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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귀단장 고전특강(161)-우리에겐 민중을 꾸짖는 소크라테스가 없다
승인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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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인 2017-03-31 09:4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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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161)-신이 보낸 등에 소크라테스의 항변
플라톤(BC 427~BC 347)  『소크라테스의 변론』

   
▲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예수를 논외로 친다면 한 인간의 죽음에 대하여 가장 오랜 세월동안 많은 이들에게 논란의 대상이 되어온 인물은 단연코 소크라테스일 것이다. 기원전 399년 그의 죽음에 대해 정치적-철학적-사회적 의미를 다양하게 불러일으킨 이는 소크라테스의 수제자였던 플라톤이다. 그는 스승의 억울한 죽음을 신원(伸寃)하고자 대화편 『소크라테스의 변론(Apologia Sokratuos)』을 남겼다. 이 작품에서 소크라테스가 행한 변론의 다양한 테마들은 두고두고 다양한 해석의 원천이 되고 있다.   

이 작품은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선고하게 되는 아테네 시민법정에서 소크라테스가 항변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는 오래 전에 중역본(重譯本)으로 나온 『소크라테스의 변명』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아폴로기아(Apologia)'를 번역한 우리말을 두고 어떤 용어가 적절한지 견해들이 엇갈리고 있다. ​

​오랫동안 써온 '변명(辨明)'이 적절하다는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그 용어를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천병희 번역의 경우 '변론(辯論)'으로 고쳐 썼다. '변명'이 적절하다고 구구하게 설명하는 이도 있지만 나는 '변론'으로 새기는 것이 더 적실하지 않나 싶다.* 내용과 의도가 어찌되었든 이 글은 엄연히 피고로 선 소크라테스의 항변이기 때문이다.   

멜레토스, 아뉘토스, 뤼콘 세 사람은 소크라테스를 시민법정에 고발했다. 그런데 기소의 전문, 즉 고발자의 고발이유는 이 작품에서 기술되지 않았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항변 속에서 기소이유를 미루어 파악할 수 있을 뿐이다. 핵심적인 기소 이유는 두 가지다.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국가가 인정하는 신들을 인정하는 대신 다른 새로운 신들을 믿음으로써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원고인 멜레토스와의 문답을 통해 그의 기소이유가 부당함을 입증하고 있다. 첫 번째 기소이유에 대한 항변을 들어보자. 소크라테스가 국가의 신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주장에는 소크라테스가 아낙사고라스 류의 자연학자들과 같은 주장을 하거나, 한때 소크라테스가 자연학에 빠졌던 정황에 대한 시민들의 의심에서 비롯된 것 같다. 당시 아테네 시민들은 태양신으로 신성하게 여겨진 해를 '불타는 돌덩어리'로, 달을 흙덩어리라고 주장하는 자연학자들에 대해 적대감을 갖고 있었다.   

그러니 젊을 적 한때 자연학에 심취했던 소크라테스에게도 아테네 시민들이 경계감을 갖고 있었던 점은 자연스러운 일로 보인다. 당시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가 작품 《구름》을 통해 소크라테스의 이런 자연관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도 대중의 정서를 반영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대중의 눈으로는 아낙사고라스 식의 자연관은 아테네인들이 굳게 믿는 신을 부정하는 것으로 보였을 터였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내가 초인간적인 것을 믿는다면, 내가 초인간적인 존재도 믿는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라며, 초인간적인 존재는 곧 신 또는 신의 자식인 만큼 자신이 신을 믿지 않는다는 죄목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그는 "나 자신과 남들을 탐구하며 철학자의 삶을 살도록" 신께서 정해주었고, 이를 확신하는 만큼 자신이 신들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자기모순에 빠지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소크라테스는 그러한 신에게 절대 복종하는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이 어떻게 신을 부정하는 사람일 수 있느냐 반증한 것이다.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두 번째 죄목 역시 소크라테스는 전혀 수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반발은 한발 더 나아간다. 설령 아테네 시민들이 자신이 철학으로 소일하면서 시민들에게 쉼 없이 조언하고 지적하는 일을 그만두라고 명령하여도 자신은 결코 자신의 삶의 방식을 바꿀 수 없다고 못 박는다.  

소크라테스는 당시 지혜롭다고 자부하는 정치인, 지식인들을 찾아가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며, 그들이 실은 지혜롭지 않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가 그렇게 사람들에게 캐묻는 것을 듣고 좋아한 청년들은 소크라테스를 흉내 내어 다른 사람들에게 캐묻고 다녔다. 같은 방식으로 청년들에게 논리적 봉변을 당한 사람들이 소크라테스를 원망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리라. 아테네 시민들이 소크라테스가 청년들을 타락시킨다고 여긴 것도 기성세대들의 위신을 깎아내리는 청년들의 도발적 행태들이 소크라테스의 영향을 받아 생겨나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소크라테스가 밉기는 했지만 처음부터 그를 죽이려고 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법정에 세워 추궁하면 소크라테스가 물러설 줄 알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자신은 '신이 보낸 등에'라면서 시민들의 그릇된 행태를 지적하는 일을 멈출 수 없다고 항변했다.   

그동안 소크라테스는 끊임없이 아테네 시민들에게 요구해왔다. 

"부와 명예와 명성은 되도록 많이 획득하려고 안달하면서도 지혜와 진리와 당신 혼의 최선의 상태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생각조차 하지 않다니 부끄럽지 않소?"
 
"재산에서는 미덕이 생기지 않지만, 미덕에서는 재산과 그 밖에 개인이든 국가든 사람에게 좋은 모든 것이 생겨납니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시민들에게 끊임없이 조언하는 것이 신이 자신에게 내린 소명이라고 주장했다. 소크라테스는 행동이 굼떠 자극이 필요한 말에게 등에가 배정되듯, 신이 자신을 아테네 시민들을 일깨우고 설득하고 꾸짖으라고 등에 역할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그는 언제 어디서든 만나는 모든 아테네인들을 일깨우는 등에 역할을 해온 만큼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죄목은 얼토당토않은 일이므로 무죄 방면되어야 마땅하다고 역설했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멜레토스 등이 기소한 죄목을 하나도 인정하지 않은 셈이다. 그렇지만 배심원인 아테네 시민들은 소크라테스의 주장에 설득되지 않았다. 사실 아테네 시민들에게 두 가지 기소 죄목 그 자체는 명목상의 이유였을 뿐, 기실 소크라테스의 집요한 '지적질'에 진력을 내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기소된 마당에 이르러서도 소크라테스는 시민들에게 선처를 구하기는커녕 '신이 보낸 등에' 운운하며 시민들을 추궁하는 자신의 행위를 멈추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게다가 그런 자신을 죽이면 대신할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은근히 협박성 발언까지 하니 배심원인 아테네 시민들이 심사가 뒤틀렸을 만하다. 

소크라테스와 시민들의 불화는 정점을 향해 치달았다. 1차 표결에서 이미 유죄판결이 났다. 소크라테스가 30표만 방향을 바꾸었으면 무죄 방면되었을 것 같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 배심원 수가 501명이었다면 득표수는 유죄 280 대 무죄 221이었을 것이다. 무죄를 인정한 사람이 221명이었다면 아주 희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 정도의 분위기였다면 소크라테스가 사형까지는 언도받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 피고가 배심원들에게 형벌의 수준을 제안하는 단계에서 소크라테스가 배심원들에게 읍소하였다면 사형은 면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형량을 결정하는 2차 재판에서 오히려 죽음을 더욱 자초하는 발언으로 배심원들을 자극했던 것 같다.   

소크라테스는 3인이 합세하여 자신을 고소한 만큼 멜레토스 한 사람을 놓고 본다면, 투표수의 5분의 1을 획득하지 못한(만약 유죄 찬성자를 280명으로 볼 때, 이를 고소인 3인으로 나누면 93명이 되므로 배심원 501명의 5분의 1에 미치지 못한다) 멜레토스는 무고죄로 1천 드라크메의 벌금을 물어야 하여, 나아가 그를 사형에 처할 것을 거꾸로 제의했던 것이다.   

반면에 소크라테스 자신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나를 모함하는 사람들이 내 제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어느 누구를 위해서도 정의에 반하는 행위를 용인한 적이 없'으며, 시민들을 일깨우는 일을 그치지 않은 만큼 죄가 아니라 외려 시청사 무료 식사 제공의 영예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들이 자신이 "대화로 소일하는 것을 참다못해 부담스러워하고 싫어한다는 것을" 잘 알지만, "날마다 대화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에게 최고선이며, 캐묻지 않는 삶은 인간에게는 살 가치가 없다"고 역설했다.   

소크라테스는 시민들이 결코 자신을 침묵시킬 수 없다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자신의 목숨이 달린 재판에서 필요한, 배심원의 동정과 연민을 불러일으킬만한 설득의 언변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그는 시민들이 듣고 싶었을 말을 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의 소신을 접고 시민들의 마음에 드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회피했다.   

또 소크라테스는 자신에게 마땅한 형벌로 아주 적은 액수의 벌금형을 제시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의 이런 제안이 배심원들을 비웃는 것처럼 여겨질까 두려워한 제자와 친구들의 보증과 강권에 못 이겨 소크라테스는 30드라크메의 벌금형으로 수정 제안했다. 그러나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아테네 시민들은 '신이 보낸 등에'를 자부해 온 고집불통 소크라테스를 더 이상 견뎌낼 자신이 없었던 듯하다. 2차 표결에서 배심원들은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판결했다.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언도받은 후 최후 변론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아테네 시민들이 "우리 도시를 헐뜯으려는 자들한테서 현자 소크라테스를 죽였다는 악명과 비난을 듣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유죄판결을 받은 것이 자신이 시민들이 가장 듣고 싶었을 말투로 변론하지 못했기 때문이지만, 그렇게 변론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죽음을 피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비열함을 피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습니다. 죽음보다 비열함이 더 발이 빠르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은 사형선고를 받고 법정을 떠나지만, 고소인들은 "진리에 의해 사악하고 불의한 자들이라는 판결을 받고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소크라테스는 배심원들에게 가혹한 예언을 덧붙였다. "여러분이 나를 죽이면 여러분의 생활방식이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기 때문"이겠지만, 결과는 그와 정반대가 될 것이라고. 자신을 죽인 것보다 아테네 시민들이 더 가혹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며, 자신을 죽임으로써 비판에서 해방되려고 하기보다 "되도록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소크라테스는 코앞으로 닥친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죽음은 일종의 소멸이자 변화이므로 이승에서 저승으로 이주하는 것일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저승에 가서 미노스와 아이아코스와 같은 진정한 판관들,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 등 최고의 시인들, 그리고 팔라메데스나 아이아스 등 부당한 판결로 죽은 영웅들을 만나 자신의 경험담을 즐겁게 나눌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했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의 판결도 어떤 필연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고 믿었고, 죽음이 노고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이라고 확신했다. 늘 자신이 무엇인가 하지 말아야 할 일들에 대해 신호를 보내주곤 했다던 내면의 신 다이모니온(daimonion)이 자신을 말리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라고 여겼다.   

소크라테스는 그렇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자신의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 되짚어 보라는 말을 남기고. 

"나는 죽으러 가고, 여러분은 살러 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나은 운명을 향해 가는지는, 신 말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소크라테스의 예언은 들어맞았다. 그의 사후에 현인을 죽음으로 몰아붙인 아테네 시민들은 두고두고 역사의 심판을 받았고, 반면에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영생하게 되었다. 소크라테스는 분명 사형을 당할 만큼 중죄를 지었던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당시 배심원이던 아테네 시민들이 민주주의의 방종의 한 예로 질타 받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당시 아테네인들에게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졌을까.   

먼저 정치적 측면에서 보자.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년)에서 아테네는 스파르타에 항복하고 만다. 그 여파로 아테네의 민주정은 전복되고, 친스파르타 세력에 의한 과두정이 들어선다. 30인 참주정은 민주파 지도자는 물론 아테네 시민 1,500여명을 살해하고 재산을 몰수하는 등 혹독한 독재정치를 폈다.   

특히 참주정의 주요 지도자 가운데 예전에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받았던 크리티아스가 있었다. 물론 소크라테스가 제자 크리티아스를 부추기지도 않았고, 참주정을 옹호하지도 않았지만 아테네 시민들은 참주정에 대한 원망의 기억을 소크라테스에게도 투사한 측면이 있었다고 보인다. 소크라테스가 평소 아테네 민주정을 타락한 중우정치(衆愚政治)라며 강하게 비판해왔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또 한때 아테네의 최고 미남 스타이기도 했던 알키비아데스의 매국행위도 소크라테스에게 불리하게 작용했을 듯싶다. 그는 젊을 적 소크라테스의 사랑을 받던 제자였다. 알키비아데스는 성장하여 군사 지휘관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시칠리아 원정(기원전 415~413)을 부추겼다가 아테네의 군사 7천여 명이 몰살당하는 참변에 관계가 깊었다. 이후 그는 아테네를 배신하여 스파르타 편에서 아테네와 맞서 싸우기도 하는 등 오락가락했던 인물이다. 그 역시 소크라테스를 심판하던 배심원들의 뇌리에 부정적 이미지로 스쳤을 가능성도 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이 저지른 이런 저런 사건들은 직접적으로 소크라테스와 관련이 없었지만 아테네 민주정에 반하는 일들이었고, 이는 소크라테스의 재판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음에 분명하다. 걸출한 민주지도자 페리클레스(기원전 495?~429년)를 잃고 나서 가뜩이나 선동적 정치가들로 인해 타락해가던 아테네 민주정은 소크라테스의 비판을 견뎌낼 만한 내성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 같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의 의미를 철학적·사회적 차원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기원전 5세기 후반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여파로 민생이 피폐해지고 화려했던 문화 역량도 퇴조하면서, 올림포스 신들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자연철학자들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천둥과 벼락이 제우스의 주재가 아니라 자연현상의 일부라는 자연철학자들의 주장은 그리스인들의 신앙체계를 뿌리 채 흔들 수 있는 위험한 사상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아테네 시민들은 소크라테스가 자연철학을 탐구하고 그에 동조한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러니 그가 신을 부정하고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아테네인들은 사회불안을 야기할 수 있는 이러한 풍조가 만연되는 것을 우려했을 것이고, 그 연장선상에서 소크라테스와 같은 철학자들의 활동이 마뜩찮았을 것이다. 이 또한 소크라테스의 재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요소였을 것이다.   

아무튼 소크라테스는 당시 아테네인들에게는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는 사람으로 비추어졌던 듯싶다. 페리클레스가 활약한 기원전 5세기 중엽만 해도 아테네 민주정은 어느 정도 민중의 오판과 폭주가 제지되었고, 대중의 욕구도 어느 정도 절제될 수 있었다. 그런 기초 위에 언론 자유가 만개했다. 주요 정치지도자나 철학자들이 희극에서 신랄하게 비판받을 정도였다. 그때만 해도 소크라테스의 따가운 비판과 조언도 넉넉히 수용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랜 전쟁으로 경제가 파탄 나고 아테네의 자유정신이 퇴조하면서, 심리적으로 좌절감에 사로잡혔던 아테네인들에게 저주의 희생양이 필요했었는지도 모른다. 때마침 그들 앞에 소크라테스가 있었을 뿐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소크라테스가 활약한 기원전 5세기의 아테네의 정치사회상을 추정해 볼 수 있고,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관점과 인간됨을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거듭 거듭 읽어 보아야 할 고전 중의 고전이다. /박경귀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 ☞ 추천도서: 《소크라테스의 변론》,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숲(2012), 348쪽.

[박경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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