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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귀단장 고전특강(173)-그리스 고전문학과 자연과학의 탁월한 해석
승인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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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인 2017-06-24 08: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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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173)-그리스 문명에 대한 통찰의 묘미 
앙드레 보나르(1888~1959) 『그리스인 이야기 2』

   
▲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앙드레 보나르, 그리스 역사와 문화, 고전을 이처럼 감칠맛 나면서, 깊이 있게 조명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1888년 스위스 로잔에서 태어난 앙드레 보나르는 로잔 대학의 교수로 평생을 그리스 연구에 천착하면서 그리스 문학과 문명을 조명하는 수많은 명저를 남겼다. <그리스인 이야기>는 그리스의 역사, 신화, 문학, 건축, 과학, 종교, 철학, 정치 분야 등 모든 영역의 유산과 의미에 대해 예리한 통찰과 따뜻한 감성으로 집대성한 책이다. 그리스 문명사 분야의 세계적인 고전으로 손색이 없다. 

앙드레 보나르가 탐색하고 재해석하는 그리스문명의 진수는 그리스인들이 남긴 비극과 희극, 조각과 미술, 서정시, 역사와 철학, 과학, 의학 등 전방위에 중첩되어 있다. 그리스 고전 시대의 모든 유산에 대한 그의 풍부한 지식과 통찰이 이런 유산들에 담긴 의미와 상징을 종횡으로 읽어준다. 이 책은 그의 뛰어난 관찰력과 해석력 덕분에 그리스 문명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는 데 더 없이 좋은 동반자이다.   

특히 앙드레 보나르는 그리스 문학 전공자답게 그리스 문학 작품의 해설에서 더욱 민감한 감수성으로 작품 속에 감춰진 내면을 생생하게 끄집어내고 새로운 의미를 읽게 해준다. 이 책은 그리스 고전 문학의 어떤 해설서보다 독창적 해석과 다각적 분석을 풍부하게 보여준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의 평론이 분석적이면서도 건조하지 않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서사시를 보는 듯 섬세한 감성을 현란한 은유로 표현하는 문장이 압권이다.   

예를 들어 앙드레 보나르는 소포클레스가 <안티고네>에서 안티고네와 크레온 사이에 대립하는 가치의 충돌을 보여줌으로써 "삶에 대한 전적인 사랑이 아니고서는 어느 누구도 죽을힘을 발휘하자 못한다"는 주제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한다.  

크레온의 칙령을 어기고 오빠 폴뤼네이케스의 장례를 치러주고 죽음을 택하는 안티고네는 "우리 안에서 살아나면서 밝은 빛을 발한다. 안티고네는 눈을 멀게 하고 가슴을 태워버리는 진실이다." 하지만 저자는 공포의 권력자 크레온 역시 우리와 닮은 미워할 수 없는 비극적 인간형임을 깨닫게 하는 소포클레스의 예술적 천재성을 놓치지 않는다.   

앙드레 보나르는 대리석과 청동을 갖고 수많은 신과 인간을 형상화해냈던 타고난 조각가였던 그리스인의 열정과 능력에 찬탄한다. 그들이 만들어낸 엄청난 양의 뛰어난 조각 작품들은 유럽의 유수의 박물관을 채우고 있다. 저자는 그리스 조각의 기원이 되는 벌거벗은 남자의 입상인 쿠로스와 옷을 입은 여자 입상 코레를 통해 젊음과 기쁨을 표출했던 그리스 조각의 함의를 읽어낸다. 위엄과 관능에 가까운 부드러움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조각상들은 신을 재현하고자 하는 예술가의 신에 대한 경외심의 표출이다.   

조각술을 창시한 뮈론,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바탕으로 최고의 걸작을 만들어내던 폴뤼클레이토스, 신들을 인류에 가까운 형상으로 표현해낸 거장 페이디아스의 사라지거나, 혹은 부분적으로 현존하는 작품들이 보여주는 독특한 아름다움에 대한 해석에서도 우리는 눈을 떼기 어렵다. 

앙드레 보나르는 과학을 탄생시킨 탈레스, 데모크리토스의 유물론의 의미도 명쾌하게 해석해준다. 그리스 세계가 신화를 벗어난 과학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자유로운 지성을 존중했던 이오니아 지방의 사회적 분위기가 배경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로써 이오니아는 '그리스의 바벨탑'이 될 수 있었다.   

여러 국가의 상인과 공학자, 과학자들이 밀레토스를 비롯한 이오니아 지방의 연안 도시로 몰려들었다. 탈레스는 일식현상을 최초로 주장했고,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의 근원이 되는 '원소'에 대해 궁구했다. 자연과학자들은 실증적이고 실리적인 정신에 입각해 자연을 관찰하고, 자연계의 규칙을 발견하고자 애썼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세계 최초의 지도를 작성했고, 천문관측기구를 이용해 해시계를 만들었다. 유물론자로 불린 이들의 최고봉은 ‘원자’의 개념을 창안해낸 데모크리토스였다. 그는 플라톤보다 더 방대한 저작을 기술했지만, 지금까지 온전하게 전해지는 저작이 한 권도 없다는 점이 아쉽다. 저자는 그리스 최고의 과학자로 물질을 사랑한 죄(?)로 핍박을 받았던 데모크리토스의 학설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앙드레 보나르는 오로지 진리만을 추구하며 자신의 죽음을 담담히 수용한 소크라테스의 일생도 조명해준다. 그는 아테네 시민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음을 맞이한 소크라테스의 철학정신과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환경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이나 <크리톤> 등 플라톤의 저작을 읽어본 독자라면 왜 소크라테스가 신을 부정하고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이유로 사형까지 받아야만 했는지 납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의 명쾌한 분석을 통해 소크라테스의 죽음의 인과관계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그의 진리 추구에 대한 집요함과 어떠한 타협에도 굴하지 않는 철학자적 양심과,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패한 이후 아테네 시민들이 느낀 좌절과 분노, 진리의 추구보다 아테네의 재흥을 꿈꾸던 실용적 목적에만 매달리던 시민들의 몰이해가 결합되어 만들어낸 필연의 결과였다.   

그리스 최고의 지리학자이자 역사학자이던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대한 해설도 흥미롭다. 저자는 여러 지방에 직접 발로 뛰면서 자료와 정보를 취득하고 탐문하면서, 그리스를 넘어 당대의 세계의 풍물과 관습, 제도와 사람들의 삶을 탐사해낸 헤로도토스의 지적 호기심과 열정에 감탄한다.  

하지만 헤로도토스가 지나치게 귀가 얇아 방문지의 낯선 이야기들을 충분한 검증 없이 수용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그대로 차용하는 등 의도하지 않았던 실수들도 있었다는 점을 꼭 짚어낸다. 저자는 이를 통해 다른 문헌이나 정황 해석을 통해 진실의 여부를 판별하게 해준다. <역사>를 읽는 독자라면 앙드레 보나르가 지적하는 대목들을 재확인하면서 읽는 것도 유익할 듯싶다.   

최고의 인본주의 의사 힙포크라테스의 독창적 의학, 풍자와 해학이 뛰어났던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작품, 그리스 언어의 대가인 서정시인 핀다로스의 작품, 최고의 비극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에 대한 평론도 탁월하다. 앙드네 보나르는 그리스 문학작품에 대한 최고의 문학평론가일 듯싶다. 그의 평론은 단순한 문학작품의 예술성에 대한 탐색을 넘어선다. 당대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바탕으로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구성 내용에 스민 의미를 총체적으로 조명해주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를 제대로 읽어 본 사람이라면 앙드레 보나르의 해석력이 얼마나 탁월한 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듯싶다. 특히 소포클레스가 75세에 <오이디푸스>를 쓴 이후, 죽기 전인 90세에 다시 쓴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를 비교분석한 대목은 소포클레스의 문학적 깊이와 천재성을 실감하게 해준다.   

이 책은 한 권으로 그리스 문명을 이해하고 싶은 독자에게 주요 인물들의 사상, 작품, 흔적을 한꺼번에 요약해서 보여준다. 나아가, 그리스의 각 분야의 걸출했던 인물들이 남긴 작품과 사상을 이미 개별적인 저작을 통해 접한 독자들에게 자신이 느꼈던 감동을 재확인시켜주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과 가치를 재발견하게 해준다. 

따라서 그리스와 그리스인들을 이해하려는 독자들에게 사전적 또는 사후적 지침서가 될 것 같다. 그리스 문명의 진수를 맛보고, 앙드네 보나르의 통찰의 묘미를 제대로 느끼려면, 이 책에 소개된 개별 작품과 저작을 꼭 찾아 읽을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박경귀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 ☞ 추천도서: 『그리스인 이야기』제2권, 앙드레 보나르 지음, 양영란 옮김, 책과함께(2011, 2쇄). 506쪽.

[박경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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