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등 사채권자 채무 재조정 동의 여부 초미관심
사채권자 집회 앞두고 '정상화 vs 법정관리' 이견 팽팽
[미디어펜=김세헌기자]국민연금이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채무 재조정안 동의 여부 결정을 연기함에 따라 다음주가 대우조선 회생의 중대한 고비가 될 전망이다. 

   
▲ 국민연금

7일 채권단과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대우조선해양 채무재조정안의 수용 여부 등에 대해 투자위원회를 통해 다음 주 말까지 최종적으로 결론을 내릴 방침이다.

만약 국민연금이 채무 재조정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보인다면 대우조선해양은 곧바로 단기 법정관리인 ‘P플랜(Pre-packaged Plan)’에 들어가게 된다.

P플랜은 기업을 단기적으로 법정관리에 보내 법원이 강제로 채무 재조정을 한 후 워크아웃 절차로 되돌려 놓고 신규 자금을 지원하는 새로운 법적 구조조정 방식이다.

채권단이 신규 자금을 지원하면 정상화 가능성이 일단 충분하다. 하지만 비금융채무나 악성 채무가 과다해 조정이 필요한 기업이 P플랜 대상이다.
 
사전 회생계획안에는 대우조선해양의 무담보채권을 대규모로 출자전환하는 방안이 담긴 바 있다. 최소 90% 이상의 출자전환이 예상되는데, 채권자들이 대우조선의 청산 가치 정도만 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자율적 구조조정 방안 아래 시중은행은 무담보채권의 80%, 사채권자는 50% 비율로 출자전환을 요구받았으며, 이는 떠안아야 하는 손실 비중이 크게 늘어나는 것으로 뜻한다.

여기에 법원이 채무 탕감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수출입은행의 경우 자율적 구조조정 계획 아래서는 1조6000억원 규모의 무담보채권 100%를 출자전환한다.

하지만 DIP 금융(법정관리 기업대출)을 통해 대우조선해양에 신규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들고 법원에 가면 출자전환 규모가 시중은행·사채권자 등 다른 채권자들보다 줄어들 가능성 있다.

다만 P플랜 돌입 때 국책은행이 지원해야 하는 신규 자금은 '3조3000억원+알파(α)로 자율적 구조조정 하의 2조9000억원보다 증가하게 된다.

법원이 채권·채무관계를 확정 짓는 동안 자금줄이 마른 대우조선해양이 원자재 등을 공수할 수 없어 선박 건조 공정이 지연돼서다.

특히 P플랜은 일반적 법정관리와 달리 이르면 1개월 내 회생 절차 인가가 가능한데, 인가 기간이 길어질수록 국책은행이 투입해야 하는 신규 자금도 늘어나게 되는 셈이다.

더욱이 P플랜은 일종의 법정관리의 성격을 띄고 있어 선주들이 선박 건조 계약을 취소하면 자금이 더 투입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채권단과 대우조선해양은 P플랜에 들어갈 경우 선주들을 최대한 설득해 발주 취소가 없도록 한 후, 신규 자금을 지원받아 배를 내보낸다는 방침이지만, 선주가 계약서에 따라 발주를 취소하면 의미가 없어진다.

   
▲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서문으로 평일 오전 직원들이 출근하고 있다.

현재 산업은행과 대우조선해양은 기관투자자 설득을 위한 총력전을 펴고 있다. 산업은행과 대우조선은 P플랜에 들어가면 국민연금·시중은행 등 채권자들이 입어야 하는 손실이 더 커진다는 것을 이유로 내세워 채무 재조정에 동의해줄 것을 강하가 설득하고 있다. 

산업은행과 대우조선해양은 지금까지 기관투자자 27곳과 1∼2차례씩 면담을 했으며 개인투자자 1998명은 대우조선 직원들이 직접 찾아가 설득 중이다. 

산업은행 회장과 최종구 수출입은행장,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오는 10일 국민연금·우정사업본부 등 32개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어 직접 대우조선의 정상화 계획을 밝힐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전날 대우조선해양이 채무 재조정에 실패하면 단기 법정관리인 P플랜 돌입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우조선해양의 회생의 키를 쥐고 있는 국민연금 등 회사채 투자자 대상 집회를 열흘 앞두고 구조조정 절차와 과정을 반드시 이행할 뜻을 밝힌 것이다.

임 위원장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자율적 구조조정이 잘 마무리되길 기대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P플랜이 불가피하다"며 산업은행·수출입은행·대우조선이 관련 전문가와 P플랜을 준비 중이며, 준비가 사실상 마무리됐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은 ▲대우조선 노동조합의 임금 삭감 ▲시중은행의 채무 재조정 합의 ▲회사채 투자자의 채무 재조정 합의 등 세 가지 요건이 모두 충족될 경우 대우조선에 신규자금 2조9000억원을 투입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P플랜에 보낸다는 방침이다.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생산직과 사무직 전 직원을 대상으로 임금 10%를 추가 반납하고 무분규로 수주 활동을 지원한다는 데 합의했다.

시중은행의 채무 재조정은 거의 합의에 이른 상태로, 금융당국은 이번 주 말이나 늦으면 다음 주 초까지 협의가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최대 관건은 역시 국민연금 등 사채권자들의 채무 재조정 동의 여부다. 대우조선해양은 오는 17∼18일 이틀간 다섯 차례의 사채권자 집회를 열어 총 1조3500억원 규모의 회사채 50%를 출자전환하고 나머지는 만기를 3년 연장하는 안건을 올릴 예정이다.

금융당국은 대우조선해양이 어떤 식으로 정리될 것인지, 어떤 정상화 목표가 있는지 모두 제시된 만큼 사채권자의 합리적 선택만이 남아 있다는 입장이다.

채권단 한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이 P플랜에 들어가면 채권자들은 손실 부담 비율이 확대되고, 산업은행·수출입은행도 추가 자금지원 규모가 늘어나는 만큼 모두에게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했다.

한편 국민연금이 다음 주 말까지 최종 결론을 내기로 하자 대우조선해양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다시 한 번 국민연금을 만나 설득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산업은행은 그간 세 차례 국민연금 측에 면담을 요청했으나 실제 만남은 한 차례만 성사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