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 "당정 협의 중이지만 현재로선 시행 유예 계획 없어"…수수방관
정작 52시간제 도입한 민주당, 지난달 부랴부랴 근로기준법 개정안 발의
이병태 교수 "정부, 나라 망하는데도 태평…실태조사 결과도 의심스러워"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내년 1월부터는 종업원 300명 미만인 사업장도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된다. 그러나 해당 정책을 도입한 더불어민주당과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의 반응의 온도차가 커 이목이 집중된다.

16일 고용부 관계자는 미디어펜과의 통화에서 "제조업체 4000개사와 기타 업종 1만2600개사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현재 주 52시간을 초과해 근로하는 직원이 없다는 답변이 91%였다"며 "30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주 52시간 근무제 계도기간이 1년 6개월로 충분했고, 흔들림 없이 추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해당 제도가 내년부터 시행되는 건 현재로선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여당인 민주당과 협의가 이뤄지고 있느냐는 질문엔 "협의가 진행 중이긴 하나, 자세한 논의 단계에 착수한 건 아니다"라며 "(여당 뿐 아니라 관계부처와의 협의도 거치는 등)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주 52시간제 시행은 현재 법으로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한다고 못박혀 있어 법 개정이 필요한 부분"이라면서도 "고용부의 공식입장은 그렇게 까지 하면서 관련 법의 시행 시기를 늦출 필요는 없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실상 고용부는 52시간제에 대해 뒷짐지며 여유로운 듯한 자세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정작 52시간제를 도입한 민주당은 발등에 불 떨어진 듯 분주한 모양새다.

이원욱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지난달 9일 주 52시간제 도입을 미루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어 지난달 11일엔 "대외 경제 여건 불확실성과 일본의 수출 규제로부터 오는 불안감이 같이 커지고 있다"며 "중소기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 부대표는 "주 52시간 근무제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기업들에게 수용 여건을 충분히 조성해줘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 개정안에 대해선 이 원내수석부대표 외 21명의 민주당 의원들이 공동발의에 참여했다. 민주당 전체 의석 수가 130석 가량 된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민주당 내에서도 상당수가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여당의 이 같은 움직임에도 친 노동정책을 펼치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고용노동행정엔 변함이 없을 것이란 지적이다.

기획재정부도 민주당 입장에 동조하고 있다. 지난 12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추석 연휴에 중소기업 현장을 돌아본 후 페이스북에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 대한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에 대해 정부의 최종 대응 방향도 재점검 해야겠다"고 적었다. 이는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정책 수정이 있을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기존 입장을 번복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고, 이로 인한 정부 부처간 불협화음 논란이 예상된다.

이와 관련,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공학부 교수는 "무디스 등 해외 신용평가사들이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낮춘다고 경고하는 등 나라가 망해가는데도 정부는 태평하기 그지 없다"며 "이렇게 영혼이 없으니 공무원 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병태 교수는 "소득주도성장론 때문에 모두가 힘들어 하고 1분위와 5분위의 소득 양극화가 벌어지는 걸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는 3040의 일자리가 줄고, 세금으로 만든 60대의 알바 자리가 질이 나쁘다는 시장의 피드백이 와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비평했다. 또한 "다른 나라들이 다들 잘 나가는 와중에도 혼자 성장을 못하는데, 대외여건 탓만 하는 등 남탓만 하고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 교수는 "제조업·게임·소프트웨어 업계가 주 52시간제에 발목을 잡힌 탓에 납기 불확실성에 회사와 공장을 해외로 옮기는 현실"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 만악의 근원은 소주성에 입각해 급격히 인상된 최저임금과 획일적 노동시간 규제에 있다"며 "일본에선 최저임금의 3배 이상을 받는 근로자는 근로시간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고, 영국에선 '오프 아웃(off-out)' 제도가 있어 근로자가 연장근로를 희망할 경우 허용하는 등 노동 시장이 유연하다"고 평가했다.

고용부의 실태조사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표했다. 이 교수는 "정부가 전국 1만6600여개 기업을 대상으로 주 52시간제 시행에 관한 조사를 벌였다는데, 정권 입맛에 문제가 없다고 조사 결과가 나오도록 한 건지 의심스럽다"며 "고용부는 실태조사를 했다면 발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주 52시간 근무제는 한국 경제에 중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규제임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사전영향조사도 실시하지 않았다"며 "그저 공무원 몇명이 기업인 일부를 만나보니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건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펼 정책이 아니며, 매우 전근대적인 태도"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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