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공 후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철로에서 탈선사고…먼저 출발한 앞 열차, 아무 이상 없이 지나가 의문
[미디어펜=김규태 기자]승객 198명을 태우고 강릉역에서 서울로 향하던 KTX 열차가 탈선해 16명이 부상당하는 사고가 벌어졌고 사고 이틀만인 10일 새벽 강릉선 운행을 정상적으로 재개했으나, 원인 규명은 오리무중에 빠졌다.

코레일은 이와 관련해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4일까지 열흘간 '비상안전경영' 기간을 갖고도 지난 3주간 크고 작은 열차사고가 10건 일어났고 비상안전경영 기간을 거친 후 4일만에 이번 탈선사고까지 일어나, 안전불감증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앞서 이낙연 국무총리는 거듭되는 KTX 사고에 지난 5일 코레일 본사를 방문해 "국민 불신을 불식시킬 수 있게 안전대책 개선방안을 준비하라"고 주문했지만 탈선 사고가 3일만에 일어났다.

2004년 KTX가 개통한 이래로 열차가 탈선하는 대형 사고는 2011년 광명역 사고에 이어 두번째인 가운데,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정확한 원인 규명에 대해 "최소 수개월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아 빈축을 사고 있다.

오르막 구간을 시속 100㎞ 속도로 달리던 열차가 45도 가량 기울어진 상태로 20초 가량 미끄러진 끝에 정지하는 운(運) 덕분에 다행히 인명 피해가 없었고 상상하기 힘든 끔찍한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번 사고로 KTX 열차 선두 차량은 T자 형태로 꺾여 크게 파손됐으나, 사고 순간 시속 200㎞ 넘는 정상속도로 달리지 않았고 다리 위에서 탈선 사고가 나지 않아 천만다행이라는 지적이다.

사고 이틀만에 현장을 찾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런 상황을 더 이상 좌시하기 어렵다. 이번 사태에 반드시 책임을 묻게 할 것을 요구한다"고 남 얘기하듯 말하면서 "남북 철도를 연결하겠다는 큰 꿈들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사고에) 민망스럽다"고 말해 '엉뚱한 곳에 정신이 쏠린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3선 국회의원 출신이자 지난 대선 문재인후보 캠프에서 조직본부 수석부본부장을 맡았던 오영식 코레일 사장은 취임 후 남북 철도 연결과 비정규직 승무원 복직, SRT와의 재통합 등에 몰두해오다가 최근 잇따른 고장 사고의 책임을 물어 지난달 30일 차량분야 총괄책임자와 소속장 4명을 보직에서 해임했다.

KTX 강릉선 열차가 탈선한 이유로 여러가지가 꼽히고 있고, 이와 관련해 몇가지 의문이 남아있다.

8일 사고 현장을 방문했던 오영식 사장은 "추위로 인한 선로 이상이 원인일 수 있다"고 언급했지만 코레일은 다음날 김현미 장관에게 "선로전환기 전환상태를 표시하는 회선 연결이 잘못되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고했다.

문제의 선로전환기는 서울쪽에 붙어 있어야 하는데 사고 현장에서는 레일 한가운데에 있었다고 한다. 남강릉 분기점의 선로전환기와 신호제어시스템은 지난해 6월 설치됐고, 마지막 점검은 지난해 9월17일에 있었다.

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은 정확한 원인을 밝히기 위해 선로전환기 설계와 시공, 검사, 유지보수 담당자들의 명단을 정리해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국토부는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정밀조사를 마친 후 구체적인 사고 원인 파악까지 최소 수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전했다.

관건은 지난 1년간 열차가 남강릉 및 서울 방향 모두 정상적으로 신호를 줬기 때문에 애초부터 부실 설계나 시공 오류가 원인이라는 분석은 설득력이 떨어지고, 누군가 회선을 임의로 조작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고개를 들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11년 2월 발생한 광명역 KTX 탈선사고도 시스템 임의조작으로 인해 일어났고, 이번 사고의 경우 사고열차보다 먼저 출발한 열차가 아무 이상 없이 지나갔다.

다만 이번에 탈선 사고를 일으킨 KTX산천 차량의 경우 지난해 3월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다가 열차 전력공급장치 내 볼트가 1개 풀려 배터리가 방전되며 영종대교에서 멈추는 사고가 난 바 있어 정확한 사고 원인을 섣불리 예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와 함께 열차선로와 터널교량 등 코레일이 관리해야 할 KTX 설비가 늘어나는 추세인데 반해 관리 인력과 예산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어 일상 정비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코레일의 선로시설물(기찻길)은 2015년 8465㎞에서 지난해 9364㎞로 늘어났고 터널과 교량 또한 9333개소에서 지난해 9714개소로 증가했지만 정비인력은 지난해 205명 부족했다. 정비관련 예산도 지난 2년간 4337억원(2015년)에서 4243억(2017년)으로 94억원 감소했다.

사고는 날로 증가 추세에 있다. KTX 차량 고장으로 인한 지연은 2015년 41건에서 지난해 113건으로 2.8배 증가했고 시설물 장애로 인한 지연은 2015년 19건에서 지난해 69건으로 3.6배 증가했다.

시속 300㎞ 이상으로 운행하는 KTX는 사소한 결함과 실수 하나로 대형 참사를 야기할 수 있다.

교통시스템 안전 보장에는 필수적으로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빨간 불이 켜진 고속철도 안전을 어떻게 확보하고 관리할지 코레일과 국토교통부의 향후 조치에 관심이 쏠린다.

   
▲ 승객 198명을 태우고 강릉역에서 서울로 향하던 KTX 열차가 8일 오전 탈선해 16명이 부상당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진은 이번 강릉선에서 탈선한 KTX 열차와 같은 유형인 KTX산천의 모습./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