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보다 더 큰 생채기를 준 지난 한 달의 공천 북새통
   
▲ 이석원 정치사회부장
[미디어펜=이석원 정치사회부장]원내 1당과 집권을 꿈꾸는 제1 야당 대표가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본인의 불찰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선거를 한 달도 안 남긴 시점에서 제대로 된 우군도 없이 허허벌판에 무기도 없이 외롭게 선 윌리암 월레스의 처지가 되고 있다.

우리에게는 멜 깁슨이 연기한 영화 ‘브레이브 하트’로 알려진 13세기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의 영웅 윌리암 월레스는 불세출의 전사이며 영웅이었다. 하지만 그는 잉글랜드를 상대로 벌인 여러 전투에서 늘 스코틀랜드의 썩은 귀족들로부터 배신과 외면을 당하기 일쑤였다.

월레스는 1297년 스털링 다리 전투에서 잉글랜드를 상대로 벌인 전투에서 대승을 거둬 ‘스코틀랜드의 수호자’라는 칭호를 받기도 했지만 그 다음 해 폴커크 전투에서 벌판에 홀로 선 ‘쓸쓸한 영웅’ 신세가 됐다. 월레스를 칭송하며 그의 칼 아래 모일 것을 약속했던 스코틀랜드의 귀족들이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1세의 회유와 협박에 놀아나 월레스에게 동참하지 않았던 것이다.

뾰족한 나무 장대로 방벽을 세운 스킬트론에서 외롭게 버티던 월레스는 결국 다른 귀족들의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에드워드의 공격을 받고 휘하의 병사들을 대부분 잃은 채 패퇴했고, 겨우 목숨만 건져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황교안 대표는 힘겹게 미래통합당의 수장 역할을 수행해 오고 있다. 목숨을 건 단식 투쟁이 자기 진영 안에서도 조롱당했다. 그러고도 선거법 개정이나 패스트트랙도 막지도 못했다. 정치 생명이 달리다시피한 총선도 등 떠밀려 종로에 나갔다. 중도 외연을 확장해보려고 김종인을 영입하려고 했더니 온 동네가 시끄럽기만 하다가 하지도 못했다.

그러던 와중에 선거법 개정으로 최악의 총선 결과를 맞을 수도 있었는데, 비례 정당이라는 묘안을 찾아서 오히려 원내 1당 등극의 희망을 지폈다. ‘어정쩡한’ 친박 소리를 듣는 중에 ‘친이계’ 김형오를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세워 신선한 공천 혁명을 통해 지역과 비례 모두에서 선거 승리를 꾀하기도 했다. 실제 더불어민주당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황교안 대표의 적은 민주당이나 문재인 정부에 있지 않았다. 황교안 대표의 적은 자신이 대표로 있는 통합당 안에 있었고, 대학 1년 후배를 내세워 창당한 위성 정당인 미래한국당에 있었다. 그동안도 순탄치 않은 야당 지도자 생활을 해왔지만, 지난 1개월 여 공천으로 인해 황 대표의 적이 누구인지 정체를 드러난 것이다.

어느 선거인들 공천이 시끄럽지 않겠나? 정치인에게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공천은 늘 시끄럽고, 매 선거 때마다 ‘공천 혁명’과 공천 학살‘은 이음동의어로 쓰이고 있다. 지난 20대 총선 때 당 대표인 김무성이 공관위원장인 이한구를 상대로 대표 직인을 들고 부산으로 도망치는 ’옥새 파동‘을 벌이기도 할만큼 공천은 당 대표에게 희비를 동시에 주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보다 훨씬 권위적이고 제왕적인 총재 또는 당 대표 시절에야 공천권을 쥐고 권력을 휘두르는 당 대표를 볼 수도 있었지만, 이제는 총선 때문은 당이 당 대표와 공관위원장이라는 ’이원집정부‘를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황 대표는 공천 과정에서도 당 대표로서의 권한을 놓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놓을 수도 없는 문제였다. 공관위원장이 제아무리 당 대표의 마음을 읽지 않는 공천을 한다고 해도, 당 대표에게는 최고위원회를 통해 최종 의결권을 지니고 있으니.

위성 정당인 미래한국당은 더더욱 그렇다. 제아무리 뭐라고 해도 위성 정당은 위성 정당이다. 오히려 통합당보다 ’황심‘이 더 제대로 작용할 수 있는 곳이 미래한국당 비례공천이다. 그랬기에 힘들여 인재를 영입하고 그들을 거의 몽땅 미래한국당으로 보낸 것이다. 지역구 공천보다 더 괜찮은 공천 혁명은 거기서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 / 사진 = 미래통합당
그런데 황 대표의 우군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우군인 줄 알았던 이들도 제대로 얼굴을 들여다보니 우군이 아니었다. 황 대표를 처내고 권력을 차지하려는 자들도 아니다. 그런 권력 의지라도 있었다면 애당초 경계라도 했을텐데, 그저 한 줌도 안 되는 현재의 땅덩어리나 보존하자고 적을 이롭게 하는 이들이었다.

결국 지난 16일부터 나흘간 세상을 시끄럽게 하며 황 대표의 권위와 대표성에 생채기만 잔뜩 낸 ’한선교의 반란‘은 한선교가 “참으로 가소로운 자들”이라는 독설을 남기며 미래한국당 대표 사퇴를 선언함으로 끝났다. 

그러나 한선교는 끝났지만 황 대표에게는 더 암담한 미래를 남겨 놓았다. 뭐 어떻게든 비례대표도 공천하고, 지역구 후보들에 대한 공천도 마무리는 될 것이다. 또 그렇게 27일 후에 총선은 치러질 것이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 다음 황 대표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2년이 채 남지 않은 다음 대선 스타트라인에 발을 디딜 수는 있을까? 나타나지 않는 우군을 기다리며 적군 앞 벌판에 외롭게 서 있게 되는 건 아닐까?

폴커크 전투에서 패배한 후 윌리암 월레스는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를 피해 도망다닌 게 아니라 그를 붙잡아 에드워드에게 바치려던 스코틀랜드의 귀족들을 피해 다녔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서는 스코틀랜드 귀족들에게 배신당한 월레스가 그 귀족들을 찾아다니며 복수의 칼을 휘두르는 장면이 나오지만, 실제 스코틀랜드 역사 속에서 월레스는 그러지 못했다. 1305년 그 귀족 중 하나인 멘티스에게 잡혀 잉글랜드의 형장에서 처형당했다.

적과 싸우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니다. 적임을 알기에 명확하게 목숨을 바쳐 싸울 수 있다. 하지만 함께 싸워야 할 우군에게 버림받는다면 그 왕이나 장수는 적이 아닌 우군에 의해 패배하게 된다. 이럴 때 목숨을 바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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