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목표와 달리 전통시장 활성화 도움 안돼
[미디어펜=나광호 기자]"아무리 나쁜 결과로 끝난 일이라고 해도 애초에 그 일을 시작한 동기는 선의였다."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정치인이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좋은 결과를 만들겠다는 의도로 시작한 일이 오히려 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최근 당정이 전통시장을 살리겠다는 취지로 복합쇼핑몰·대형마트 의무휴업 도입 및 확대를 골자로 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발의한 가운데 이같은 규제가 오히려 전통시장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제2의 단통법'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사고 있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은 통신업체 및 제조업체가 지원하는 판매보조금의 상한선을 33만원으로 설정, 누구든지 차별 없이 휴대폰 단말기를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지난 2014년 10월 도입됐다.

그러나 시행 이후 단말기 판매 감소로 인해 이동통신대리점들이 잇따라 폐업했으며, 단말기 지원금이 30% 가량 감소해 소비자들의 부담이 늘어나는 등 부작용이 발생했다.

또한 당초 목표했던 단말기 출고가 인하에 대한 체감도도 크지 않아 목표 달성에 실패한 것으로 평가된다.

서울 강서구에서 휴대폰 대리점을 운영했던 김 모씨(55)는 단통법에 대해 "대리점과 소비자 모두를 힘들게 만든 법"이라며 "'된통법'이라고 부르는게 맞지 않겠는가"라고 꼬집었다.

대형마트 월 4회 휴무·복합쇼핑몰 월 2회 의무휴업을 규정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도 이와 비슷한 효과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 스타필드 하남 내부 전경/사진=신세계 프라퍼티


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국내외 전통시장 책자를 보면 전통시장의 위치를 복합쇼핑몰과 연계해서 소개한다"며 "복합쇼핑몰이 들어서면 인근의 전통시장이 무너지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유동인구를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스타필드 하남은 지난해 오픈한 이후 1년간 1000만명 가량의 고객이 방문했다"면서 "이 가운데 1%인 10만명이 주변 상권을 이용해도 하남시 인구의 43%가 다녀간 것과 같은 셈인데 복합쇼핑몰이 휴업을 하게 되면 이같은 효과가 반감된다"고 부연했다.

한 대기업 산하의 연구소 관계자는 "지난 2011년 대형마트 의무휴업이 도입됐지만 전통시장 활성화라는 정책 목표는 달성되지 않았고, 대형마트의 매출도 감소하는 등 4조 가량 소비가 증발하는 결과만 낳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비자들의 행동·소비패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은 규제는 상인과 소비자 모두에게 피해를 줄 뿐"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전통시장의 일 평균 매출은 2012년 4755만원·2013년 4648만원·2014년 4672만원에 이어 2015년 4812만원을 기록해 매출액에 큰 변동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고, 같은 기간 대형마트의 매출도 규제 도입 이전 6.4%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판매가 급감한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의 CD형 사전 때문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백과사전 대신 PC를 구매했기 때문"이라며 "유통산업발전법은 경쟁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상품·서비스의 질을 비롯한 소비자들을 니즈를 충족시키는 판매자가 생존하는 것이 시장원리"라며 "이같은 규제는 소비자의 선택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시장의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편 규제가 도입된 이후 소비자들은 "집 주변에 전통시장이 없는데 대형마트가 문을 닫으면 물건을 사기 어렵다", "왜 소비자의 권리가 제한당해야 하느냐", "한 번에 1주일치 장을 보더라도 전통시장에는 가지 않을 것" 등의 반응을 보였다.

조동근 명지대학교 교수는 이에 대해 "대기업을 누르면 소비자가 전통시장을 선택한다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라며 "소비자는 정부가 의도한 대로 지갑을 열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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