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동준 기자]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3김 시대'의 한 축이자 '영원한 2인자'로 불려온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92세.

김 전 총리의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진다. 발인 당일인 27일에는 장례식장에서 간단하게 영결식을 진행한 뒤 청구동 자택에서 노제를 지낼 예정이다. 또 서초동에서 화장을 하고, 부여에 위치한 가족 묘역으로 이동해 영면에 들 계획이다.

이에 1960년대부터 정치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 온 '3김 시대'는 종언을 고하게 됐다.

김 전 총리는 1926년 충남 부여에서 7남 중 5남으로 태어났다. 공주 중·고등학교와 서울대 사범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는 육군사관학교에서 만났다. 박 전 대통령의 소개로 박영옥 여사를 만나 1951년 결혼했다.

김 전 총리는 박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정계에 입문해 파란만장한 일생을 보냈다. 1963년에는 민주공화당 창당을 주도하고 그 해 6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 9선(7·8·9·10·13·14·15·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두 차례(11대·31대) 국무총리를 지내기도 했다.

김 전 총리는 박 전 대통령의 5·16 쿠데타를 기점으로 현대 정치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같은 해에는 중앙정보부를 창설해 초대 부장으로 취임했지만 줄곧 2인자의 길을 걸어왔다. 특히 1969년 '3선 개헌'을 계기로 권력의 1인자 지위를 얻는 것에서는 점차 멀어졌다.

   
▲ 지난 2009년 8월18일 민주당 김영삼 총재(오른쪽), 평민당 김대중 총재(가운데), 공화당 김종필 총재가 여권의 중간평가 조기강행 대책을 논의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1971년부터 1975년까지 국무총리를 지낸 김 전 총리는 1979년 박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과 함께 유력한 대선자주로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의 '신군부'는 출범 직후 김 전 총리를 '부정축재자'로 지정하고 재산을 환수하는 등 정치적 탄압을 가했다.

1984년 미국으로 건너가 잠행을 이어가던 김 전 총리는 1986년 귀국해 1년 뒤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했다. 이어 13대 대선 후보로 나섰으나 낙선했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는 충청을 기반으로 35석의 의석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1995년 자민련(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고 치러진 15대 총선에서도 50석의 의석을 확보하는 성공을 거뒀다.

김 전 총리는 1990년 YS·DJ와 3당 합당(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합당)을 선언하고 민주자유당 창당에 참여했다. 뒤이어 1992년 대선에서 YS는 대통령에 당선됐고 김 전 총리는 민자당 대표가 됐다. 3당 합당이 이뤄질 당시 의원내각제에 대한 합의가 있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1997년 대선에서는 자민련 후보로 대권에 도전해 'DJP(김대중·김종필) 연대'을 성사시키며 DJ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고, 국민회의·자민련 공동정권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임동원 당시 통일부 장관 해임안이 가결되는 과정에서 DJP 연대는 결렬됐다.

이후 김 전 총리는 2004년 17대 총선에서 지역구 의원 4명만 당선되는 등 참패한 것은 물론 자신의 10선 도전도 실패하면서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 지난 4월 김종필 전 총리가 신당동 자택에서 자유한국당 이인제 충남지사 후보를 만날 때 모습./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