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29년 3개월형이지만 '법의 사각지대' 구멍 여러 곳
어떤 범죄보다 피해 회복 극도로 어려운 실정 감안해야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환경은 무차별적이다. 그들만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범죄는 왜곡된 성에 대한 죄의식조차 없다. 이는 사이버상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픈 현실이다.

단지 성적 모럴헤저드가 아니라 사회 깊은 곳에서 오랫동안 암적인 존재로 자라온 고질적 병폐이기도 하다. 잘못된 성 관념이 악의 세습으로 이어지면서 사회 통합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혹마저 들게 한다. 

이에 본보는 디지털 성범죄의 현황과 구조적 문제 진단,  범죄 엄단과 예방을 위한 양형기준 강화, 성인지 지수 향상, 해외 사례 등을 중심으로 '내 손안에 악마가 산다 - 제2의 n번방 막아라'를 주제로 심층 기획시리즈를 연재한다. 

시리즈 순서 ①n번방 사태로 본 디지털 성범죄 현주소/②악마는 디테일에 있다?…2차 피해는/③'솜방망이' 처벌이 부른 악순환/④피해자 위한 사회 안전망은?/⑤[르포]아이들 향해 랜선 타고 엄습하는 '검은 손'…영국 법은/⑥[르포]미국에서 n번방 사건 일어났다면?/⑦[르포]여성인권 선진국 스웨덴…강력한 법이 답/⑧'제 2의 n번방 막아라' 전문가들 목소리는[편집자 주]

[제2 n번방 막아라-③] '솜방망이' 처벌이 부른 악순환

   
▲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난 15차 공청회의 전문가 의견을 반영하고 관계기관 및 행정예고를 통한 추가 의견 수렴을 거쳐 12월 7일 106차 전체회의를 갖고 양형기준안을 최종 의결한다. 사진은 "우리 사회의 무관심으로 N개의 방이 생겼습니다. 디지털 성범죄, 계속 방관하시겠습니까?"라는 문구가 쓰여진 공익광고 모습이다. '우리의 작은 행동이 모여 디지털 성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가 만들어진다'는 취지로 서울 시내 지하철역에 게시되어 있다. /사진=미디어펜
[미디어펜=특별취재팀 김규태 기자] "미국과 달리 우리 법원이 미성년자 상대 성착취물 제작을 가볍게 처벌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현재 양형기준으로는) 증거인멸을 위해 촬영물을 삭제하는 가해자는 모두 감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카메라 이용촬영 및 허위영상물 반포 등의 범죄와 관련해서 촬영물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 부적절한 감경이 이뤄질 수 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한 제작 범죄의 경우 헤비 업로더, 사이트, 디지털 장의사 등 음성 산업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형량 상한을 높여야 한다. 더욱이 이미 유포된 촬영물을 영구적으로 삭제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자발적 회수를 감경 사유로 포함해선 안 된다."

오는 12월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아동·청소년 대상 성착취 관련 양형기준안 확정을 앞두고 지난 2일 열린 15차 공청회에서 나온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디지털 성범죄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가해자에게 가볍고 피해자가 억울할 정도로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악순환을 부른다는 점이다.

양형위는 지난 9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 상습범에게 징역 10년 이상 최대 29년 3개월의 형량을 권고하고 피해자의 처벌 불원 등 작량감경 요소를 삭제한 양형 기준안을 확정했으나, 법관은 이 양형 기준안을 가해자(범죄자)에게 형을 선고할 때 참고하고 구속력은 없다.

판사에 따라 다른 '솜방망이' 처벌

양형 기준안은 피고·원고의 각 사정을 헤아리는 기준으로 작동해 판례에 따라 다르게 적용한다. 현행 형사처벌 판례에 따르면, 가해자에게 가볍고 피해자가 느끼기에 솜방망이 처벌인 경우는 최근까지 여러가지로 드러났다.

본지가 각 지방검찰청과 경찰청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결과, 우선 전통적인 형태의 성범죄와 비교해 행위가 가볍지 않고 피해 회복이 극도로 어려운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 범죄의 최저 하한 형량 기준이 2년 6개월로 13세 이상 청소년에 대한 성폭행 3년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 민갑룡 경찰청장이 지난 3월 24일 유튜브채널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N번방 운영자 및 가입자 신상공개' 청원과 관련해 답변하고 있는 모습이다. 당시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 및 포토라인 세워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올라간 청와대 국민청원은 총 참여인원이 271만 5626명으로 지난 3년간 운영해온 국민청원 게시판 청원 중 가장 많은 참여를 받았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유튜브 채널
또한 피해자 의사와 전혀 무관하지만 가해자가 자신의 범죄 증거 인멸을 위해 촬영물을 삭제하는 경우 법정에서 감형 받을 수 있다는 점도 꼽혔다. 촬영물의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에도 부적절한 감형이 이뤄질 수 있다.

재미로 피해자의 신상을 유포하는 경우 가중 요소에 포함되지 않았다. 카메라 등 이용촬영죄로 실형을 선고하는 비율 또한 낮았다.

특히 촬영물을 이용해 협박했으나 범행이 경미한 경우 감형해왔는데, 이는 일반적인 협박죄보다 그 피해가 더 크다는 점에서 모순된다는 지적이 있다. 협박의 강도가 심하더라도 형벌 가중 요소로 참작되지 않아왔다는 게 문제의 요지다.

더욱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대부분 외형상으로는 피해자의 자발적인 참여가 눈에 띄고 가해자와의 합의도 비교적 쉽게 되어 기존 양형 논리로 형사처벌하는 데 한계가 있다.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합의도 피해자가 아동청소년이거나 지적장애 여성일 경우, 피해자 본인의 진의와 다른 합의가 있을 수 있다. 한 지방검찰청 형사부 검사는 이와 관련해 본지 취재에 "디지털 성범죄를 저질러 놓고 합의액수를 높이 불러 돈으로 막으려는 사례도 여럿 있었다"고 전했다.

일반적으로는 각 디지털 성범죄마다 선고되는 양형의 편차가 상당하다는게 법조계 지적이다.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 법원이 성착취물 제작을 가볍게 처벌하는 게 이해하기 힘들다는 견해도 있었다.

디지털 성범죄의 본질은 가해자가 경제적 이유나 사회적 관계 등 피해자의 다양한 약점을 악용했고, 디지털 소통 등 실시간 전파되는 평판을 두려워하는 심리적 특성을 이용해 피해자를 협박하거나 길들였다는 점이다.

'법의 사각지대' 구멍은 어디?

가해자들은 플랫폼을 가리지 않는다. 트위터와 같은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비롯해 디스코드(게이머들이 주로 이용하는 채팅앱으로 전세계 사용자 3000만~5000만으로 추정), 페이스북과 연동되어 있는 인스타그램, 텀블러, 핀터레스트 등 가지각색이다.

문제는 임시 차단조치조차 이행하지 않는 해외 플랫폼에 대한 별도의 제재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현 정보통신망법 및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르면, 인터넷사업자는 불법촬영물 등 불법정보 유통을 금지하고 있지만 디지털 성범죄에 주로 쓰이는 해외 플랫폼은 해당되지 않는다.

   
▲ 본지가 각 지방검찰청과 경찰청을 두루 다니며 인터뷰한 결과, 디지털 성범죄는 피해자의 완전한 회복이 극도로 어렵지만 감형 감경 사유가 상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제주지방검찰청 전경이다. /사진=미디어펜
사적 검열 문제도 해외 플랫폼 제재에 대한 발목을 잡고 있지만, 현행 법상으로 자국 플랫폼이 아닌 경우 규제 집행이 어렵다. 가장 대표적인 n번방 사건에서 텔레그램이 주요 통로로 쓰인 배경은 본사 위치조차 알려져 있지 않고 각국 정부 요청에 쉽게 응답하지 않는 폐쇄적인 운영 특성 때문이었다.

테헤란로에 위치한 S모 IT보안업체 선임연구원인 백승환 씨(39)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관련법 개정으로 함정수사가 가능해졌으니 경찰이 사후 차단에만 신경 쓸게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사전 예방에 나서야 할 것"이라며 "업계 얘기를 들어보면 수사 노력 여하에 따라 적발 가능성이 확연히 달라진다"고 전했다.

본지 취재에 응한 경찰 사이버수사대 관계자는 "해외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사전적 조치의무 강화와 적극적인 규제가 필요하다"며 "해외 플랫폼 사업자가 삭제 차단하려고 해도 세계시간 시차도 있고 주말이나 휴일에 즉각 조치가 불가능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해외 플랫폼 규제를 대폭 강화하더라도 응할지 의문"이라며 "자의적인 정보 차단이 남용되거나 사적 자유를 침해하는 검열 문제가 여전할 뿐더러 "해외 플랫폼 사업자가 우리 정부 당국으로부터 의무를 부여 받은 후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때 단계별로 어떻게 할지 확정 지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완입법 현 주소는

디지털 성범죄는 그 경중 여부를 떠나 한번 일어나면 피해자가 완전히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보이지 않는 피해가 막심하다. 가해자가 법의 심판을 받더라도 이미 유출된 영상이나 이미지로 인해 대부분의 피해자는 평생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린다.

지난 20대 국회는 성착취물 처벌 대상과 수위를 강화한 법안들을 마지막 본회의에서 처리했지만, 그 바통을 이어 받은 21대 국회의 후속 입법이 필요하다.

우선 현행법에서는 아동청소년 성매수를 위한 성적 유인(Grooming·그루밍)을 처벌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아동청소년의 심리적 종속을 이용한 그루밍 성범죄에 대한 규정이 없다. 이로 인해 성적 그루밍의 정의나 범죄구성요건, 범위를 둘러싸고 논쟁이 있다. 이를 확정 짓고 그루밍 성범죄를 정확히 규정해야 한다.

피해의 핵심인 성착취물 발견 즉시 삭제하는 경우도 보완입법이 필요하다. 현재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물을 모니터링하거나 제 3자 등이 발견했을 때, 해당기관은 보호자나 가족 등의 신고나 요청 하에 삭제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해당기관에서 영상물이나 이미지를 발견했을 때, 보호자나 가족의 신고나 요청 없이도 삭제하도록 하는 입법안이 적극적인 대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디지털 성착취물을 접하거나 시도할 때 누구나 즉각 신고할 수 있도록 정보통신망 플랫폼 차원에서 24시간 신고체계를 연결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도록 관련법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가해자가 디지털 성착취물을 제작-거래-유포해서 얻는 수익을 원천적으로 박탈하는 것도 필요하다. 세부적으로는 가해자 불특정, 범인의 해외 도주, 사망 등 검사가 공소 제기할 수 없는 경우에도 범죄수익환수 대상으로 삼아 해당 수익을 박탈하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 보완입법으로, 잠입수사도 마찬가지다. 최근 개정한 현행 법은 단순히 가입 참여를 위장해 내부자로서 디지털 성범죄 현장을 들여다보는 것만 허용하고 있다. 이 외에도 수사관이 해킹이나 악성코드 등 기술 수단을 적극 활용해 다크웹상의 음란물 유통 범죄행위를 전면 감시할 수 있는 입법을 도입해야 한다.

디지털 성범죄의 근절을 위해서는 다양한 후속과제를 검토한 후 시급한 것부터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한다. 피해자의 눈물을 완전히 닦아주고 가해자들이 평생 발뻗고 잘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난 2일 열렸던 15차 공청회의 전문가 의견을 반영하고 관계기관 및 행정예고를 통한 추가 의견 수렴을 거쳐 12월 7일 열릴 제 106차 전체회의에서 최종안을 의결할 예정이다. 디지털 성범죄라는 악의 고리를 어떻게 끊어낼지 관심이 쏠린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