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총 비정규직 입장에 '십자포화'…재계, 화들짝
재계 "새정부 재계와도 '협치' 고려해 줬으면"
[미디어펜=조한진 기자]문재인 정부가 ‘재벌개혁’과 ‘비정규직 축소’ ‘규제강화’ 등 기업관련 정책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재계가 벙어리 냉가슴이다. 새 정부와의 ‘소통부재’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기업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정부에 전달할 수 있는 통로가 사실상 막혔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이 26일 통의동 국정기획위에서 열린 공정거래위원회 업무보고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정부와 기업, 기업과 정부’의 쌍방향 소통이 사실상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재계의 입장을 대변했던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최순실 사태’의 직격 탄을 맞으면서 역할이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여기에 대한상공회의소가 추진했던 대기업위원회 신설도 없던 일이 됐다.

게다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후보자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 실장 등 ‘재벌 저격수’로 불린 진보 경제학자들이 새 정부의 정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주요 자리에 포진하면서 기업들은 몸을 바짝 낮추고 있다.

재계는 최근 다시 한 번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경제단체 고위 관계자가 비정규직과 관련한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자 국정기획자문위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까지 이를 강하게 반박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김영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부회장은 지난 25일 포럼에서 “사회 각계의 정규직 전환 요구로 기업들이 매우 힘든 지경이다. 특히 중소기업은 생존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새 정부가 추진하는 일자리 창출 정책에 대한 기업들의 입장을 전한 것이다.

이튿날 경총에 십자포화가 쏟아졌다. 대통령 인수위원회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논평을 내고 “경총 부회장의 비정규직의 정규직전환에 대한 비판을 대단이 유감스럽고 안이한 발상”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김진표 국정기획의 위원장은 “재계가 압박이라고 느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가 변하지 않는다”라며 “잘못된 기득권을 정상으로 가져오는 개혁에는 고통이 따른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경총도 비정규직으로 인한 사회적 양극화를 만든 주요 당사자 중의 한 축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유감의 뜻을 전했다.

재계는 정부의 이 같은 ‘강경 모드’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기업의 의견 표명’을 정부가 국정과제 추진의 걸림돌인 것처럼 몰아붙이고 있다며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정책에 대한 재계의 목소리를 밖으로 표출할 수 있는 
기업과 단체가 얼마나 되겠냐”며 “문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강조해온 ‘협치’를 재계와의 관계에서도 고려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재계는 새 정부와 수시로 소통할 수 있는 창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북핵 리스크와 미국·중국 'G2'의 보호무역 강화 등 대내외 환경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와 재계의 협업이 필수라는 것이다.

앞서 2003년 1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통직인수위원회와 재계의 갈들이 불거진 사례가 있다. 당시 전경련 김석중 상무가 "인수위의 목표는 사회주의"라는 말을 했다고 미국 뉴욕 타임스가 보도하면서 파문이 확산됐다. 사실과 다르다는 전경련의 해명에도 불신의 골이 깊어졌다. 정부와 재계의 관계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지면서 시너지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 2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중견기업 100만+ 일자리 박람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재계는 일자리 확대와 투명 경영 등 새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 큰 틀에서는 공감을 표하고 있다. 미래 성장동력 확보와 선진 기업문화 정착을 위해서는 필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속도와 방법 등은 새 정부가 기업들의 현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존 고용 구조를 개선하고,  체질 개선 등을 위해서는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미 설정된 프레임만을 고수하면서 끼워 맞추기식으로 개혁을 추진하면 되레 부작용이 속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새 정부가 염두에 두고 있는 민주경제화와 재벌 개혁, 고용개선 정책 등 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사안”이라며 “‘당장 바꾸자’식의 급진적인 개혁 보다는 기업이 자구책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점진적으로 경제 환경을 바꾸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실제 재계는 급변하는 환경에 갈팡질팡하고 있다. 최근 일부 기업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결정하고, 협력사 상생 프로그램 강화 계획을 발표하고 있지만 새 정부의 경제 정책에 보조를 맞추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주변에서는 일단 상황을 더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강하다. 밖에서는 사소하게 여길 수 있는 제도 하나도 기업들에게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우리 경제 전체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는 기업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정부의 유연한 정책 수립도 필요하다”고 했다.
[미디어펜=조한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