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일자리 문제' 해소 도구
관련 업계 "단순 표심 위한 공약 그쳐"
[미디어펜=홍샛별 기자]대선 후보들이 미래먹거리로 ‘4차 산업혁명’ 관련 공약을 쏟아내고 있지만 근시안적 정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변화에 대한 면밀한 진단이나 고유한 철학 없이 ‘수박 겉 핥기식’ 공약들이 주를 이룬다는 평가다.

   
▲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주요 정당의 대선 후보들이 저마다 ‘4차 산업 혁명’ 관련 공약을 쏟아냈지만 근시안적 정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카이스트(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이 최근 발간한 ‘제19대 대통령 선거 정당별 과학 정책 분석’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정의당(기호순) 등 5개 정당 대선 후보 대부분이 4차 산업 혁명 관련 정책들을 ‘일자리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보는 경향이 짙다. 

4차 산업 혁명이 막대한 일자리를 창출하거나 빼앗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5개 당 대선 후보의 10대 선거 공약에도 이 같은 관점이 잘 드러난다. 

문재인 후보(더불어민주당)는 ‘일자리를 책임지는 대한민국’ 공약 안에 4차 산업혁명 관련 정책을 포함시켰다. 공약의 목표에서도 ‘혁신적 4차 산업 경제 생태계 구축으로 좋은 일자리 창출’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구체적 이행 방법으로는 대통령 직속의 ‘4차 산업혁명 위원회 설치’를 들고 있다. 정부가 직접 나서 4차 산업 혁명을 선도하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해당 위원회의 구성이나 역할 등의 구체적 언급은 없다.

안철수 후보(국민의당)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여느 후보들 보다 자주 언급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실제 그는 10대 공약 중 두번째로 ‘교육·과학기술·창업혁명으로 경제성장과 미래준비’를 내놓았다. 그러나 면밀히 들여다보면 이 역시 ‘좋은 성장, 좋은 일자리’의 하위 공약임을 알 수 있다. 

예측이 어렵고 융합적인 특성을 지닌 4차 산업혁명을 정부가 아닌 민간이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는 인재 양성 및 생태계 구축 등을 통해 민간 주도를 돕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는 관점이다. 

4차 산업혁명 관련 공약을 전면에 내세운 후보도 있다. 

홍준표 후보(자유한국당)는 ‘4차 산업혁명 선도와 작고 효율적 정부’를 10대 공약 중 9위로 내놓았다.  

실행 방안으로는 ‘정보과학기술부 신설’, ‘창업·투자 펀드 조성으로 벤처 기업 적극 육성’ 등을 주장했다. 그러나 홍 후보 역시 4차 산업혁명과 과학 기술 정책을 ‘좋은 일자리 창출과 역동적 경제’라는 큰 틀 안에서 다루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긴 어렵다. 

또 작고 효율적인 정부 실현을 지향한다고 밝히면서도 공약에서는 다양한 정부 부처, 위원회 신설을 제안한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꼽힌다.

   
▲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 KBS스튜디오에서 제19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제1차 토론회가 열린 가운데, 참가한 대선 후보들이 손을 맞잡은 채 활짝 웃고 있다. /사진=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홈페이지

심상정 후보(정의당)는 4차 산업혁명을 10대 주제로 삼고 있지는 않지만 해당 혁명이 가져올 부작용에 유일하게 관심을 가진 점이 돋보인다. 

심 후보의 8위 공약인 ‘사람중심의 교육혁명과 과학기술·정보통신’을 살피면 4차 산업혁명을 교육, 노동, 일자리 등의 잠재적 위험 요소로 인식하는 경향이 뚜렷함을 알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사회적 충격 완화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정부는 리스크가 커 민간이 하기 어려운 연구에 대해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노동 위기 관점에서 기술적 실업에 대비한 노동정책(노동 시간 단축, 재교육 시스템)을 강조하고 있다. 

유승민 후보(바른정당)의 10대 공약에서 4차 산업혁명 관련 정책을 포함하지 않았다. 유 후보는 4차 산업혁명은 이를 주도할 ‘인재’가 핵심이라는 인식 아래 ‘인재 육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 4차 산업에 특화된 교육이나 창업 정책을 제시하기보다는 수업 방식 다양화 등 기존 교육 정책을 개선하는 정도의 정책들이 주를 이룬다.

과학계는 대선 후보들의 이 같은 4차 산업 관련 정책들이 표심을 위한 공약에 그치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토로한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연구팀은 "후보들이 대부분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중요하게 여기고 있지만, 정작 4차 산업혁명이 어떤 위기와 기회를 가져올 지에 대한 진단이나 철학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21개 정부출연 연구기관으로 조직된 출연연 연구발전협의회 총연합회 소속 한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변화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이를 단순히 일자리 창출을 위한 도구로 봐서는 곤란하다”며 “새로운 변화에 살아남을 수 있으려면 국가는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지원과 정책을 통해 우리나라 과학 자체의 경쟁력을 키워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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