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158)-민심과 명분을 얻어야 승리한다
황석공(생몰 미상)  『삼략』

 
   
▲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삼략(三略)> 은 흔히 <육도(六韜)>와 함께 '육도삼략'으로 불린다. 저자는 태공망 여상이라는 주장과 전설적인 도인 황석공(黃石公)이라는 주장이 맞서왔다. 그런데 <삼략>의 원래 명칭이 <황석공 삼략>이라는 점에서 볼 때 황석공이 저자라는 설이 더 유력하다. 물론 후대인이 가탁하여 지었다고 보는 이도 적지 않다.  

<삼략>이 역대 병서 중 주목을 끄는 이유는 여타 병서가 '전략(戰略)'을 주제로 했다면, <삼략>은 '정략(政略)'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더욱 군사와 정치적 방략을 함께 제시했던 <육도>와 잘 어울린다. '육도삼략'은 군사적 전략서의 영역에서 치국의 원리와 군왕의 통치전략으로 확대했다. 그런 점이 고금의 문인과 무인에게 폭넓은 사랑을 받게 된 것 요인 같다. <삼략>은 '삼략' 또는 '육도삼략'의 이름으로 국내에서 출판된 번역서나 해설서가 <손자병법>과 <삼십육계> 다음으로 많은 20여 편에 이를 정도로 현대인의 애독서이기도 하다.  

특히 <삼략>이 문무겸전을 중시한 까닭에 조선보다 일본에서 더 관심을 받았다. 일본에서 수많은 삼략의 주석서가 쏟아져 나오면서 일본 무사도의 사상적 지침이 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일본인들은 <삼략>에서 제시한 장수로서의 덕목과 군자와 현인의 도리, 즉 무인과 문사로서의 덕목과 도리, 그리고 치국의 방책을 통해 군주에게 봉사하기 위해 자신을 단련하며, 서민에 대해 미덕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무사도의 정신적 사상의 요체를 수립할 수 있었다.  

<삼략>의 분량은 짧다. 내용은 치국과 용병의 전략을 담은 '상략'과 군주의 치도를 담은 '중략', 그리고 군자와 현군의 정치를 다룬 '하략'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략'의 핵심 내용은 민부병강(民富兵强)이다. 국가의 부강을 위해 백성의 삶을 평안하고 하고 힘을 키우는 일이 중요함을 역설한다. "군국(軍國)의 요체는 백성의 마음을 자세히 살핀 뒤 이에 상응하는 계책으로 대응하는 데 있"고, "백성을 애호할 줄 알아야 비로소 군주의 진정한 은덕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이런 바탕 위에 양장(良將)의 위엄도 서고 통솔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황석공은 장수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12가지 덕목과 장수가 주의해야 할 8가지 사항을 제시하고 있다. 그 내용들은 단순히 군사의 지휘와 전투의 기법보다 인간적 품성과 합리적 조직 운영을 위한 지침들이 더 많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군사적 능력만으로 군대를 효과적으로 통솔하고 부하들의 마음으로부터의 복종을 이끌어내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특히 저자는 군사를 일으키거나 적은 병력으로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먼저 백성을 쉬게 하며 백성의 힘을 키우는 일에 주력하고, 병사들에게 두루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바로 부민(富民)과 융은(隆恩)을 통한 이과승중(以寡勝衆)의 비법이다.  

또한 황석공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대의명분에서 앞서야 한다고 보았다. "정의를 기치로 내걸어 불의를 치는 것은 마치 장강과 황하의 둑을 터 작은 횃불을 끄고, 아득한 골짜기에 임해 아래로 밀어뜨리고 싶은 자를 미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불의한 자를 토벌한다는 주폭의전(誅暴義戰)의 사상을 드러낸 대목이다.  

나아가 황석공은 전쟁에서 명분을 선점하는 하는 것이 중요함을 일깨운다. 여기서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와 5년간의 내전을 치르면서 명분 싸움에서 먼저 이겼던 대목이 상기된다.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정복한 전쟁 영웅인 자신과 병사들이 폼페이우스의 모략에 의해 정치적으로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음을 강조하는 전술을 썼다. 이로써 그는 병사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면서 쿠데타로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울러 황석공은 치국의 전략으로 현자를 발탁해 군사를 다스려야 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고, 적군도 제압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성인이 정사를 펼 때 "사람의 마음을 감화시킴으로써 사람들이 마음속으로부터 즐겨 따르게 만든다"며 예악(禮樂)을 바르게 펼칠 것을 강조했다. 이는 예악이 정치의 근본임을 역설한 공자의 교훈과도 맥이 통한다.  

또한 천하를 다스리는 치국의 방략으로 군주의 말인 명(命)과 전하는 글인 영(令)이 바르게 시행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명이 바르지 못하면 영이 시행되지 않고, 영이 시행되지 않으면 정(政)이 확립되지 못하며 군주의 위엄과 권한이 크게 손상을 입"기 때문이다. <삼략>은 이런 관점에서 한 발 진보한다.  

영의 시행을 따르지 않는 흉민(凶民)에겐 벌을 내려야 하지만, 영이 잘 시행되고, 백성이 이에 대해 원망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백성이 원망하는 영으로 백성을 다스리면 이는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역천(逆天)에 해당된다고 경고한다. 국법의 시행도 중요하지만, 백성의 원망을 사는 법령으로 다스리면 국가를 지탱할 수 없다는 뜻이다. 황석공이 백성의 뜻을 살피는 일이 이처럼 긴요한 일임을 '역천'이라는 용어까지 써가며 극단적으로 강조한 것은 병서는 물론 어떤 제자백가의 사상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삼략>의 날카로운 통찰과 혜안에 감탄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삼략>은 병법을 넘어 군주의 국가 통치 철학과 이를 뒷받침해야 할 군자의 도리를 함께 제시했다는 점에서 독특한 거현치군(擧賢治軍)을 적절하게 드러낸 사상서이기도 하다. 일본이 <삼략>에서 군자의 의무개념을 발굴하여 무사도의 사상적 지침으로 차용한 이유가 충분히 이해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치군(治軍)의 중요성을 경시하고 성리학적 관점에서 문치(文治)의 규범에만 치중하여 문약(文弱)으로 흘렀고, 결국 망국의 길로 접어들게 한 조선의 불균형적 통치전략이 아쉽게 대비된다.  /박경귀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 ☞ 추천도서: : 『삼략(三略)』, 신동준 역주, 역사의 아침(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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