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몽골서 생산된 전기 북 통해 도입
세컨더리 보이콧 우려 속 오해살 수 있어
[미디어펜=나광호 기자]미국이 '세계 인권의 날'을 맞아 북한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는 가운데 정부가 북한을 거쳐 전기를 국내로 들여오는 '동북아 슈퍼그리드'를 추진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최근 미 정치전문지 폴리티코 등에 따르면 미국은 이날 인권 유린을 이유로 최룡해 조직지도부장·정경택 국가보위성 국가보위상·박광호 선전선동부장 등 북한 고위급 인사 3명을 대북제재 명단에 추가했다.

이는 대통령 행정명령 제13687호에 따른 것으로, 이번 조치로 미국이 북한 인권과 관련해 제재하는 대상은 32명으로 늘어나게 됐다.

인권 이슈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압박카드 중 하나로, 북한이 비핵화에 대해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협상 테이블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이같이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부가 북한 지역 인프라 건설 등의 효과를 발생시키는 사업을 잇따라 추진하고 있어 '세컨더리 보이콧'에 대한 가능성이 고조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세컨더리 보이콧은 제재 대상과 연관된 제3자의 상품 및 서비스 구매를 막는 것으로, 금융기관과 에너지 공기업 등이 엮이게 되면 다른 기업에게도 피해가 전이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 내 전력 공급이 끊긴 개성공단 송전선/사진=연합뉴스


한국전력공사가 최근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동북아 계통연계(전력망 연결) 추진을 위한 최적 방안 도출 및 전략수립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과 러시아 등에서 전기를 수입해 일본에 파는 이 사업에 필요한 투자비는 7조2000억~8조6000억원이다. 

이 중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북한-경기 북부로 이어지는 전력망 구축에 2조4000억원 가량의 투자비가 필요하며, 사업경로 대부분이 북한 지역에 속했다는 점에서 투자비의 상당 부분이 북한 개발에 쓰일 수 있어 이 사업을 진행하는 한국이 세컨더리 보이콧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5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에 파이프를 설치해 러시아 천연가스를 도입하는 사업이 언급됐을 때도 이같은 지적이 나온 바 있다. 건설현장 근로자에게 인건비를 주고 북한 측에 개발수익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건설 후에도 연간 1600억원이 넘는 통과료를 지불해야 하며, 파이프라인 이용료를 별도로 요구할 경우 추가적인 비용이 들어가게 된다.

   
▲ 거제-진해구간 해저터널 전경(사진은 기사와 무관)/사진=한국가스공사


한편 한전은 보고서에서 이 사업을 추진하는 이유 중 하나로 '탈석탄·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 등 에너지전환정책에 따른 전력수급 및 계통 불안정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정책 확보 수단'을 꼽았으나, 산업통상자원부는 이같은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해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산업부는 동북아 슈퍼그리드에 대해 '계통섬'이라는 지리적 한계 탈피를 위해 추진되는 것으로, 과거 정부에서부터 시도한 사업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이후 이 사업을 주장한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관련 사업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이 남북관계 악화 등을 트집잡아 자국을 경유하는 전력망을 끊을 경우 이 사업을 통해 국내로 들어오는 전력량의 절반 이상이 타격을 받게 되며, '사드' 문제로 단체 관광을 중단시킨 중국이 유사한 조치를 취할 경우 이 사업은 사실상 무용지물로 전락할 위기라는 평가를 받는다.

러시아가 파이프라인을 통해 유럽에 천연가스를 공급하고 있으나, 우크라이나와 가격분쟁이 벌어지자 밸브를 잠가 인근국가까지 피해를 입은 사례가 동북아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 역시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 대한 일방적 단전을 실시하면서 한국에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동북아 국제관계는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몰라 사업의 리스크가 크다"며 "국내에서 전력을 충분하게 생산하고 가격을 낮게 책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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