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행에 기댄 '법조항 모호성'이 가장 큰 문제
각 의원이 헌법기관으로서 동등한 지위 가져야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15일 여야가 원 구성을 놓고 극한 대치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핵심 문제인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의 권한과 역할에 대해 온갖 말들이 오가고 있다. 국회는 이날 오후 6시 본회의에서 18개 상임위원회 중 법사위를 비롯한 6개 상임위원장 선출을 위한 표결 절차에 들어간다.

법사위원장 권한 중 가장 핵심은 상정 거부권이다. 자구와 체계를 심사해 수정하는 기능 또한 법사위의 주된 역할로 꼽힌다. 이에 따라 앞선 국회에서 법사위원장이 마음만 먹으면 입법 길목을 막아서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법조계는 이 외에도 자구체계 심사 범위가 모호한 점, 법사위 산하 법안소위의 만장일치 관행도 법안 통과의 큰 벽 중 하나로 보았다.

이뿐 아니다. 특히 검찰·법원을 감시·관할하는 역할에 주목하고 사법기관들이 울산시장 선거개입 및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 청와대 관련사건 처리 과정에서 견제할 수 있는 점 또한 지적했다.

   
▲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와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15일 오전 국회에서 만나 21대 국회 전반기 원 구성을 위한 막판 협상에 나섰다./사진=연합뉴스
다만 법조계는 법사위원장의 이러한 권한과 역할이 법조항의 '모호성'에 기대고 있다는 점, 헌법기관으로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소속된 상임위에 따라 동등하지 않은 지위를 갖는다는 점은 개선해야 할 맹점으로 보았다.

익명을 요구한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의 한 법조인은 15일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서 "진영 논리를 떠나 법조인으로서 보자면, 법사위원장 임명을 둘러싼 여야 대치부터 법조항의 모호성에 따른 필연적인 것"이라며 "지난 2004년 이후 관행대로 정해온 국회 상임위원장 배분을 슈퍼여당이 장악한 후 '법대로 하자'고 다수결로 밀어붙이는 것도 문제이지만 어차피 법사위원장 힘을 뺄 방도는 여러가지 있는걸 알면서도 법사위원장 한 자리에 목 매는 야당 모습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행 입법과정에서 법사위는 법안의 본회의 부의 전 그 자구와 체계를 심사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 심사범위가 법상으로 명확히 규정되지 않아 모호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또한 법사위 산하 법안소위가 만장일치로 통과시켜온 관행도 문제인데, 이건 국민들로부터 선택 받아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부여받은 각 의원의 헌법기관 기능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대한민국 국회는 미국 상하원 시스템과 달리 개별상임위가 모두 동등한 지위와 권한을 갖는다"며 "법사위가 자구체계 심사와 법사위원장의 상정 거부권 때문에 사실상 '옥상옥' 역할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국회 전문인력을 비롯해 법조인이 다수 들어간 현 국회 상황에서 각 상임위가 해당 입법의 여파와 결과까지 책임지는 '국회 개혁'을 이룬다면 지금과 같은 법사위원장 쟁탈전은 벌어지지 않을 것. 법사위는 검찰과 법원을 국민 입장에서 감시하는 본연의 입장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한 법조인은 이날 본지의 취재에 "어차피 야당 법사위원장이라도 176석 여당이 패스트트랙(안건 신속 처리)에 올리면 일정한 기한 내의 법안 처리에 아무 문제없고 장기적으로는 법사위원장 권한을 명확히 규정하는 법개정안을 처리하면 끝"이라며 "관행대로 하자는게 타협과 대화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룰이 아니다. 다수결로 가는게 국회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슈퍼여당이 국민이 쥐어준 의석수를 갖고 '책임 정치'를 하고 야당은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견제 역할을 하면 그만인 것"이라며 "오히려 법사위에 들어간 의원이 피감기관인 사법기관의 사건 처리에 압력을 가하지 않도록 하는게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또한 그는 "오히려 각 상임위와 법사위가 동등한 지위와 권한으로 입법 기능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며 "다만 여야 지도부 의중과 상관없이 의원들이 소신껏 의정활동할 수 있도록 교섭단체 제도를 철폐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그는 "미국 및 영국 의회에는 교섭단체 제도가 없어 평의원의 자율권이 크다"며 "입법부에서 대의민주주의를 제대로 실현하려면 각 의원들의 자유로운 의정 활동을 확대 보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176석 슈퍼여당과 103석 제1야당이 힘을 겨루는 이번 21대 국회에서 법사위원장 뿐만 아니라 관행과 법이 충돌하는 사례가 더 많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뜻을 온전히 잘 담을 수 있는 국회의 제 역할이다. 원 구성 갈등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