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에 "남북위해 최선다했다는 흔적 남겨야" 제안

   
 김우중 전대우회장
김우중 전 대우회장은 북한 독재자 김일성 김정일과 20여차례 비밀리에 만나 남북정상회담을 주선했다. 노태우대통령과 김일성간의 정상회담은 거의 성사단계에서 무산됐다. 김영삼대통령과 김일성간의 정상회담도 김회장이 막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회장이 이같은 남북정상회담을 막후중재했다는 이야기는 처음 밝혀지는 비화다. 김일성과 김정일을 이렇게 많이 만난 사람은 김우중회장이 유일하다.

김우중 회장은 신장섭 국립 싱가포르대 교수와의 대담집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에서 남북정상회담 등을 둘러싼 비화를 밝혔다. 다음은 이 책의 관련부분이다.

 ‘대북특사’ 김우중의 남북협상과 ‘김일성, 김정일’과의 20여 차례 만남

김우중 회장이 노태우 대통령 때부터 ‘대북특사’로 일하면서 남북기본합의서(1991년)를 만들어내고 노태우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 간 정상회담을 거의 성사시켜 놓았던 것이나,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중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 ‘김영삼-김일성 정상회담 합의(1994년)’에 김 회장이 막후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이 책에서 처음으로 공개되는 남북관계 비화(秘話)이다.

김 회장은 10년 가량 북한을 오가면서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단 세 명이서만 20번 이상 만났다. 한국이나 세계 어디에서도 김일성과 김정일을 이렇게 직접 많이 만난 사람은 없다.

그동안 일반적으로는 신흥시장 개척에 앞서 나간 김 회장이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시장’을 열기 위해 북한에 드나들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렇지만 김 회장의 진짜 관심은 남북관계 개선 자체에 있었다.  김 회장은 ‘세계를 경영한 민족주의자’였다. ‘장사꾼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며 긴가민가 하다가도 김 회장이 대북특사로 활동한 대목에 도달하면 ‘진짜 그렇구나’라고 할 것”이다.

김 회장이 김일성을 설득하는 장면을 보자. “적어도 독립운동, 일제시대도 거치면서 그렇게 고생해가며 나라를 일궜는데, 남북을 위해서 되면 좋고, 안 되면 최선을 다했다는 흔적이라도 역사에 남겨야 하지 않겠느냐’ 하면서 남북화해를 권유했어요. 김 주석도 지도자로서 (역사에 흔적을) 남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어요. 내 얘기에 동의했지요. 김 주석은 (남북관계를) 어떻게든 잘하려고 했어요.”

   
 

노태우 대통령에게 남북정상회담을 권유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때 내가 (노 대통령 정부에) 첫 번째로 얘기한 것이… 주변국들 동의를 받아서 (정상회담) 하는 것은 절대 힘들다. 일단 터뜨려놓고 전(全) 능력을 동원해서 무리가 있더라도, 힘이 들더라도 수습할 생각을 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진실성을 갖고 앞날의 통일을 위해 노력하면 될 것이라는 말도 했고요. ….

나는 그게 참 아쉬워요. 그때는 중국도 문제가 있었고, 러시아도 문제가 있어서 한반도 문제에 적극 개입하기 힘들었어요. (남북정상회담 하기에) 참 좋은 시기였어요. 국제 여건이 그렇게 다 살아 있을 때에 내가 건의한 대로 했으면 세상이 달라졌을 거예요. 노 대통령이 한 번 (북한에) 가고, 김 주석이 (한 번 남한에) 오고…. 그때 (합의서도) 유리한 조건이었어요. … 그때가 한국에는 찬스였는데… 그 기회를 놓친 거지요.”.

 대우의 ‘세계경영’과 기업인 김우중에 대한 재해석

언론에서는 일차적으로 대우해체에 관한 김 회장의 증언과 논란에 관심을 쏟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더 길게 남을 내용은 세계경영에 대한 재해석과 신흥시장 진출에 관한 경영 교훈이다. 또 한국이 현재 당면한 저성장이나 청년실업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대우의 세계경영이 주는 의미가 굉장히 크다. 왜 그런가?

첫째, 20세기가 미국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신흥국의 세기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이 곧 경제규모에서 미국을 추월할 예정이고 인도도 현재의 성장세를 지속할 경우 이번 세기 중반에 미국을 추월할 전망이다. 아프리가, 중남미, 동남아 국가들도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신흥시장의 성장세를 감안할 때에 한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 거의 모든 나라들에게 신흥시장은 미래의 ‘먹거리’를 제공해준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대우의 세계경영은 신흥국 출신 기업이 신흥시장에 어떻게 진출하고 이를 세계적 범위에서 엮어내는지에 관한 교본(敎本)을 제시하고 있다. 신흥국에서 출발해서 다른 신흥국으로 진출하려는 다국적기업들은 선진국 출신 다국적기업들이 갖고 있는 기술력, 자본력에 대항할 다른 무엇인가를 갖고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 대우는 그런 것들을 세계적 규모에서 종합적으로 만들어낸 첫 번째 사례이고 그 결과 신흥국 출신 최대 규모의 다국적기업으로 발돋움했다. 그래서 기업사적 가치도 있고 다국적기업을 경영하려고 하는 사업가들에게 교과서적 가치도 있다.
 

세계경영의 모태는 대우의 아프리카 시장 개척에서 찾을 수 있다. 아프리카는 당시 대우에게 ‘틈새시장(niche market)’이었다. 김 회장은 선진국은 시스템이 이미 갖춰져 있어서 신흥국 출신의 젊은 기업이 뚫고 들어가기 쉽지 않고, 신흥시장도 일본기업과 화교가 많이 나가 있는 곳은 진출하기 쉽지 않지만 아프리카와 같은 곳은 “더 빨리 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직원들 중에서 제일 머리 좋고 일 잘하는 사람들을 아프리카에 보냈다. 이들이 아프리카를 개척하면서 단련되고 능력을 쌓았던 것이 ‘세계경영’의 인적 기반이 됐고 아프리카에서 시도한 전략과 조직이 ‘세계경영’의 전략과 조직으로 발전했다.
 

‘민족주의자’ 김우중은 신흥국 중심의 세계경영을 하는 데에 핵심 경쟁력이 됐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신흥국에서의 사업은 단순히 비즈니스 대 비즈니스의 시장 거래가 아니라 정부, 정치인, 관료들을 상대해야 하고, 이들에게 경제발전의 정신과 수단을 함께 제공하면서 돈을 벌어야 한다.

대우는 한국에서 이미 수출 선도, 중화학산업 부실 해결 등을 통해 경제발전과 사업발전을 함께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신흥국을 상대할 때에 독보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김 회장이 이윤만을 추구하는 일반적 사업가라서 원래 계획했던 대로 무역과 금융을 축으로 한 비즈니스 그룹을 키워나갔다면 이런 정도의 역량을 확보하지 못했을 것이다.

김 회장은 정부의 중화학 산업 참여 요청을 받아들이고 부실기업들을 살려 내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그 역량을 확보했다. 신흥국 진출은 정치-경제-기업의 오케스트라이다. ‘민족주의자’와 ‘세계경영’이 얼핏 보면 상충하는 단어들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신흥국 비즈니스에서 굉장히 커다란 보완관계가 있다.
 

대우의 세계경영이 일반적 세계경영과 어떻게 다른지, 지도자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창조-도전-희생’의 정신과 역량을 갖춘 직원들을 어떻게 키워내는지 등을 주목해야 한다. 가장 특이한 것은 김 회장이 리비아에서부터 적용한 ‘50 대 50 원칙’이다. 상생(相生)의 원칙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기업 경영 측면에서는 고도성장과 위험관리를 동시에 추구하는 경영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신흥시장이 ‘고위험 고수익’이라고 흔히 얘기하지만 이를 ‘저위험 고수익’으로 바꾸는 비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리스크는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아예 없애고 갈 수도 있다. 이익의 50%를 진출국을 위해 쓰면 처음에는 이익을 적게 얻는 것처럼 보여도 매출이 두 배로 늘어나면 50%만 벌던 게 본전이 된다. 매출이 20배로 늘어나면 이익이 10배가 될 수 있다. 신흥시장에서는 매출이 10배, 20배 느는 것이 금방이다. [미디어펜=이의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