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초기부터 해외시장 개척 통해 건설회사 입지를 다져…래플즈 시티 싱가포르로 세계적인 건설회사 부상
건설산업은 국내총생산(GDP)의 15%를 차지하는 경제의 기둥이다. 건설업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발전과 궤를 같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마다의 성공 DNA장착한 국내 건설사들은 이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에서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본보에서는 건설 성공 DNA를 일깨운 주요 현장 및 사사(社史), 오너 일가 등의 스토리를 재조명해 시리즈로 소개한다.<편집자주>

[건설사 성공DNA-⑳쌍용건설(1)]초고층 기술력 앞세워 '해외건설 명가' 우뚝

[미디어펜=이동은 기자]쌍용건설은 전통적인 해외 건설명가로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샌즈, 두바이 에미리트타워호텔 등 해외에서 랜드마크 공사를 수차례 성공시키며 한국 건설의 기술력을 전세계에 알렸다. 국내에서는 해외에서 쌓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토목, 주택 시장에 진출하며 건설 역사를 쌓아올렸다.

   
▲ 쌍용건설 CI./사진=쌍용건설 제공


◆1977년 종합상사에서 건설사로 거듭나

쌍용건설의 모태는 쌍용그룹이다. 쌍용그룹은 우리나라 제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67~71년) 기간 건설업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는 모습에 건설회사 설립을 구상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고속도로·일반도로·항만·항공 등 교통 부문과 주택 부문에 투자가 집중되면서 대형 건설 프로젝트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상황이었다. 

성장가도를 달리던 쌍용에겐 기회였다. 계열사들의 공장과 자체 사옥 등 막대한 건설 물량을 필요로 하는 점도 건설사 설립에 힘을 실었다. 

우여곡절 끝인 지난 1977년 김석원 당시 쌍용그룹 회장은 건설업 진출 방침을 굳히고 종합상사였던 ㈜쌍용의 해외건설산업부와 쌍용양회의 건설부를 주축으로 건설회사 설립을 추진했다. 

1977년 8월 23일 창립총회에 이어 10월 13일 해외 건설업 면허를 취득, 10월 18일 법인등기를 마치면서 쌍용건설의 전신인 ‘쌍용종합건설주식회사’가 출범했다. 

◆‘래플즈 시티’ 성공 통해 세계적 건설사로 부상

쌍용건설은 창립초기부터 해외시장 개척을 통해 건설회사 입지를 다졌다. 매출 역시 해외사업이 국내보다 월등히 컸다. 중동시장 진출 초기 경험 부족으로 값비싼 대가를 치렀지만, 1986년 완공한 래플즈 시티 싱가포르 수주가 전환점이 됐다. 

   
▲ 싱가포르 래플즈 시티./사진=쌍용건설 제공


완공 당시 세계 최고층 호텔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래플즈 시티 싱가포르의 성공적 시공을 통해 쌍용건설은 세계적인 건설회사로 부상했다. 이후 현지에서 구축한 신뢰를 바탕으로 호라이즌 타워즈 콘도미니엄, 리앙 코트복합건물, 쿠스카덴 타워 등을 잇달아 수주했다. 래플즈 시티 싱가포르는 쌍용건설의 해외 사업 역량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계기로 작용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해외에서 쌓은 실적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국내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국내사업과 해외사업의 균형 발전이 필요하다는 당시 경영진의 판단 때문이었다. 

◆국내 토목 사업 강화 계기 '김포국제공항 확장 공사'

국내 사업 본격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규모 토목사업 확충이 절실했다. 하지만 당시 토목 공사는 관에서 진행한 시공실적 기준의 제한입찰 방식으로 발주됐다. 쌍용건설은 입찰 참여 기회조차 얻기 힘들었다. 

   
▲ 김포국제공항./사진=쌍용건설 제공


국내 토목사업 강화의 신호탄이 된 프로젝트는 '김포국제공항 확장 공사'였다. 폭 70m, 길이 3.2㎞의 제2활주로를 신설하고 기존 활주로 400m를 연장하기 위해 전 구간을 보강하는 것이 이 공사의 핵심이었다.

국내 토목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반드시 해당 프로젝트를 수주해야 한다는 판단에 김석준 당시 사장이 직접 나서 진두지휘했다. 마침내 1983년 8월 23일 수주에 성공, 1987년 12월 15일 성공적으로 준공했다. 쌍용건설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토목 부분의 역량을 괄목할 만한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워크아웃 속 탄생한 주택 브랜드 '쌍용 스윗닷홈'

국내 주택시장의 경우 1990년 7월 분당4차 아파트를 시작으로 일산, 평촌, 중동 등 수도권 1기 신도시 건설에 참여하며 기반을 확대해 나갔다. 신도시 건설 참여로 쌍용건설은 주택사업 전반에 대해 많은 경험을 축적했다.

각고의 노력으로 1995년 말 아파트 부문 주택사업 누계 총 수주액은 1조원을 돌파했고, 회사의 주요 사업 분야로 자리매김했다. 

쌍용건설의 국내 주택사업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1996년 분양한 울산 쌍용 아진4차 아파트 등의 미분양 사태는 자금 유동성에 부담으로 작용, 1999년 쌍용건설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워크아웃 상황에서도 쌍용건설은 포기하지 않았다. 분양사업의 활로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2000년 ‘아내의 손끝 하나로 모든 것이 가능한 21세기형 첨단형 아파트’라는 콘셉트의 ‘쌍용 스윗닷홈’(Sweet dot Home) 브랜를 론칭했다. 쌍용 스윗닷홈 브랜드는 2000년 6월 첫 분양한 부천 상동 아파트에 처음 적용됐다. 

쌍용건설은 워크아웃 시기를 국내 분양시장 체질 강화의 계기로 삼았다. 현장 마케팅 역량을 제고하고 틈새시장인 지방 대도시 거점 공략에 주력, 사업 입지를 다졌다. 

전사적인 노력으로 쌍용건설은 1999년 3월 2일 워크아웃에 들어선지 5년 8개월만인 지난 2004년 10월 18일 워크아웃 졸업을 선언했다. 이후 기존의 스윗닷홈 브랜드와 같이 사용되던 ‘예가’ 브랜드를 메인 브랜드로 정하며 국내 주택시장에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쌍용건설 관계자는 "예가는 예술과 집을 뜻하는 말로 단순한 주거 시설을 넘어선 예술적 문화 공간이라는 뜻과 함께 지적인 아름다움을 갖춘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며 "예가만의 명품 브랜드 전략과 차별화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잇달아 분양에 성공해 화제가 됐으며, 한국건축문화대상 등 다양한 수상 실적을 기록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이동은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