길 간절히 기도드린다. /김인호 한양대 명예교수·다이나믹 매니지먼트 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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