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북미 간 2차 핵담판이 무산된 것은 결국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조치의 조합 맞추기에서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이 전면적인 제재해제를 원했다”면서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를 할 준비가 안돼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비핵화의 ‘입구’로 제재 해제를 요구했지만 트럼프는 앞으로 비핵화의 ‘출구’로 제재 해제 카드를 사용할 것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8일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갑작스럽게 종료된 이후 단독으로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회담이 아주 생산적인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나와 폼페이오 장관은 어떠한 합의에도 이르지 않고 끝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때는 다른 길을 택해야 될 때도 있다. 이번이 그때였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장관이 나서 “미북 정상이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의 성과를 이어가고자 했다. 그리고 많은 진전을 이뤄냈다. 하지만 최종적인 목표는 이루지 못했다. 미국이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며 “미국 협상팀이 이 복잡한 문제 해결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 앞으로 수일, 수주 동안 진전을 이룰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또 “지금까지 진전만 가지고도 낙관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금까지 미북 정상의 지난 며칠간의 결과를 보면 앞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한다”며 “김정은 위원장도 이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봤지만 현 지점에서 더 나아갈 수가 없기 때문에 이번 회담은 여기서 끝이 났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회담에서 북미는 ‘빅딜’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앞으로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예고한 셈이다. 김 위원장이 이번에 전면적인 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그동안 자신들이 취해온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충분한 상응조치라고 주장하기 위한 것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알려져 있는 영변 말고 또 다른 곳에서 북한이 핵물질을 만드는 시설이 있다"고 말하니 북한이 놀란 것 같았다고 했다. “미국은 북한의 핵 활동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해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기뿐만 아니라 우라늄 농축시설 등 핵물질 시설과 미사일 시설 등을 포함한 핵리스트 신고 및 폐기를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폼페이오 장관은 “우리에게는 (비핵화) 일정표와 순서가 있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해체한다고 해도 그 외에도 미사일 시설과 핵탄두 등 무기 시스템 등이 남아 있다. 여러 가지 요소에 대해서 북한과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핵 목록 신고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담을 마무리 지을 때 어떤 분위기였는지 묻는 질문에 “굉장히 좋았다. 우호적이었다. 그냥 갑자기 일어서서 나온 것이 아니라 우호적으로 마무리 했다”고 했다. “악수도 했고 서로간의 따뜻함이 있었다. 이런 따뜻함은 계속 유지되기를 바란다. 앞으로 굉장히 특별한 것을 할 수 있는 준비를 갖췄다고 생각한다”며 의미도 부여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보기에는 이런 문제는 과거에 이미 해결이 돼야 했다고 생각한다”며 “사실 이번에도 굉장히 많은 과거 정부의 관계자분들이 나한테 여러 말은 했는데 지난 정부는 8년간 아무것도 안 하지 않았나”라며 스스로 치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의 비판과 달리 미국은 그 어떤 것도 북한에게 양보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며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절친한 친구다. 그리고 북한은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다. 막대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것은 하노이 현지에 몰려든 외신 기자들도 놀랄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었다. 더구나 최근 미국 실무협상팀에서 ‘대량살상무기(WMD) 동결’이나 ‘비핵화 의미에 대한 이해 증진’ 등 현실적인 의제가 언급된 이후 이날 오전 단독회담에서 북미 정상간 연락사무소 설치에 긍정적인 답변이 나왔다는 점에서 단계적인 접근 방식의 ‘스몰딜’로 타결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있었다.

   
▲ 제2차 북미정상회담 이튿날인 2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회담 도중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다./VTV


결국 ‘하노이선언’은 불발됐지만 일각에서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합의를 유예시켰을 뿐이라는 해석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북한의 핵동결 수준에서 종전선언에 버금가는 ‘평화선언’ 또는 연락사무소 교환 정도로 얼마든지 단계를 밟는 합의문에 서명할 수 있었겠지만 최근 마이클 코언 변호사의 폭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어정쩡한 타협을 갖고 귀국했을 때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에 합의를 보류했다는 주장이다.

또 비록 정상회담의 합의는 도출하지 못했지만 이제 서로가 원하는 의제를 분명히 알았기 때문에 오히려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룬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 말미 후속 회담에 대한 질문을 받자 “빨리 열릴수도 있고 오래 안 열릴 수도 있다”며 “빨리 열렸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 역할이 더욱 중요시될 전망이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에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고, 앞으로 북미 간 3차 정상회담이 개최되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전성훈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비전’에 대한 질문을 받고 얼버무린 점을 볼 때 비핵화 개념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며 “앞으로 북한의 핵보유는 기정사실화되는 것이고, 이제 비핵화 외교에서 벗어나서 북핵 대응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과 합의 불발에 실망한 김정은 위원장이 더 이상 미국과 협상을 포기하고 ‘새로운 길’로 갈 가능성의 여부가 주목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월1일 신년사에서 “미국이 오판하면 새로운 길로 갈 수 있다”고 엄포를 놓은 일이 있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또 회담이 열리던 이날 오전에도 여러차례 “김정은 위원장이 로켓이나 핵실험은 안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서 신뢰하고 또 믿는다”고 말했다. 

아울러 당장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불투명해지는 등 앞으로 동북아 정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더 이상 추가 제재는 없다”고 했지만 미국이 원하는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일정 정도 ‘냉각기’를 갖는 압박을 가해야 할 것이므로 한반도의 긴장 국면이 다시 조성될 가능성이 있다. 또 미국은 대북 압박 과정에서 남북경협이 앞서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므로 금강산관광이나 개성공단 재개도 안개 속으로 빠져들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