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대 이후 '한국인의 미국 사랑'의 결실
친중 자주외교란 아편전쟁 이전 회귀 신호탄
   
▲ 조우석 주필
6월 말 한미정상회담이 휘청대온 동맹관계를 강화하는 계기일까, 그 반대로 작용할까? 당초 정상회담은 동맹관계를 재확인하고 북핵 완전폐기를 최우선 이슈로 한다고 한미 양국에서 발표했지만, 현재로선 낙관할 수 없다. 뜻밖의 사드 논란으로 한국이 친북-친중 자주외교의 깃발을 들면서 예상보다 크게 경직된 국면이 지금이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국방부의 누락 보고를 문제 삼을 때 미국은 벌써 눈치를 챘다. 곧바로 환경평가를 들고 나오자 속으로 끓고 있는데, 이게 트럼프 식 미국 우선주의와 충돌할 땐 양국관계의 앞날은 예측 불허다. 현재 양국에서 나오는 미군 철수, 한미동맹 와해 뒷얘기는 당신의 상상 이상이다.

차분한 성찰과 봉합 노력이 절실한 지금 한미관계 위기란 한국이 원인 제공을 했다는 걸 전제로 해야 이해가 된다. 87년 체제 이후 특히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반미가 구조화됐다는 걸 세상이 안다. 그 이전, 80년 광주사태가 반미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지만, 그게 대학 커리큘럼에 스며들고 정치권을 물들이더니 끝내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켰다.

개화기 이래 미국은 우리에게 특별한 나라

놀라운 건 문재인 정부가 예상보다 교조적이며, 임기 초반부터 한반도 주변환경 변화에 손을 대는 과감성이다. 그래서 두렵다.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와해 이후 대한민국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요즘 그 얘기가 식자층 사이에 분분한데, 미국-북한 평화협정 체결을 포함한 대격변 속에 '한국의 소멸'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이가 적지 않다.

분명한 건 이 모든 게 지난 대선 유권자의 선택이란 점이다. 어리석은 대중들에게 책임을 떠넘기자는 게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이념적 성향을 충분히 알리지 못한 우리 한계에 대한 자성이다. 이럴수록 대한민국 운명과 결부돼온 한미관계의 특수성에 대한 역사적 성찰도 요구되는데, 개화기 이래 미국은 우리에게 썩 특별한 나라였다는 인식이 우선이다.

논문 '개화기 한국인의 대미인식'을 쓴 원로 역사학자 유영익 교수에 따르면, 지구촌에 유례 드문 한국만의 호의적 미국 인식은 이승만이 1950년대에 일방적으로 심은 게 아니다. 뿌리는 그 1세기 이전인 1850년대이며, 개화기에 접어들면서 집권층-식자층의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첫 계기는 아편전쟁(1839~42년)에서 중국의 굴욕적 패배다. 중국 중심의 이른바 천하질서가 깨져나간 직후 '서양 바로보기'가 유행이었는데, 유독 미국이 모델로 올랐다. 개항(1876년) 직후 내우외환에 시달리면서 독립과 부국을 꿈꿀 때 미국 선호가 유난히 뚜렷했다. 미국과 수호통상조약(1882년)을 맺은 뒤 외교적 지원과 인적 물적 지원을 기대하면서 미국 선호현상은 거의 빅뱅에 가까웠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6일 미·중·일·러 ·유럽연합 주요국 특사단과 오찬 간담회를 하기 위해 청와대 본관 인왕실로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송영길 러시아특사, 문희상 일본특사, 문 대통령, 홍석현 미국특사, 이해찬 중국특사./사진=연합뉴스

미국에 대한 전략적 선택을 강조한 중국 외교관 황준헌의 <조선책략> 영향도 있었지만, 일방적인 미국 사랑은 자발적 현상이었다. 그걸 전한 매체는 많이 알려진 <조선책략>보다는 <한성순보>, <독립신문>였다. 두 매체가 "믿고 의지할 나라", "영토 욕심 없는 나라"란 인식을 심어줬다.

호의적 미국 인식의 하이라이트가 보빙사(외교사절단) 민영익의 발언이다. 그는 "나는 광명 속으로 들어갔다가 암흑으로 되돌아왔다"고 훗날 유명해진 미국 방문 소감을 밝혔다. 개화기 지성계 3인방으론 유길준-김윤식-윤치호가 꼽히는데, 그들은 지미파(知美派)란 공통점이 있다.

미국이야말로 이 나라에 영향력을 발휘할 좋은 파트너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는데, 그걸 개화기 대중이 암묵적으로 지지했다. 그런 역사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일제 36년을 건너뛰어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서 '우방 미국'에 대한 애정이 그토록 견고했다.

한미동맹 깨지면 한반도는 다시 화약고

즉 건국 전후 한국인 대다수가 미국을 최강의 문명국으로 받아들인 것은 이승만의 외교정책 영향만은 아니다. 이승만의 역할은 한국인의 오랜 미국 사랑에 불을 붙이고, 그걸 제도화했다는 점일까? 다만 한미동맹의 위력을 가장 정확하게 짚어낸 것은 단연코 그였다.

한미상호방위조약 가조인 직후인 1953년 8월 이승만 대통령이 "우리 후손들이 누대에 걸쳐 이 조약으로 갖가지 혜택을 누릴 것"이라고 예언했던 것은 아주 유명하다. 그래서 지금 우린 되물어봐야 한다. 2017년 지금 한국인들은 60년을 넘긴 평화-번영의 위대한 체제인 한미동맹을 왜 허물기로 작정한 듯이 행동하는가?

국제정치학자 이춘근 박사에 따르면, 동맹관계가 60년을 넘긴 것 자체가 국제정치학적으로 유례가 많지 않다. 한미동맹은 그만큼 성적표가 썩 양호하다. 가장 강한 국가와 가장 약한 나라 사이의 '어울리지 않는 동맹'이 이토록 위력을 발휘한 진귀한 사례다.

한미동맹을 맺기 전 우리역사를 보라. 청일전쟁, 러일전쟁,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 6.25전쟁…. 이 빈발했던 전쟁을 막고 한반도 장기평화를 가져온 게 다름 아닌 한미동맹이었다. 그래서 "우린 지금 무얼 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상식이지만 친북-친중 자주외교란 중국 중심의 천하질서 회귀다. 우린 지금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

또 하나, 문재인 정부 등장 이전 한미관계는 멀쩡했는가? 꼭 그것만도 아니다. 노태우-김영삼 정부 시절부터 한미관계는 조금씩 흔들려왔다. 동맹을 허무는 쪽의 힘이 그토록 강하고 오래됐다는 인식을 해야 2017년 여름 그것에 제대로 대응하는 힘도 키울 수도 있다. 그 얘기는 바로 다음 기회에 전할 생각이다. /조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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