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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빌리 브란트의 무릎꿇기와 김종인의 무릎꿇기
50년을 두고 벌어진 두개의 뜻밖의 사건(?)이 주는 공통의 의미
폴란드 시민들, 독일 용서했던 것과 같이 광주에서도 그런 일이...
승인 | 이석원 부장 | che1125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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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인 2020-08-19 15: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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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석원 정치사회부장
[미디어펜=이석원 정치사회부장]1970년 12월 7일. 한겨울이지만 눈 대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는 을씨년스럽고, 또 우울했다. 유대인들의 죽음을 기리는 추념비가 있어서인지 주변의 분위기는 더 우울했다. 그리고 그 순간, 서독의 총리 빌리 브란트가 추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비에 젖은 돌바닥 위에 서독 총리의 무릎이 닿는 순간 폴란드 시민들은 물론 전 유럽 사람들이 놀랐다. 이건 전혀 예상하지도, 예정되지도 않았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독일이 저지른 무거운 역사의 짐 아래서, 나는 인간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낄 때 하는 행동을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살해당한 수백만의 사람들을 기렸습니다.”

빌리 브란트가 추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는 장면은 폴란드 전역으로 생방송 됐다. 브란트의 방문을 달갑게 여기지 않던 폴란드 시민들은, 브란트가 움직이는 거리에서 돌을 던지기도 하고, 야유를 보내기도 했던 폴란드 시민들은 일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그저 숨을 멈추고 6분 여 브란트의 무릎만을 응시했다. 

‘브란트의 무릎꿇기(Brandt Kniefall)’라고 불리게 된 이 장면을 보고 헝가리의 한 TV 앵커는 “무릎을 꿇은 것은 브란트 한 사람이었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민족이었다”고 말했고, 또 다른 유럽이 언론은 “나치와 싸웠던 브란트는 무릎을 꿇을 필요가 없던 사람이다. 그러나 브란트는 실제 무릎을 꿇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용기가 없어서 꿇지 못했던 사람들을 대신해서 무릎을 꿇었다”고 보도했다.

현대사에서 ‘조용한 사과(Silent Apology)’라고도 불리는 이 사건(?)은 당시까지도 ‘전범국’이나 ‘나치의 후예’ 등으로 손가락질의 대상이었던 독일(서독)의 이미지를 뒤바꿔놓았다. 독일 사람이라면 징그러운 벌레 보듯 하던 폴란드 사람들도 독일을 전혀 새로운 나라로 인식하게 됐다. 물론 브란트의 그 사과 하나로 그 참혹한 역사의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들의 마음에 변화의 씨앗은 심었던 것이다.

50년의 세월이 지난 2020년 8월 19일 대한민국 광주 망월동. 5.18 묘역 앞에서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폭염으로 뜨겁게 달궈진 돌바닥 위에 무릎을 꿇었다. 김종인의 광주 방문이 달갑지 않았던 광주 시민들에게도, 묘역의 관계자들에게도, 또 서울에서 그 장면을 보던 통합당의 관계자들에게도 급작스러운 일이었다. 

김종인은 “광주에서 비극적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그것을 부정하고 5월 정신을 훼손하는 일부 사람들의 어긋난 발언과 행동에 저희 당이 엄중한 회초리를 들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그동안 잘못된 언행에 당을 책임진 사람으로서 진실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지난해 당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에서 벌어졌던 일을 참회했다. 

그리고 그는 “알고도 침묵하거나 눈감은 행위, 적극 항변하지 않는 소극성 역시 적지 않은 잘못이다”라면서 “신군부가 집권하고 만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나는 재무분과위원으로 참여했다. 그동안 여러 기회를 통해 그 과정, 배경을 말하며 용서를 구했지만, 결과적으로 상심에 빠진 광주 시민, 군사정권 반대한 국민들에게는 쉽게 용납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다시 한번 이에 대해 사죄 말씀을 드린다”며 40년 전의 일까지도 참회했다.

나치에 맞서 싸우던 빌리 브란트와는 달리 김종인은 80년 신군부에 협조했던 인물이다. 그렇기에 ‘무릎 꿇을 필요가 없었던 브란트’에 비해 김종인은 ‘무릎 꿇어야 했던 사람 중 하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브란트의 무릎 꿇기’와 ‘김종인의 무릎 꿇기’의 무게가 그렇게 다르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만큼 80년대 초 민정당 이후 지금의 미래통합당까지 광주에 대한 태도는 참혹했다. 사과나 유감의 메시지가 살짝 나오려고 하면 금세 폄하와 왜곡의 발언들이 쏟아졌었고, 전향적 태도가 고개를 들려고 하면 이내 ‘북한군 개입’이니 ‘가짜 유공자’니 하는 모욕이 당을 뒤덮어왔다.

   
▲ 1970년 서독의 총리인 빌리 브란트처럼 2020년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 김종인의 무릎 꿇기는 시대와 역사에 대한 사과로 조명받을 수 있을까?/사진 연합뉴스

그랬기에 그 당의 그 누가 와서 고개를 숙인다고 해도 광주 시민들은 달가워하지 않았고, 심지어 그 당 출신의 현직 대통령이 기념식에 오려고 해도 격한 저항이 일기도 했다. 선거 때면 호남 민심을 달래볼까 하는 얄팍한 수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김종인의 무릎 꿇은 사과는 울림이 전과 같지 않았다.

‘브란트의 무릎 꿇기’가 지금의 독일을 만들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유럽 전체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그 참담한 원죄를 벗고, 이제는 EU의 지도자 국가가 된 나라, 눈부신 경제 발전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도덕적인 지원을 하는 나라라는 존경심 독일이 받게 된 것이 ‘브란트의 무릎 꿇기’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 지난 40년간 피멍이 든 광주에게도 ‘김종인의 무릎 꿇기’는 분명 유의미할 것이다. ‘정치적인 요식 행위’, ‘고도의 퍼포먼스’라고 보는 시선도 없지 않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을 앞지른 정당 지지율을 굳히기 위한 포석이라고 정치공학적으로 해석하는 사함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심이 담긴 사과’라고 본다면 광주는 김종인은, 또 통합당을 어떻게 달라진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까? 단지 정치공학적 측면에서가 아니라 정략적 이해관계를 떠나, 이제는 제대로 화합하고 융합해야 하는 시대적인 소명이 김종인의 두 무릎에 담겨 있다면 코로나 재유행의 조짐 속에서 나날이 우울해지는 대한민국에게 좀 더 신선한 호흡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염려되는 것 하나. 빌리 브란트가 바르샤바 게토 추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었을 때, 그의 정치 동반자이기도 했던 에곤 바르는 브란트의 행동이 만용이었다고 비판했다. 또한 그때까지도 전쟁의 패배에서 정서적으로 벗어나지 못한 수많은 독일 시민들과 보수 우파의 사람들은 브란트를 매국노라고 칭하며 맹렬히 비난했다.

지금 통합당의 내부에서도 그런 조짐이 보인다. 또 보수 우파 진영에서도 김종인의 무릎 꿇기를 비난하는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경제 민주화뿐 아니라 당헌을 통해서도 좌클릭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가운데 김종인의 무릎 꿇기를 배신행위, 해당 행위라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이들도 있다. 

역사 앞에서 김종인과 그들, 누가 더 당당할지는 또한 역사가 판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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