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대 키우지 않는 한국 보수정당의 폐쇄성과 배타성 미래없어
   
▲ 윤주진 영국 UCL 정치학 석사과정
수백명의 청중 속에서 교복을 말끔하게 차려 입은 열일곱의 한 남학생이 번쩍 손을 들었다. 마이크를 넘겨 받은 그 학생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는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고등학생입니다. 저는 곧 있으면 대학에 갑니다. 대학교에 진학하면 과연 제가 어떻게 주변 친구들에게 보수 정당을 지지하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좋은 방법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학생의 질문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주변에 앉은 어른들은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그 학생을 응원했고, 뒤에 앉은 어떤 할머니는 학생의 어깨를 두드리며 계속해서 뭔가 이야기를 했다. 물론 들리진 않았지만 아마도 힘내라, 자신감을 가지라는 식의 격려가 아니었을까. 토론자로 참석한 한 교수는 "우리 학교에 진학하면 내가 직접 알려줄 테니 원서를 넣어라"라고 대답해 청중이 한바탕 크게 웃기도 했다. 

이는 지난 11월 27일, 런던의 한 교회 강당에서 한 언론사 주최로 열린 '보수당의 미래는 무엇인가(What is the future of the Tory party?)'라는 컨퍼런스에서 필자가 직접 목격한 장면이다. 그저 젊은 사람이 보수정당을 지지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와 찬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영국에서나 한국에서나 별반 다를 것이 없나보다 싶었다. 

실제 최근 영국 보수당의 젊은층 지지율 하락은 보수당 정치인과 지지층 사이에서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과반 의석 확보에 성공하며 단독정부 구성에 성공했던 2015년과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열린 2016년, 그리고 최근 보수당의 과반의석 실패로 귀결된 2017년 조기총선을 거치면서 가장 낮은 투표연령대인 18세 24세 미만의 득표율은 급속도로 하락했다. 

한 여론조사 기관이 집계한 2017년 조기총선 투표 결과를 보면 40세 미만 세대의 경우 보수당 득표는 20%대를 벗어나지 못한 반면 노동당은 대부분 세대에서 60% 이상 득표했다. 대거 노동당 지지로 넘어가면서 이른바 '젊은 코비니스트(Young Corbyninst:노동당 당수인 제레미 코빈의 지지자)’로 돌아선 것이다. 

이 같은 추세는 지난 5월 한국의 대선 결과와도 유사한 것이며, 사실 전세계 어느 나라를 가나 보수당이 젊은층 사이에서 고전한다는 점은 보편적인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점차 정당에 대한 투표 성향이 '세대'에 따라서 구분지어진다는 분석에 맞아 떨어지는 흐름이기도 하다. 

토론회를 계속 지켜보면서, 토론자와 청중이 주고 받는 질문과 답변, 지적 나오는 질문 등을 들으면서, 영국의 보수당과 지지자들이 느끼는 위기의식의 두께가 훨씬 더 두텁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저 막연히 어쩔 수 없는 위기, 별다른 해법이 없는 현상쯤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깊은 고민을 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 한국에서는 보수당의 '젊어지기 위한 노력'을 찾아보기가 매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젊은 보수는 더 이상 미래세대를 키우고 끌어올리지 않는 보수정당의 폐쇄성, 배타성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달 27일 오전 당사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최고위원회의 모습./사진=자유한국당 제공

무엇보다도 토론자로 참석한 보수당 소속 의원들의 면면 부터가 매우 흥미로웠다. 45세 여성 의원이 가장 나이가 많았으며 가나 출신의 부모에게서 태어난 41세의 흑인 남성 의원, 그리고 영국에 이민 온 케냐인 아버지와 인도양 남서부 모리셔스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37세 젊은 여성 의원 등이 보수당의 미래를 논하기 위해 참석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보수당의 이미지, 보수당 정치인들의 특징과는 모두 거리가 좀 멀어 보이는 정치인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거침없었다. 누가 어떤 질문을 던지든 자유, 시장경제, 법치, 안보, 기업, 주택문제, 도시문제, 교통, 환경, 그리고 동성애에 이르기까지 보수당의 가치체계에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명쾌한 해답을 내놓으면서 동시에 젊은층을 어떻게 공략할 것인지 세련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일종의 '소수자'에 속하는 자신들이 어떻게 영국의 보수당의 가치에 동의할 수 있었고, 보수당 정책이 실질적으로 자신들의 삶을 어떻게 개선시켰는지 설명하는 그들은 토론회 내내 청중을 압도했다. 

다음 총선에서 어떻게 젊은층의 지지를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공약이나 홍보 전략부터, 영국 정치에서 가장 큰 화두인 브렉시트(Brexit)가 구체적으로 20~30대 청년층에게 어떤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한 설명, 그리고 보수당의 가치와 비전을 어떻게 쉽고 재미있게 젊은층에게 전달할 것인지 방법론에 이르기까지 그 고민의 깊이와 구체성이 엿보였다. 더 젊고 다양성을 띤 보수당으로 혁신하기 위한 보수당 스스로의 노력의 결과 이런 정치인들이 의회에 입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모인 청중들의 구성에서도 상당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보통 보수정당의 모임이나 컨퍼런스, 토론회라고 하면 50대 이상의 중노년층을 주로 볼 수 있는 한국과는 달리, 그 자리에는 수많은 대학생들과 직장인, 그리고 청소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으로 토론자와 청중의 대화를 지켜봤고, 서로 질문의 기회를 얻기 위해 손을 드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한국과 영국의 보수정당들이 모두 젊은층 이탈이라는 공통된 위기에 직면해 있지만, 그래도 영국 보수당은 젊고 생기가 넘쳐 보였다. 우리 보수정당에 비해 훨씬 더 활력 있고 색채가 풍부한 젊음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보수당 정치인들과 지지층의 젊은층 확보에 대한 고민은 훨씬 더 진지하게 느껴졌다. 

한편, 한국에서는 보수당의 '젊어지기 위한 노력'을 찾아보기가 매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최근 한국의 모 언론은 '보수정치의 낡음'을 통렬히 지적하는 칼럼을 게재해 상당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필자 주변의 많은 젊은 보수들이 해당 칼럼에 공감을 표하며 더 이상 미래세대를 키우고 끌어올리지 않는 보수정당의 폐쇄성, 배타성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러한 뼈아픈 지적이 나오더라도 결국은 실질적 변화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무력감이 아닐까. 물론 기성세대만의 탓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치란 원하는 자, 하고 싶어 하는 자가 쟁취해야 하는 것이고, 얻어내기 위해서는 과감한 도전이 필요하다. 영국 보수당 토론회에 참석한 젊은 청중들처럼, 한국의 젊은 보수도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적어도 책임 있는 이들의 열린 자세와 미래를 내다보는 투자가 없다면 높은 진입장벽을 깨기는 역부족일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직면하게 될 정당의 위기는 지난 최순실 사태로 촉발된 탄핵과 대선 패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위기일 것이다. 아니, 위기를 겪기도 전에 소멸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한국의 보수정당, 한국의 보수세력은 '젊어지기 위한' 노력, 일종의 안티에이징을 고민해야 할 때다. /윤주진 영국 UCL 정치학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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