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한테 직접 햄버거도 시켜줄 수 있게 됐어요"
새로운 기능 익힐 때마다 얼굴엔 '함박 웃음'
고령화가 심화되고 있는 우리나라에 노인들의 정보격차가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언택트 사회로의 전환이 가속화 되고, 오프라인 경제가 쇠퇴하면서 노인들의 정보소외 현상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모바일 메신저, 온라인 뱅킹 등은 노인들에는 또 다른 장벽이다. 코로나19 이후 다중밀집시설 출입에 필수인 QR코드 역시 노인들에게는 쉽게 다가오지 않는 딴 세상이다. 스마트폰 보급율이 95%를 넘고 있지만, 온라인 세상에서 노인들의 삶은 더욱 고립되고 고달퍼지는 게 현실이다.

미디어펜은 '정보문명 딜레마-스마트 외딴섬 노인들' 심층 기획 시리즈를 통해 노인들의 정보소외 현실과 문제점을 짚어보고, 초고령화 시대를 앞두고 노령층의 정보격차 해소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이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해 본다. <편집자주> 

<시리즈 순서>
①터치로 연결된 스마트 세상…더 고독한 노인들
②스마트폰 없는 삶…'불편은 기본, 돈은 덤으로'
③언택트시대…스마트폰으로 '자유' 찾는 노인들
④혁명의 발상지 영국, 교육으로 디지털 격차 줄인다
⑤전문가들이 보는 노인들의 정보 소외, 해법은?

   
▲ 지난 10월 28일 전라남도 광주시 빛고을종합사회복지관에서 진행된 '어르신-디지털에 반하다' 교육 모습/사진=미디어펜


[미디어펜=광주·대전/김하늘 기자] "워메! 이렇게 편한 세상이 있었어야."

지난 10월 28일 전라남도 광주시 빛고을종합사회복지관에서 진행된 '어르신-디지털에 반하다' 수업 현장에서 들려온 감탄사다.

83세 배윤덕 할머니는 이날 키오스크로 햄버거를 주문해봤다. 가상으로 꾸며진 환경이었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키오스크를 사용해본 할머니는 그야말로 들떠 있었다.

배 할머니는 "내가 지금 다니는 병원에서도 접수를 이 기계를 통해서 하라고 한다"며 "병원에선 기계를 쓰는 것도 겁나고 사람들도 많아 눈치가 보였는데, 이젠 나도 스스로 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10개월만에 복지관을 나왔다는 배 할머니는 누구보다 열성적이게 키오스크 교육에 참여했다. 

과거 종업원에게 현금을 내면 거스름돈을 건네 받는 시대는 이미 지난지 오래다. 카드를 내밀고 긁은 후 돌려주는 시대를 넘어 이젠 직접 바코드를 찍고 결제방법을 택하는 시대가 된 지금,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기계 종업원은 낯선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고령층 정보화 교육 자료로 사용된 70대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의 키오스크 사용기 영상엔 고령 친구들에게 전하는 당부가 담겨있다. 

"돋보기 써야하고, 영어공부 해야하고, 의자 있어야하고, 카드를 꼭 챙겨라"

키오스크 앞에서 작은 키 때문에 메뉴 확인을 위해선 까치발을 들어야 했던 69세 조옥순 할머니는 크게 공감하며 "키오스크 앞에 의자가 꼭 있으면 좋겠다"고 웃었다.

   
▲ 지난 10월 28일 전라남도 광주시 빛고을종합사회복지관에서 진행된 '어르신-디지털에 반하다' 교육 모습/사진=미디어펜


이어 진행된 금융 애플리케이션(앱) 이용 교육에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애를 먹었다. 복잡한 공인인증서 등록 절차는 대부분의 금융 앱에서 사라졌지만 대신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정보인 본인의 계좌번호를 알고 계시는 어르신이 드물었다.

또 본인의 금융거래가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는 만큼 혹시 모를 실수에 지레 겁을 먹고 교육 자체를 두려워하기도 했다.

77세 김태원 할아버지는 "금융 앱을 자식들이 깔아줬지만 한 번도 사용한 적은 없다"며 "스마트폰을 잘 모르는데 잘못 사용해 돈이 모두 빠져나갈까봐 두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이에 최윤정 강사는 "현장에서 실습할 수 있는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다만 경제적인 부분과 연관된 교육에서 노인분들 사이 이용 자체에 대한 걱정이 큰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시중은행에서도 굳이 알려주는 앱 교육자가 상주하지 않더라도 각 지점에 있는 은행원들이 직접 노인분들에게 금융앱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며 "은행원이 함께 있는 공간에서 서로가 교육에 대해 인지한 채 돈이 빠져 나가는 것이 아니라는 안심과 협조만 이뤄진다해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지난 9월 21일 대전 유성구 노인복지관에서 진행된 '어르신-디지털에 반하다' 교육 모습/사진=미디어펜


이보다 한달 앞서 지난 9월 대전 유성구 노인복지관에서 진행된 정보화 수업 현장에선 때 아닌 장보기가 시작됐다. 스마트폰에서 앱을 다운 받을 수 있는 'Playstore'를 읽을 수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드물었다. 정보화교육 담당 강사는 이를 '앱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최 강사는 "우리가 무언갈 사기 위해선 시장을 가야하듯 앱을 사려면 시장에 가야한다"며 "시장 찾아보세요"라는 말로 교육을 시작했다.

대전 유성구 노인복지관에서 진행된 수업에선 스마트폰을 이용한 화상채팅 방법과 전자출입명부 등록 교육이 진행됐다.

수업 시작 전 어떤 정보화 교육을 가장 받고 싶은지를 묻는 질문에 대다수가 '화상채팅'을 꼽았다. 코로나19 여파로 명절에 대한 개념이 바뀌기 시작하며 대면 접촉이 줄어듦에 따라 새로 발생하는 니즈였다.

최 강사는 "당장 쓸모있는 것 뿐만 아니라 언제 어떻게 쓸지 모르는 기술이 발전할 수 있어 미리 배워둬야 한다"고 어르신들을 격려했다.

다양한 곳으로 강의를 다닌다는 최 강사는 "젊은 사람들의 강의는 취소가 안된다"며 "대부분 화상교육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코로나19 확산 이후 취소되는 수업의 대부분은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라며 "오프라인 교육을 대체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고 설명했다.

   
▲ 지난 9월 21일 대전 유성구 노인복지관에서 진행된 '어르신-디지털에 반하다' 교육에 참여한 어르신이 화상채팅 어플을 이용하는 모습/사진=미디어펜


젊은 사람들 사이 가장 흔하게 쓰이는 '줌(ZOOM)'이라는 화상 앱은 영어로 쓰여있어 언어장벽을 극복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수업 활용 앱으로 선정되지 못했다. 대신 '리모트 미팅(Remote Meeting)'이라는 국산 앱을 통한 교육이 이뤄졌다.  
 
교육 시작 후 같은 교실에 있지만 떨어져 앉아 있는 서로의 모습을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보게 된 어르신들은 아이처럼 신난 얼굴이었다.

69세 차원희 할머니는 "손바닥만한 핸드폰으로 별걸 다한다"며 "그놈 참 작은게 기똥차다"고 말했다.

정보화 교육을 통한 어르신들의 바람은 큰 것이 아니었다. 시간의 흐름에 뒤처지기 싫다는 것, 누군가에 의해 살아지는 삶이 아닌 스스로 결정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부인과 함께 손을 꼭 잡고 오신 79세 유흥휘 할아버지는 "현대 사회에서 스마트폰을 모른다면 생활 자체를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를 우리가 스스로 응용하고 사용해 자식들에게 최소한의 도움만을 요구하며 아내와 함께 좀 더 수월하게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 '어르신-디지털에 반하다' 교육에 참여한 어르신들이 수업을 이해하기 위해 빼곡하게 적어 놓은 수업 노트/사진=미디어펜


정보화 교육이 이뤄지지 못한 노인들에게 코로나 시대는 '고독' 그 자체다. 

최 강사는 "코로나19 이후 대부분의 복지관이 문을 닫게 됐는데 이 같은 상황에 노인들은 하루종일 한 방향 정보만 쏟아내는 TV를 시청하는 것 외엔 즐길거리를 찾을 다른 방도가 없다"며 "정보화 교육이 이뤄진 노인들이라면 스마트폰 등을 이용해 스스로 정보를 찾고, 집 안에서도 즐길 거리를 찾아나설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라고 설명했다.

정보화 교육은 단순히 스마트폰 이용 교육을 넘어서 코로나19 시대 어르신들에게 자유를 선물하는 것과 같은 셈인 것이다.

장유영 한국정보화진흥원 정보화교육 담당자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고령층 정보격차로 인한 노인세대의 어려움이 드러났다"며 "공적 마스크 구매 시 집안에서 간단하게 약국 위치와 마스크 재고 등을 파악할 수 있는 마스크 앱이 있음에도 고령층은 이 앱을 사용하지 못해 마스크를 여러번 빨아서 사용했던 사례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정보화진흥원에서는 영상제작에 소질이 있는 고령층 강사를 활용해 마스크 앱 구매법 관련 영상 콘텐츠를 제작해 배포하는 등의 노력을 진행했다"며 "고령층의 정보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선 여러 기관들의 콘텐츠와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는 각 기관, 정부 단체의 협업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미디어펜=김하늘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