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기자회견서 "재판에 부당하게 관여하거나 편향된 조치 취한적 없어" 해명
[미디어펜=김규태 기자]양승태 전임 대법원장 당시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시도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대법원 선고 판결에 대해 일각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

사태의 발단은 김명수 현 대법원장 지시로 출범한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결과 발표에서 시작했다.

특별조사단이 지난 25일 3번째 셀프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인사상 불이익 증거가 없어 고발하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당시 행정처가 청와대와 재판거래를 시도했고 대법원 숙원사업인 '상고법원' 도입에 청와대 협조를 얻고자 노력했다는 정황을 밝혀 관련자들 고발이 빗발치게 된 것이다.

더욱이 특조단이 3차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행정처가 거래시도 문건을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판결 후에 취합했고 재판이나 판결에 관여한 정황이 없었다"고 밝혔지만, 전교조·금속노조 쌍용차지부·KTX 해고승무원 등 당시 재판 관련자들이 대법원 선고의 무효를 주장하고 나섰다.

특조단장인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1일 오전 "법리구성을 달리하거나 새로운 사실이 추가되거나 하면 얼마든지 형사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조사결과 뚜렷한 범죄혐의를 발견하지 못해 고발 등 형사조치하지 않겠다'는 기존 특조단 입장과 상반된 의견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재판거래 의혹' 당사자로 꼽히는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갖고 "대법원장으로 재직하면서 대법원 재판이나 하급심 재판에 부당하게 관여한 바가 결단코 없다"며 "상고법원 추진에 반대한 사람이든 일반재판에서 특정 성향을 나타냈던 사람이든 법관에게 편향된 조치를 하거나 불이익을 준 적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은 "대법원 재판의 신뢰가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며 "대법원 재판은 순수하고 신성한 것이고 남의 재판에 관여하고 간섭한다는 그런 이야기는 대법관을 비롯한 법관들에게 심한 모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특조단은 직권남용 혐의 적용이 무리라고 결론을 냈지만 법조계 의견은 분분하다.

한 현직판사는 이번 사태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에게 직권남용 혐의 적용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판사들이라면 다 알텐데 형사고발해서 재판에 세우자는 주장은 무의미하다"며 "사후에 판결들의 성향을 검토한 수준은 형사처벌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법관 출신의 한 법조계 인사는 "판결 동향 파악이 직무 권한인지 모호하다"며 "양 전 대법원장의 직무 권한이 아닌 것으로 보이고 직무인 것을 인정하더라도 피해 없는 것으로 특조단이 결론내린 상황에서 이를 남용했다고 보기 힘들다"고 언급했다.

검찰 출신의 또다른 법조계 인사는 "당시 법원행정처 행위가 부적절하다고 볼 수 있지만 형사 처벌 대상에는 이르지 않는다"며 "행정처 판사들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 업무를 이행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반면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에서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재판에서 직권남용이 인정된 다음부터 이번 사태도 인정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한 법조계 인사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김기춘의 혐의는 인정됐으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인정되지 않은 바 있다"며 "이에 따르면 문건 작성을 지시했을 경우 직권남용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다른 인사는 "행정처의 사찰 혹은 거래문건 등 사찰보고서를 작성하게 한 것 자체가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직권남용죄로 볼 여지가 다소 있다"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 당사자 권리행사를 방해했다고도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번 '재판 거래-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 일체를 공공형사수사부(부장검사 김성훈)에 배당해 일괄적으로 수사에 착수할 방침을 밝혔다.

블랙리스트 및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해 3차 조사까지 지시했던 김명수 대법원장이 어떤 결론을 내릴지 주목된다.

   
▲ 사진은 2016년 9월6일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이 김모 부장판사의 거액뇌물 스캔들과 관련해 국민들에게 머리숙여 사과하는 모습./자료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