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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연재]소설 손양원:용서-아버지의 비밀 1
승인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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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인 2018-01-29 10:2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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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의 전선이 판치던 시절,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아들로 입적해 키우며 진정한 용서의 길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준 목회자 손양원. 분열과 갈등, 증오로 치닫는 이 시대에 그가 던지는 울림은 감동을 넘어 가슴 묵직한 과제를 던진다. 미디어펜은 소설가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신용구 원장의 '소설 손양원:용서'를 월·목요일 주 2회 연재한다. 소설을 통해 진정한 용서와 화해 그리고 우리사회의 병폐인 갈등과 증오를 치유하는 길을 묻는다. 필자인 신 원장은 용서의 의미를 새삼 일깨워준 손양원 목사님께 감사를 드리고, 독자들 역시 손양원 목사의 인생을 통해 용서의 진정한 의미를 가슴에 한번 되새겨 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편집자 주]

머리말

   
▲ 신용구 소설가·정신과전문의
이 글은 한국 기독교 5대 성지 가운데 하나로 불리고 있는 여수 애양원 교회 초대 담임목사를 역임한 손양원 목사에 대한 소설인데, 나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그를 만나는 행운을 얻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어느 늦은 일요일 저녁 한가로운 기분에 무심코 텔레비전을 켰다가 보게 된 다큐멘터리가 손양원 목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텔레비전은 그의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에 대해 그리고 있었고 그가 살아온 인생의 편린만 들어도 충분히 감동적인 삶을 그가 살아왔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의 인생에서 내가 제일 주목한 것은 용서에 대한 그의 이야기였다. 자식을 죽인 그것도 한 명도  아니고 둘이나 죽인 사람을 용서하고, 용서를 넘어 그 원수를 자기 자식으로 삼아 그 양아들에게 사력을 다해  애정을 쏟았던 그의 모습을 보면서 용서의 의미와 가치를 새삼 되돌아보게 되었다.

우리 사회가 오래전부터 지역 간, 계층 간 반목과 대립을 반복하며 증오를 일삼아 오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사람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고 격동시키는 강력한 힘을 그의 삶과 인생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때부터 나는 그에 대한 궁금증에 여기저기서 그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며 나름의 공부를 해보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처럼 특별한 인물에 대한 변변한 소설 한권이 없다는 것이 놀라웠다.

필자가 그에 대한 소설을 쓰게 된 것은 그에게 받은 가슴 벅찬 감동을 나만의 느낌과 경험으로만 갖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편으로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용서와 사죄라는 상호 대척점에 있다고 볼 수 있는 두 가지 속성의 사회적·역사적 의미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보았다.

2차 대전의 같은 전범국이면서도 전후에 전혀 서로 다른 행보를 취하고 있는 독일과 일본의 예를 비교해보면 시사 하는바가 적지 않다.

독일은 전범국이면서도 오늘날 유럽의 맹주로 부상했고, 일본은 독일 못지않은 경제적 부흥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의 일등국가가 되지 못했다.

전범국에도 독일이 유럽인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자신들의 저지른 과오에 대한 진정한 사죄와 더불어 그에 수반된 철저한 자기 책임의식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일본이 눈부신 경제적 성취를 이루어 냈음에도 아시아인의 존경을 받는 일등국가로 발돋움하지 못했다. 이것은 그들의 솔직하지 못한 역사의식과 책임회피 태도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보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사죄라는 단어를 일절 모르는 일본이 그들의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그들이 일등국가로 발돋움하는 것은 역사적인 예로 볼 때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일본을 바로 보는 내 마음이 무척 안타깝다.

소탐대실의 원리와 인과관계는 한 개인의 인생사 뿐 아니라 국가의 운명에도 같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일본이 알았으면 하고 충심으로 바란다.

기왕지사 일본이 아시아 일등국가가 될 수 없다면 우리나라가 아시아의 지도국가가 되어 보는 꿈을 꾸는 것은 어떨까? 나라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한 지역을 대표하는 지도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요인들이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독일처럼 도덕성을 겸비한 실력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정말 부족한 점이 무엇이 있는지 알아야 하고 이를 빨리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식민지 시절 일본이 한국민족에게 온갖 악행을 자행하고도 우리에 사죄를 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너무 간단하다.  우리가 힘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아마 모르긴 해도 일본은 자신들의 생존에 우리의 도움이 꼭 필요할 만큼 우리의 힘이 강력해지기전까지는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우리의 목소리에 그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가 지금 세우고 있는 소녀상도 그들에게는 단순히 귀찮고 짜증스런 일일 뿐 그들은 별 의미를 두지 않을 게 뻔해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진정한 극일(克日)의 길을 생각해보았다. 비록 사과를 받진 못했지만 대승적인 입장에서 그들의 과오를 조건 없이 용서해주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국내는 물론이고 국외에까지 세우고 있는 소녀상을 철거해서 일본에 대한 망신 주기를 중단해 보는 것은 어떨까? 나아가서 향후 50년 정도의 장기적인 마스터플랜 하에 아시아의 전문가로 성장할 인재들을 대대적으로 육성해보는 것은 어떨까.

대통령 탄핵의 여파로 여전히 나라가 어수선하고, 가을 끝자락에  글을 마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어 두서없이 몇 자를 적어보았다.

필자에게 용서의 의미를 새삼 일깨워준 손양원 목사님께 감사를 드리고, 독자들 역시 손양원 목사의 인생을 통해 용서의 진정한 의미를 가슴에 한번 되새겨 보았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2018년 1월 22일
안양 인덕원 진료실에서


   

아버지의 비밀 1
 
내가 병실 문을 열고 나서자, 아버지 곁을 지키던 어머니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내 뒤를 따라 나와 복도의 검정 칠이 된 나무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경호야, 아버지 말에 신경 쓰지 말어, 그냥 네 뜻대로 해!"
"괜찮아요, 법대 가면 오히려 할 게 많잖아요! 취직할 곳도 많고, 난 벌써 마음 정했어, 후회 안할 테니 너무 걱정 마."
"정말 괜찮아?"
"그렇다니까!"

내가 마음이 상해 있던 탓에 나를 걱정하는 엄마의 말에 나도 모르게 저절로 목소리가 높아졌고, 엄마는 늘 상냥하기만 하던 아들의 반응이 좀 의외라 멋쩍었던지 다소 머쓱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화는 아버지 때문에 났는데, 분은 엄마에 풀고 있으니,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못난 짓을 내가 엄마에게 하고 있었다.    

"엄마, 미안해?"
"뭐가?"
"내가 짜증냈잖아!"
"요녀석, 철들었네?"  

오랜만에 나하고 엄마는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하지만 이도 잠시 다시 엄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내가 어린 시절부터 줄곧 꿈꾸어왔던 진로를 아버지 때문에 갑자기 바꾼 것이 엄마에게는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경호야, 억지웃음 그만 지어, 일부러 괜찮은 척 할 필요 없어, 네 뜻대로 해, 아버지가 네 인생을 살아주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네 인생이야!"
"엄마, 이젠 다 끝났어."
"너 정말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이젠 그만해......"   
"듣기 싫다고 자꾸 피할 생각만 하지 말고! 네 인생이야, 좀 진지하게 생각해 봐!"

다시 생각해도 이젠 바뀔 일이 없다는 듯 내가 눈살을 찌푸리고 도리질을 치자, 엄마는 이런 내가 답답해 보였는지 정색을 하고는 야단을 하듯 다그쳤다.

자식의 장래를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했다. 하지만 내 인생이 걸린 문제인데, 아랫목에 배 깔고 누워 백지에 심심풀이 낙서 하며 순정 만화의 여주인공이나 슈퍼맨을 그려 보듯 아무 생각 없이 어떻게 내가 이런 결정을 충동적으로 했겠는가? 아버지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아, 나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죽어가는 아버지의 바람을 자식이 어떻게 외면한단 말인가?

나도 엄마의 말처럼 내 자신의 장래를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한번 이라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허나 분명한 것은 바뀔 것이 없다는 거였다. 아버지는 조만간 세상을 떠날 것이고, 아버지의 유언이나 다름이 없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파기할 자신이 내게도 없었기 때문이다.

   
▲ 영화 '마더' 스틸컷.

어머니와 이야기를 계속해봐야 이렇다 할 결론도 나지 않을 것이고 머리만 아플 것 같았다. 어차피 팽팽한 신경전만 벌이며 평행선만 덜릴 일을 무엇 때문에 입 아프게 성가신 설전 아닌 설전을  벌일 필요가 있는가. 나는 이 의미 없는 얘기를 지금 엄마와 한 시간 넘게 나누고 있었다. 깊은 피로감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고함을 치듯 소리쳤다.  

"엄마, 이제 그만 좀 해요!"

내 목소리가 복도를 쩌렁쩌렁 울렸다. 침대를 밀고 복도를 지나가던 남자 보호사와 간호사가 내 목소리에 놀라서 무슨 일인가 하고 우리 모자를 살폈다. 나는 얼른 고개를 들어 그들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으나, 엄마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들의 따가운 시선도 민망했지만, 그 보다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뜻밖의 호된 질책을 당한 것이 너무 무안했기 때문이었다. 파김치 마냥 풀이 죽어 시무룩해진 엄마의 얼굴엔 내게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엄마는 아무리 심한 고뿔이 들어 앓아누워도 내 발자국 소리가 대문간에서 들리면 벌떡 일어니 곧장 부엌으로 달려가서 쌀부터 씻어 대는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나에게 걸고 있는 여인이었다. 이런 엄마였으므로 자신의 애타는 마음을 아들이 몰라주는 것 같아 무척 서운했던 것이다. 

엄마가 나에게 곱지 않은 핀잔을 들으면서까지 미련을 놓지 못하고 닦달하듯 나를 채근하는 이유는 사실 있었다. 엄마는 세상 누구보다 나를 잘 알았다.

내가 신앙심 깊고, 목사라는 직업을 원하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보다 엄마는 내 심성이나 성격이 목사라는 직업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여서, 우리 모자는 이점에 있어서는 완벽한 일치를 보이고 있었다.

엄마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사람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믿었고, 자신은 비록 가난한 목수의 막내딸로 태어나 자신이 원하는 그런 인생을 살진 못했지만 사랑하는 자식에게만큼은 하늘을 훨훨 날 수 있도록 그 자식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직업을 갖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엄마는 자신의 이 같은 결심 때문에 고등어 한손이라도 더 팔기위해 시장 바닥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엄마의 얼굴을 보니 죄스럽기 짝이 없었다. 나는 내 미안한 마음을 전하듯 슬그머니 엄마의 손을 잡았다.

엄마의 손은 마디마디가 나무거죽처럼 참으로 거칠었다. 칼에 베이고 찢어지고 한겨울 추위에 얼어 터졌던 쓰디쓴 영광의 상처들이 남긴 흔적들이었다. 부질없지만 정말 내 손이 엄마의 손을 대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의 얼굴도  크게 상해 있었다. 바로 코앞에서 엄마의 얼굴을 들여다 본 일은 근래  들어 처음인 것 같았다.

내 마음 속에 있던 엄마는 항시 꽃보다 고왔다. 엄마의 체취는 어떤 아름다운 꽃보다 향기로웠다.

엄마는 갓 마흔을 넘겼다. 그런데도 쉰은 되어 보일만큼 훌쩍 늙어있었다. 앞집 철이 엄마는 쉰 살인데도 얼굴이 팽팽했다. 그만큼 고생을 많이 하고 산 탓이었다.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입꼬리도 아래로 처져 있어, 얼굴이 탄력을 잃은 지가 오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내 추억의 정원에 싱그럽게 살아 꽃을 피우고 달콤한 향기를 한껏 뿜어내던 아름다운 엄마는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볕에 그을려 아프리카 흑인처럼 살이 까무잡잡해진 중년의 여인이 삼양라면을 닮은 뽀글이 파마를 하고 헐렁한 국방색 점퍼를 걸친 멋대가리 없는 모습을 하고 내 곁에 앉아 있었다.

그녀가 걸친 점프는 색이 바랜데다 적어도 두 치수는 더 커 보였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버리려던 것을 보고는 다른 누군가가 이 옷을 가져가지 않을까 염려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달려가 재빠르게 얼른 얻어 입은 듯 했다. 사실이 그랬다. 그녀는 지난 십년 동안 자신의 돈으로 옷을 한 벌 사 입어 본직이 없는 사람이었다.

아무튼 엄마는 월남한 사람이 아닌데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시장 난전에서 생활력이 강해서 시장 바닥에서 박옥순이란 이름 석 자를 들이대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경상도 진주가 고향인 어머니는 옥순이란 촌스런 이름답지 않게 미색이 뛰어나 영화배우 김지미를 닮았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고 얼굴값을 해서 한때는 도도 했지만, 생활전선에 뛰어들면서 말투며 행동이 싸움닭처럼 무척 드세어졌다. 

희끗희끗한 엄마의 머리칼, 얼굴에 벌써 피고 있는 저승꽃을 보니 어느 덧 엄마의 인생길이 가을에 접어 든 것이 분명한 것 같았다.

젊은 엄마의 빠른 노화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본다는 것은 그녀를 사랑하는 아들로서는 몹시 억울하고 화가 나는 일이었다. 

아무튼 정말 엄마는 볼품없이 늙어가고 있었다. 길바닥에 나뒹굴며 누군가의 발길에 짓밟히기도 하고 그대로 상처를 안은 채 아무 말 없이 시들어가는 낙엽처럼, 엄마의 인생도 저물고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이 여자가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로 보였다.

그래서 난 최고로 멋진 웃음을 지으며 신사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프러포즈를 하듯 엄마의 손을 다시  잡았다.

"엄마, 오늘까지만 나이 먹고 내일부턴 늙지 마, 그래야 내가 나이 들어 엄마한테 청혼하지!"
"허, 참, 넌 이 상황에 그런 농담이 나오니......? 대체 이놈의 넉살은 누굴 닮았누?"

느닷없는 내 신소리에 엄마는 어이없는 표정을 짓더니 소리 내어 웃었고, 엄마의 웃음  소리에 잠시 무거웠던 공기가 하늘로 재빠르게 날아가 버렸다. 

"정말 괜찮겠어? 믿어도 돼?"
"아유, 괜찮다니까? 왜 내 말을 못 믿어!"
"엄만, 그래도 아빠 눈치 보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좋겠다."       

반복해서 내 뜻을 충분히 확인했다고 생각했던 탓인지 엄마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훨씬 부드럽게 들렸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빛이 눈에 그득했다.

"아직도 아버지 미워?"
"자식 앞날 가로막은 인간인데, 어떻게 안 밉겠니?"
"너무 미워 말아요, 아버지 이제 얼마 안 남았다고 하잖아......."
"그래, 네 말도 틀린 말은 아니지, 하지만 네가 못할 짓이야......"

후두암을 앓고 있는 아버지가 한 달 이상 살기 힘들 것이라 주치의는 말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식구들이 모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엄마, 그래도 아빠 살아생전에 내가 아빠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있다는 게 어디야? 안 그래?"    
"......"

내 말에 엄마는 마음이 울컥했던지 눈시울을 붉혔다. 아무리 아옹다옹 살았다고 해도 한 남자의 아내로서 평생을 같이 한 남편의 죽음을 바라보는 여인의 회한 같은 게 없을 리 없었다. 엄마는 잠시 할 말을 잃고 벽을 바라보고 있더니 잠시 후 나를 꼭 끌어안고는 넋두리를 하듯 중얼거렸다.

"네 아버지, 평생 마누라 고생시키더니, 이젠 너까지......, 아버지란 화상이 자식한데 어찌 그러냐?"

어머니는 죽음 문턱에서조차 말도 안 되는 떼를 써 아들의 앞길을 느닷없이 막아버린 남편의 행동이 용서가 안 되는지 화를 삭이지 못해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나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처럼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

나는 내 한 평생을 찬찬히 되돌아보아도 그 때만큼 내 마음이 평온했던 적은 없었다.  왜였을까? 피를 토할 것 같은 고통을 당하고서도 평정을 이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얼까?
그 때는 정말 몰랐다.

하지만 내가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자, 어릴 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의문들이 신기하게도 저절로 척척 풀렸다. 나를 한쪽 밖에 못 보는 외눈박이로 만들어 놓았던 편견이나 근시안 같은 심술궂은 마녀의 마법이 나이를 먹으면서 풀린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버리고, 비우고,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내 생애 처음으로 어렴풋이 그 때 알았던 것 같다. 나는 그 때 모든 것을 버렸다. <계속> /신용구 소설가·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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