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제와 균형·권력분산·효율성 조화가 전제"…논의 출발점인 '대통령 권한 축소' 실종
[미디어펜=김규태 기자]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자문특위)가 '국민개헌 국민참여'를 앞세워 대통령 개헌안 만들기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정작 개헌 논의의 출발점이었던 '대통령 권한 축소'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자문특위가 19일 개설한 홈페이지에 공개한 22개 쟁점에는 행정부의 법률안 제출권 폐지, 대통령 인사권 제한과 권력기관 중립화 등 '대통령 권한 축소'의 주요 내용이 모두 빠져있고 대통령 특별사면권 통제 및 감사원 직무독립 강화만 포함됐다.

자문특위가 제시한 22개 쟁점 중 19개에는 공무원 노동3권 보장이나 검찰 영장청구권 독점, 지방 분권 등 직접민주주의 강화에 방점이 찍혀있다.

정해구 위원장이 홈페이지 인사말에서 "촛불시위를 통해 드러난 민심을 국민의 사회계약인 개헌으로 완성되어야 한다"면서 22개의 '주목받는 안건'을 카드뉴스 형태로 제시해 방문자가 찬성 중립 반대 중 하나를 골라 투표할 수 있게 했지만, 현 대통령제에 대한 비판적인 쟁점을 소홀히 다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홈페이지는 트위터·페이스북·네이버·카카오톡 등 SNS 아이디가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온라인으로 로그인해 의견수렴하는 구조라, 정치적으로 치우친 불특정 다수에 의해 여론 쏠림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이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진 대통령 4년 중임제, 헌법전문에 5.18·부마항쟁·6.10을 명시하는 쟁점에 대해 응답자들은 높은 지지(21일 오전9시 기준 찬성률 92%, 83%)를 보내고 있다.

헌법학자들은 개헌에 대해 "폐쇄적이 아닌 개방적이고 참여적인 방식으로 논의해야 한다"면서 "다만 성급한 권력구조 개헌이 현실정치를 왜곡시키면서 지켜야할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견제와 균형, 권력 분산과 효율성의 조화를 전제로 보다 많은 국민의 의사를 수렴하고 법리적으로 문제 없는지 검토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면서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최근 1년간 개헌특위 자문위원회 활동을 했던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기존 1987년 헌법에 대해 "공정경쟁과 절차적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당시의 정치적 목표를 상당히 실현했고 체제전환을 이룬 많은 신생 민주주의국가 중 한국은 비교적 성공적인 민주적 공고화를 이뤘다"며 "이제 87체제를 넘어 한 단계 심화한 민주주의로 나갈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개헌에 관한 의견 수렴에 있어서 강 교수는 "30년 전과 같이 폐쇄적으로 개헌 논의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기에 개방적이고 참여적인 방식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며 "한번에 모든 걸 다 이루기에 우리 사회가 매우 복잡해졌기 때문에 정부형태까지 바꾸기 어렵다면 시대적으로 가장 시급한 것들부터 하면 된다"고 밝혔다.

대통령제에 대해 강 교수는 "정책적 실행이라는 면에서 한국 대통령은 굉장히 강한 의회와 부딪히기 때문에 결코 대통령이 제왕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다만 대통령제로 장기적인 국가정책이 안 되는 문제점이 여전하고, 복잡해진 한국사회에서 권력을 장악한 한 사람에 따라 세상이 좌지우지되는 건 옳지 않다"고 보았다.

   
▲ 문재인 대통령은 1월10일 올해 국정운영 방안을 밝히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민 의견을 수렴한 국민개헌안을 준비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진은 신년 기자회견을 마친 문 대통령이 기자들과 악수하는 모습./사진=청와대 제공

한편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의 권력구조에 대해 "국가정보기관의 선거개입 정치관여, 이를 수사하는 검찰총장 찍어내기 등 법치행정체제의 정파적 운용과 당내 민주주의 과정을 생략한 대통령의 독재적 현상이 두드러졌다"며 "대통령의 이러한 법집행권 오남용은 국회와 국민이 권력통제권을 행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조장된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이어 "정치과정에 사회적 기득권에 의한 카르텔이 굳게 형성되어 정치 독과점이 심화되고 민주공화적 시민자치의 역동성과 책임성이 약화되고 있다"며 "집중된 권력과 견제없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기 마련이라는 점을 감안해 권력의 분산과 효율성의 조화가 권력구조의 요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 권한 축소와 관련해 그는 "대통령을 우월적 지위에 두고 대통령 중심으로 국정시스템을 인식하고 실행하는 것은 권위주의체제의 잘못된 유산"이라며 "대통령은 법치주의 정신에 따라 국회가 제정하는 법률을 헌법정신에 따라 집행하는 행정권 수반의 지위에 머물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 정치참여에 대해 김 교수는 "국민이 탈정치적이고 비정치적인 수동적 자세를 벗어나 적극적으로 정치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어야 한다"며 " 권력구조논의의 중심에는 내각제든 대통령제든 선거법 정당법 등 각종 정치규제를 철폐하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만 여론쏠림 등 개헌에 관한 국민의견 수렴에 대해 김 교수는 "성급한 권력구조 개헌이 현실정치를 왜곡시키면서 지켜야할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며 "국민들은 현재 개헌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어떤 개헌을 어떻게 추진할 지에 대한 공감대가 높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상겸 동국대 법무대학원 교수는 "대통령이 2번이나 국회로부터 탄핵소추를 받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도 보는 시각에 따라서 현 대통령제가 실패에 가깝다"며 "대통령제 성공을 위해서는 입법과 행정이 완전히 분리되어 서로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김상겸 교수는 이어 "다만 일각에서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고 의원내각제에 가까운 안을 내놓기는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국민 스스로 민주주의와 자신이 택한 국민 대표에 대한 신뢰가 구축되어야 하는데 여전히 정치권에 대한 국민 불신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한 김 교수는 "이원정부제든 대통령제든 정치권이 합의한다면 국민이 이해하여 설득할 수 있도록 원리와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며 "입법권 및 행정권의 분산, 사법권 체계화를 통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신장할 수 있는 법치국가헌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김 교수는 "헌법을 헌법답게 하는 것은 국민이 국가구성원으로서 민주적 법치국가가 요구하는 책임 있는 자유와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보다 많은 국민의 의사를 수렴하고 법리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검토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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