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세율 국가 독점…주류 판매 시스템볼라겟 평일 오후 6시면 문 닫아
   
▲ 이석원 언론인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마시는 보드카인 '앱솔루트'의 나라 스웨덴. 세계의 거의 모든 종류의 술을 쉽게 마실 수 있다는 술의 천국. 그러나 스웨덴은 세계적으로도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2014년에 나온 OECD 통계에 따르면, 2013년 국민 1인당 알콜 소비량 1위 국가는 유럽의 룩셈부르크다. 국민들이 1년 동안 평균 15.3 리터의 술을 마셨다.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1위라 술도 많이 마시는 건지. 아무튼 2위인 프랑스가 12.6 리터인 것을 감안하면 룩셈부르크 사람들의 술 사랑은 대단하다. 이때 통계로 한국은 839 리터로 22위, 그리고 스웨덴은 7.4 리터로 34개 OECD 국가 중 27위를 차지했다.

그래서일까? 스웨덴은 수도인 스톡홀름은 물론이거니와 제2의 도시인 예테보리나 제3의 도시이자 대학 도시인 웁살라 그 어디를 가도 어지간해서는 길에서 술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어지간히 술 마신 티를 내고 다니는 사람은 술집에 출입이 제한된다. 덩치가 산만한 문지기들이나 종업원들은 술에 취한 사람이 업소에 들어오려고 하면 제지한다. 당연히 술집에서 술이 흥건히 취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물론 그 사람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는 더 이상 술을 판매하지 않는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스페인 등 다른 유럽 국가들과는 사뭇 다르다. 밤만 되면 술 취한 사람들로 신변의 위협을 느끼게 되는 프랑스는 두 말할 나위 없고, 밤 문화가 한국만큼 화려하기로 소문난 스페인은 주말이면 술 취한 사람으로 거리가 가득하다. 이탈리아 로마 중앙역인 테르미니 역의 주말 거리는 멀쩡한 사람보다 술 취한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맥주 소비 1, 2위국가인 체코와 독일도 그렇다. 밤이면, 또 주말이면 거리에 넘쳐나는 것이 술 취한 사람들이다.

같은 유럽에서 사람들 간의 차이가 얼마나 될까 싶지만 이들 나라와 비교해 스웨덴에서는 술 취한 사람은 보기 쉽지 않다. 그런데 그 배후(?)에는 시스템볼라겟(Systembolaget)이라는 주류의 국가독점판매제도가 있다. 시스템볼라겟은 3.6도 이상의 술을 판매하는 국가 운영 주류 판매처다. 즉 스웨덴에서는 일반 마켓에서 3.6도 이상의 술을 살 수 없다. 대형 슈퍼마켓에서도 맥주를 판매하기는 하지만 3.5도 이하의 저알콜이다.

   
▲ 3.6도 이상의 술을 판매하는 스웨덴 국가 운영 주류 판매처인 시스템볼라겟.

   
▲ 시스템볼라겟에 전시된 술.


무슨 사회주의 국가도 아니고, 자본주의 시장이 버젓이 술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이게 무슨 시스템일까? 스웨덴 술의 국가 독점 판매 역사는 한참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 스웨덴은 지금의 스웨덴과는 거리가 멀다. 당시 스웨덴은 전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사람들은 늘 좌절감과 패배감이 팽배해 술을 많이 마셨고, 숱한 알콜 중독자들은 심각한 사회 문제였다.

결국 스웨덴 정부는 1850년 술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부터 스웨덴에는 미국 이민 바람이 불었다. 가난을 탈피하기 위해 '기회의 땅'을 찾아 나선 것이다. 1930년 이전까지 스웨덴 인구 450만 명 중 150만 명이 미국으로 가는 배를 탔다. 일부에서는 "술을 찾아 떠났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스웨덴 정부의 술 규제는 더 심해졌다. 세계 제1차 대전 중에는 한 가정 당 한 달에 2리터의 술만을 제공하는 주류 할당제를 실시한다. 심지어 맥주의 경우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만 살 수 있었다.

여기서도 멈추지 않은 스웨덴 정부는 1922년 금주법을 놓고 국민투표를 실시하기까지 했다. 월급날 술에 취한 남편이 집 앞 계단에서 널부러져 있는 것을 보고 우는 아내의 모습을 그린 포스터도 등장했다. 포스터의 문구는 '월급날 저녁, 찬성에 표를 던져라'였다. 이런 웃지 못 할 포스터까지 등장했지만 결국 금주법 국민투표는 반대 51%로 부결됐다.

금주법의 위기를 겨우 모면했지만 정부는 주류 할당제를 더욱 강화했고, 자연히 몰라 술을 사는 것을 엄격히 규제했다. 미국의 대공황 시대 금주법 보다는 약했지만 그에 못지않은 '술 줄이는 사회'는 1955년까지 이어진다. 사민당의 타게 에를란데르 총리는 1955년 주류 할당제를 폐지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웨덴 정부가 술에 대한 규제를 없앤 것은 아니다. 술에 높은 세율을 적용하고 술 판매를 국가가 독점했다. 바로 시스템볼라겟이 탄생한 것이다.

시스템볼라겟은 영업시간이 길지 않다. 심지어 토요일은 오후 3시면 문을 닫고 일요일에는 영업을 하지 않는다. 지역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평일에서 대개 오후 6시면 문을 닫는다. 대신 이곳에서는 세계의 어지간한 종류의 술을 다 만날 수 있다. 시스템볼라겟에 없는 와인은 프랑스나 이탈리아에도 없다고 할 정도다. 그리고 판매량에도 제한을 두지 않는다. 스웨덴 사람들은 시스템볼라겟에서 산 술을 가지고 대개 집이나 초대받은 집으로 가서 술을 마신다. 그러니 길거리에 술 취한 사람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스웨덴에서 4월 30일은 '발보리매소아프톤(Valborgmässafton)'이라는 명절이다. 우리말로 ‘발프르기스의 밤’이라는 뜻이다. 5월 1일이 성녀 발푸르가가 성인이 된 날인데, 스웨덴 뿐 아니라 독일과 네덜란드, 핀란드와 발틱 3국 등 북유럽 국가들도 이 날을 기념한다. 그런데 그 전날을 스웨덴에서는 '발보리매소아프톤', 또는 줄여서 '발보리'라고 부르며 밤새 공원 등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술을 마신다. 이 날만큼은 스웨덴 전역은 길거리에 남자든 여자든, 젊은이든 노인이든 술에 만취한다. 그렇게 밤을 샌다.

이들이 이 날을 기념하며 밤새 술에 취하는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북유럽의 긴 겨울이 진짜로 끝나고 봄이 됐다는 것을 축하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4월까지도 영하의 기온에 눈이 내리기도 하지만 5월이 되면 스웨덴은 거짓말처럼 따뜻해지고 햇살이 많아진다. '발보리'는 바로 그것을 축하하면서 모든 스웨덴 사람들이 술에 취하는 것이다. 대학 도시로 유명한 웁살라의 '발보리'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순전히 '발보리'에 참가하기 위해 유럽 각 지는 물론 미국과 호주 등에서도 대학생들이 찾아와 '인터내셔널'하게 술에 취하는 것이다.

덴마크에 이어 세계에서 국민의 조세 부담률이 두 번째로 높은 나라인 스웨덴. 부가가치세의 비율이 최고 30%에 이르기도 하고, 소득세 최고 세율이 70%가 넘기도 하는 세금 천국 스웨덴. 그 세금으로 세계 최고의 복지를 누리기에 기꺼운 마음으로 세금 부담을 안고 산다지만 그래도 세금 내는 것이 즐겁지만은 않을텐데, 이 날만이라도 술에 취해 그것을 잊고 싶은 것은 아닐까? 길고 지루했던 그 겨울과 함께. /이석원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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