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관련·비밀 여부' 관건…개발정보 입수 경로·시기 '증거 필요'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현직 직원들의 투기 정황이 점입가경이다.

철저한 수사와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의 공분은 커져가고 있지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사실상 증거 인멸할 시간을 벌어준 수사 공백을 들며 범죄 사실관계를 입증하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다.

정부 합동조사단이 밝힌 1차 조사 대상자는 국토부 4500명, LH 9900명, 지방 공기업 3000명 등 2만 3000여명에 달한다. 조사 주체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를 위시한 국토부·금융위로, 일각에서는 셀프 조사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사건 특성상 신속하고 선제적인 압수수색이 반드시 필요했는데, 이미 지난 2일 의혹이 폭로된 후 8일 압수수색영장이 발부될 정도로 증거인멸에 충분한 시간(만 6일)이 주어졌다는 점이다.

압수수색을 하루 앞두고 LH 직원들이 밤새 야근하면서 본사 빌딩 대부분의 층을 밤 늦게까지 환히 밝히는 모습도 세간의 빈축을 샀다.

   
▲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옥. /사진=LH 제공
2일 의혹이 폭로된 후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사흘이 지난 5일 오후 LH 본사 및 임직원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수원지검 안산지청에 신청했고, 안산지청은 이날 저녁 곧장 법원에 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안산지원은 8일 저녁에야 영장을 발부했다.

경찰이 영장 신청 시기를 놓쳤을 뿐더러 법원이 영장을 늑장 발부해 피의자들에게 시간을 벌어줬다는 분석이다. 미공개 정보를 거래하는 과정에서 공직자들 간에 뇌물이나 뒷돈이 오갔을 가능성도 제기되는데, 이 경로를 잡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더 큰 문제는, LH를 비롯한 관련 공직자들 전원의 부동산 투기 여부를 입증하려면 첩첩산중이라는 점이다.

경찰은 의혹 대상자 13명에 한해 강제 수사에 착수했다. 합동조사단은 조사 대상자를 관계자 2만 3000명으로 한정해 전체 공직사회나 차명거래 가능성을 감안하면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배우자 및 직계 존비속을 고려하면 조사 대상은 10만 명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지만 가족에게서 개인정보동의서조차 받지 못했고, 이 또한 피의자가 지인 명의로 토지를 매입한 경우 수사망에서 빠진다. 전직 공직자에 대해선 관련 조사 및 처벌이 쉽지 않다.

지금까지 밝혀진 투기 정황을 보면, 직접 공공택지 보상업무를 다뤄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내용이다. 이들에 대한 관리 감독을 맡은 중앙정부 공직자도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다. 지역 특성, 토지 규모, 주변 여건에 관한 세부 규정은 LH의 보상담당 직원들이 직접 다루기 때문이다.

특히 3기 신도시에 LH 임직원들이 투자한 토지 중 98% 이상이 농지라고 밝혀졌지만, 농사를 짓는다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투기 목적 여부를 판별하기 쉽지 않다. 이와 관련해 사람이 아닌 땅을 전수 조사해야 한다는 법조계 지적도 나온다.

10일 본보 취재에 따르면, 복수의 도시계획·부동산 개발 전문가들은 '수사 성과' 전망에 대해 난색을 표했다.

LH 내부 개발정보를 입수한 경로·시기에 대한 증거가 필요한데, 전화 통화로 이를 전달했을 경우 서로가 말을 맞추면 내용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혹은 직접 만나서 얘기를 나눴을 경우 이를 알 도리가 없다는 설명이다.

특정정보 입수 경로를 확인했더라도, 그 다음 단계로 업무 관련성 및 업무상 비밀 여부를 입증해야 하는데 이 또한 난관이라는 지적이다.

문재인 정권은 검경 수사권 조정을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하면서 검찰 수사는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로 한정지었다.

이번 공직자 투기 사건에 대해서는 4급공무원·공기업 임원 이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검찰을 배제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부동산 투기 사건에 대해 노하우를 축적해온 검찰은 뒷짐 지고 경찰의 수사 결론을 기다리게 됐다.

정부 합동조사단은 수사가 아니라 조사를 할 뿐이다. 수사 성과를 책임질 경찰이 어디까지 파헤칠지, 어느 선까지 사건의 실체를 밝힐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