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CEO 자리 '정권의 전리품'은 그만
공정 절차 거친 CEO 선임, 과거 악습 벗어야
   
▲ 산업부 조한진 차장
[미디어펜=조한진 기자]"새 정부가 출범하니 또 여기저기서 이상한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하루가 중요한 시기인데 회사 분위기가 뒤숭숭해질까 걱정입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재계에서는 KT와 포스코에서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됐던 '정치권의 외풍'이 사라질지에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KT와 포스코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압에 의해 최고경영자(CEO)가 교체되는 '정권의 전리품', '낙하산 인사' 논란을 겪어왔다.

특히 황창규 KT 회장과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모두 올해 연임에 성공한 CEO라는 점에서 이번 정권 교체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KT는 연임에 성공한 CEO가 정권 초기 검찰 수사를 받고 사임하는 일을 두 차례나 겪었다. 이명박 정부 1년 차 때 남중수 당시 사장이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되면서 사임했고, 후임 이석채 회장도 박근혜 정부 1년 차 때 배임 혐의로 압수수색을 받은 직후 회사를 떠났다

포스코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정준양 포스코 전 회장이 2012년 연임에 성공으나 2014년 2월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회장직에서 물러났고, 현재 배임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과거 공기업이었던 두 회사는 민영화된지 이미 수십년이 지났다. 완전한 민간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정권 교체기에 불어닥치는 외풍은 여전히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KT와 포스코는 우리나라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핵심 기업들이다. 이 같은 기업들이 정권 교체기마다 정치 외풍에 흔들리는 모습은 대외 신뢰도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 황창규 KT 회장 /사진=KT 제공

황창규 KT 회장과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올해 초 나란히 연임에 성공했다. 각 회사들은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CEO의 업무 성과와 자질을 철저히 검증했다. 이후 주주총회를 거쳐 연임안을 통과시켰다. 회사와 주주 모두 두 CEO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고, 회사의 운명을 다시 맡기기로 결정한 것이다.

두 회장은 과거 정권 교체기에 KT와 포스코를 흔들었던 외풍을 잘 알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자리 보다는 조직을 더 걱정하고 있다.

황 회장은 지난달 28일 개최된 코퍼레이트 데이에서 "외풍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일관되고 투명한 경영활동을 위해 임직원과 주주 등 이해 관계자들과 충분히 시간을 갖고 공감대를 확보해 글로벌 최고 수준의 선진 지배구조를 정착시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KT 내부에서도 황 회장의 경영 철학과 사업방향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이다. 

권 회장 역시 지난 3월 중기전략 발표에서 "정경유착 근절, 경영후계자 육성 등을 포함한 경영 쇄신을 적극 추진해 주주가치를 중시하는 기업,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신뢰받는 글로벌 모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취임 일성에서 "문재인 정부 하에서는 정경유착이란 말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순실 게이트'로 불거진 국민들의 실망, 정권과 대기업의 유착 등 과거와는 다른 모습의 대한민국을 약속한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민간기업의 투명한 지배주고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공약도 약속했다.

   

KT와 포스코 모두 생존을 위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현재 두 CEO는 격변하는 시장 환경에서의 회사의 경쟁력 제고를 절치부심하고 있다. 다시 정부 입맛에 맞는 CEO가 내려올 경우 KT와 포스코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조직을 다시 정비하고 정상적인 경영활동까지는 수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 ‘골든타임’을 놓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황 회장과 권 회장 모두 경영성과를 인정받고 정당한 절차에 거쳐 다시 CEO직을 맡았다. 두 CEO 모두 강도높은 개혁으로 위기를 극복했고 회사의 체질을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 대통령은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권의 입맛에 맛는 인사가 다시 KT와 포스코 CEO 자리에 오른다면 KT와 포스코가 '정권의 전리품'이라는 꼬리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새 정부는 과거의 악습을 되풀이 해서는 곤란한다. KT와 포스코 모두 정부 지분이 없는 민간기업이다. CEO 선임 등은 시장 논리에 맡기는 것이 합당하다. 회사 경영을 제대로 못하는 CEO를 그냥 바라볼 주주는 어디에도 없다. 

이제 정부는 민간기업 스스로 정치권 외풍 차단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힘을 실어 줘야 한다. 기업 자율성 보장을 명확히 해 기업지배구조 개선의 정당성을 얻는 동시에 기업가치도 높여주는 정부의 조력자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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