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시분리 매뉴얼 있었지만 또 비극…현장 전문성 '실종' 어떻게 키울까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정부가 양부모 학대로 세상을 떠난 '정인이 사건'을 계기로 뒤늦게 아동학대 대책을 내놨지만, 이미 제도적으로 즉시분리 매뉴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지 못한 사건이라 회의적인 평가가 많다.

사건을 구체적으로 파고들어가면 아동학대 조사 권한 분산에서 현장 전문성 실종까지, 사건 재발을 막기 어려운 구멍이 곳곳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아동학대 조사업무의 경우 지난해 10월 1일 부로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각 지자체로 이관했는데, 이것부터 문제다.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이 없는 시군구가 더 많기 때문이다.

   
▲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 정인 양이 안치된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추모 메시지와 꽃들이 놓여 있다./사진=연합뉴스
지난 수년간 여러차례 아동학대 신고를 해온 한 어린이집 원장 박모씨는 7일 본보 취재에 "전화해서 전담공무원을 바꿔달라고 하면 서로 토스하기 바쁘다"며 "관련법이 헷갈리고 신고하는 과정에서 영유아 및 아동학대 행위를 정확히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문의하고자 해도 이에 대해 속시원히 명료하게 설명해주는 공무원을 만나기 어렵다. 24시간 응급전화도 있다고 하는데 실제 대부분 운영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직접 담당공무원으로부터 사정을 청취해보니 또다른 시각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전문성을 축적하기 힘든 극한 업무 구조라는 평이다. 서울 한 자치구에서 아동학대 업무를 맡고 있는 공무원 A 씨는 6일 본보 취재에 솔직한 심경을 털어놨다.

A 씨는 "서류 뿐만 아니다. 행정 및 법적 조치 모두 해야 하는데 주말에 일해야 하는 조사는 기본 업무다. 잘 때에도 스마트폰을 옆에 끼고 자야 한다. 학대 신고는 밤낮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솔직히 관련 법조항을 숙지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부모에 의한 영유아-아동 학대는 경우에 따라 매우 다르다. 칼같이 떨어지지 않는 사건이 많다"며 "전담공무원이라 해도 교육 2~3시간 받고나면 끝인데, 정인이 사건처럼 일이라도 하나 크게 터지면 바로 징계를 먹거나 자리를 옮기게 되는데 전문성을 쌓을 시간이 나오기 힘들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싶어도 악으로 버티는 공무원도 있다. 하지만 일부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일부러 태업하는 등 인사이동만을 바라는 분도 있다고 들었다"고 언급했다.

한 경찰 관계자 또한 이날 본보 취재에 "어떻게 아이들을 살리느냐에 집중해야 한다. 현 입양제도의 허점이 문제가 아니라 위력을 행사할 수 있는 어른이 아이를 학대했다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동학대에 대해 처벌, 즉 형량을 강화하자는 입법이나 의견들이 있는데 그건 답이 아니다"며 "형량이 강화되면 재판부가 그 형량을 인정할 정도의 엄격한 증명 책임을 피해자측에게 요구하기 마련이다. 이에 따라 피해자 진술이 주 증거인 사건의 경우 대부분 불기소 처분 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정인이 사건의 핵심은 3번이나 학대 신고가 들어갔는데 경찰이 왜 그렇게 밖에 처리하지 못했냐는 것"이라며 "앞서 장애인 성폭력 사건도 대중 여론에 떠밀려 형량만 높여놨더니 불기소 처분이 대부분이다"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대안의 핵심은 아동인권 및 아동심리 지식, 관련 법률을 잘 아는 경찰을 전문적으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라며 "전문경찰에게 책임과 권한을 집중해 줘야 한다. 신고를 받은 전문경찰이 학대 사건을 인지할 경우 이미 잡혀있는 즉시분리 매뉴얼에 따라 잘 작동되는 현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선 경찰은 3교대 및 순환보직 근무가 기본이라 전문성을 키울 수 없는 실정"이라며 "아동 전문경찰이 취급해야 할 사건의 범위를 명확히 정해 책임감을 갖고 수사하는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 김창룡 경찰청장은 6일 긴급브리핑을 갖고 "엄정하고 철저한 진상조사를 바탕으로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 경찰의 아동학대 대응체계를 전면 쇄신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밝혔다./사진=연합뉴스

또다른 경찰 관계자는 본보 취재에 "과거 성폭력 수사처럼 광역청 단위에서 특별수사대를 설치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으로 본다"며 "다만 문제는 예산이다. 예산과 인원을 투입해서 특수대를 광역별로 만들만큼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서로 책임 떠넘기기 할 수 없도록 권한과 책임을 한데 모아야 한다"며 "보호기관과 공무원, 경찰이 각각 잘 할 수 있는 선에서 협력할 수 있도록 일선 현장의 얘기를 들었음 좋겠다"고 밝혔다.

여야는 '정인이 사건'을 계기로 아동학대 관련 법안을 쏟아내고 있지만 '사후약방문'이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향후 나올 대응 방안이 현장 목소리를 수용해 학대를 막는 실효성을 어디까지 확보할지 주목된다. '쉼터' 등 피해아동 수용능력 또한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충분히 마련할지도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