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창출 목소리 높이던 정부 '진퇴양난'
제 2의 쌍용차 만들지 않기 위해 '경제원리' 대책마련 시급
지원금 바라는 GM, 고금리·이전가격 등 의혹 해결부터
[미디어펜=김태우 기자]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에 대한 후폭풍이 어이지고 있는 가운데 방관적인 정부의 관리가 한국지엠을 제 2의 쌍용차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지난해부터 글로벌 판매전략 재조정에 나서며 예견됐던 이번 한국지엠의 사태를 정부가 챙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컨트롤타워의 부재로 발생한 문제지만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고 있는 현 정부가 있던 일자리도 지키지 못했다는 지적은 피하기 힘들게 됐다.

반면 GM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전가격문제와 고금리 대출 등의 의혹이 표면상으로 부각되며 국민여론의 질타가 예상된다.

   
▲ 한국지엠 군산공장 /사진=연합뉴스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산업은행이 한국지엠에 대한 정밀 실사를 통해 경영상황을 확인하고 각종 의혹들이 해소된 이후에야 GM 측과 자금지원 등 정상화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반해 GM은 신차 투입 등 글로벌 사업투자를 결정해야 할 이달 말까지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중대한 결정을 내리겠다는 엄포를 놓으며 한국철수 가능성을 시사했다.

GM의 한국 철수시 한국지엠 직원만 1만6000명, 1~3차 협력사까지 포함하면 15만6000명에 달하는 인원이 고용에 지장을 받으며 하청업체와 부품사 등까지 합치면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아 지역경제를 넘어 국내 산업에 큰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자금을 투입해 철수를 막거나 철수 이후 남은 실직자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등 빠른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받는 이유다.

하지만 자금투입은 국민여론과 한국지엠 노조가 혈세투입을 반대하고 있고, GM 철수 후의 대책마련은 너무 늦어 정부가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해있다. 

이번 사태는 오래전부터 지적됐던 한국산업의 노사관계 문제를 풀지 않고 해법을 찾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기업은 이익을 창출하려하고 이를 위해 생산단가를 낮추고 효율성을 높이려하는 것이 기본원리다. 하지만 국내 자동차 산업 생산라인의 노동자 임금은 글로벌 수준보다 높고 잦은 파업 등의 여파로 낮은 생산성을 보이고 있어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 투자를 꺼리고 있다.

실제 한 부품업계 고위 관계자는 "기업의 이익만을 생각하면 국내생산라인을 해외로 이동하는 것이 더 큰 이윤을 남길 수 있다"고 밝혔다.

더욱이 한국정부의 투자 기업들에 대한 지원도 적어 효율성을 강조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투자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보일 수밖에 없다. GM 역시 이 같은 시점에서 한국정부에 지원금 투입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투명한 실사 진행을 통해 의사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밝히며 GM과의 팽팽한 기싸움을 예고했다.

이에 업계에서는 정부가 또 쌍용차의 워크아웃 사태를 재연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하고 있다. 지난 2004년 상하이차는 쌍용차 지분 48.9%를 5900억원에 인수해 최대 주주가 됐다.

이후 경기 악화와 판매 부진으로 쌍용차는 유동성이 급격히 악화됐고 유동성 공급을 약속하던 상하이차는 2008년 12월 철수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2대 주주였던 산업은행과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정부는 대주주인 상하이차의 지원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지원을 거부했고, 결국 상하이차는 2009년 1월 쌍용차의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후 10년 가까지 쌍용차는 힘겨운 경영난을 겪었고 수많은 실직자를 배출하는 아픔을 겪었다. 한국지엠 역시 이 같은 상황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한국지엠의 워크아웃은 규모면에서 쌍용차보다 더 큰 피해가 예상되고 있다.

정부의 방관적 태도가 한국지엠을 제 2의 쌍용차로 만들고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GM의 글로벌 경영 방침상 이미 경쟁력이 약화된 국내 생산 기지를 가차 없이 정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GM 역시 고금리 대출과 이전가격, 과도한 연구개발 비용 등에 대한 의혹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이는 그동안 한국지엠 노조를 통해 제기됐던 의혹으로 이번 자금지원 요청을 계기로 표면화됐다. 

‘고금리 대출’은 한국지엠이 2013년부터 2016년까지 GM 관계사에 4620억원에 달하는 이자를 지급한 것을 일컫는다. 금리는 국내 다른 완성차 업체들의 2배에 달하는 연 5% 내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지엠은 국내 은행권이 대출을 거절해 불가피하게 관계사로부터 돈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노조는 GM 본사가 한국지엠으로부터 이익을 거둬들이는 ‘꼼수’라고 주장해 왔다. 

한국지엠은 막대한 이자를 지급하면서 재무구조가 더욱 악화된 반면 GM 본사는 이자만으로도 한국지엠에 대한 투자비 상당부분을 회수했다는 것이다.

한국지엠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누적적자보다 많은 1조8580억원을 연구개발비용으로 지출한 부분에 대해서도 의혹이 일고 있다. 

한국지엠은 연구개발비를 보수적으로 비용 처리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노조 측은 부풀려 산정된 연구개발비의 일부가 GM 본사로 흘러들어갔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전가격’은 과거부터 많은 논란이 있었던 부분이다. 한국지엠이 GM으로부터 핵심 부품은 비싸게 공급받고, 반대로 GM에 공급하는 반조립(CKD) 차량은 원가 수준의 낮은 가격으로 책정해 한국지엠의 수익구조가 악화됐다는 의혹이다. 

이는 해외 자회사의 수익성을 악화시키면서 본사의 이익을 챙기는 전형적인 수법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 같은 의혹을 규명, 혹은 해소하려면 회사의 재무상황을 세세하게 들여다봐야 하지만 한국지엠은 산업은행이 요청한 일부 자료에 대해 영업비밀 등을 이유로 제출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 투자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건조성이 우선시 돼야 한다"며 "실직보다 임금 삭감이 낫다는 것을 인정하고 선진 노사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디어펜=김태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