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등 배정 도입에도 계좌 쪼개기에 청약 증거금 많이 조달한 투자자 유리
[미디어펜=홍샛별 기자] SK바이오사이언스가 일반 공모주 청약에서 사상 최대 증거금인 63조6000억원 끌어모으며 기업공개(IPO) 시장의 역사를 새로 썼다. 올해부터는 균등 배분 방식이 새롭게 적용됐지만 시스템 미비에 따른 계좌 쪼개기 꼼수가 나타나며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결국 청약 증거금을 많이 조달하는 청약자가 더 많은 공모주를 배당받을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되면서 균등 배분 방식이 유명무실해진 거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 지난 9일 NH투자증권 명동WM센터에서 SK바이오사이언스 공모주청약을 위해 계좌개설 등을 상담하는 투자자들의 모습. /사진=NH투자증권 제공


11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 9~10일 이틀 동안 NH투자증권 등 6개 증권사에서 진행한 SK바이오사이언스(SK바사)의 일반 공모 결과 무려 63조6198억원의 청약 증거금이 몰렸다. 지난해 역대 최대 청약 증거금이 모였던 카카오게임즈(58조5543억원)의 기록을 뛰어넘은 수치다. 

대표 상장 주관사인 NH투자증권이 23조4000억원의 청약 증거금을 모아 1위를 기록했다. 경쟁률은 334.3대 1이다. 

나머지 증권사들의 청약 증거금과 경쟁률은 △한국투자증권 16조2110억원(371.54대1) △미래에셋대우 13조6196억원(326.33대1) △SK증권 3조4173억원(225.18대1) △삼성증권 4조2041억원(443.23대1) △하나금융투자 2조7013억원(284.79대1)으로 나타났다. 

이들 6개 증권사에서 총 239만8167개 계좌가 청약에 참여해 평균 청약 경쟁률은 335.4대 1을 기록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의 청약 열풍은 이미 예견됐다. 증시 대기자금인 투자자 예탁금이 67조원에 달하는 데다 앞서 공모에 나선 SK바이오팜, 카카오게임즈가 대흥행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청약 물량의 절반을 최소 증거금 이상을 낸 투자자들에게 균등하게 나누는 균등 배정 방식을 도입한 점도 호재로 작용했다. 

예상보다 더 뜨거운 청약 열기에 올해 새로 도입된 균등 배정 방식에 따르더라도 단 1주조차 받지 못하는 투자자도 나올 전망이다.

각 증권사는 배정 물량의 절반을 균등하게 배분하지만, 청약 계좌수가 균등 배정 수량을 넘어서면 추첨을 통해 배분하게 된다. 

실제 삼성증권과 하나금융투자에 들어온 청약 계좌 수는 각각 39만5290건, 20만9594건으로 균등 배정 물량(14만3438주)을 훌쩍 넘어섰다. 이들 증권사는 청약을 한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무작위 추첨을 거쳐 1주씩 배분한다.

나머지 4곳 증권사는 상황이 나은 편이다. NH투자증권의 경우 107만1438주를 균등 배정하는 데 64만6826건의 청약 계좌가 들어왔다. 균등 배정 물량은 1.64주다. 이 밖에 한국투자증권은 1.19주, 미래에셋대우는 1.31주, SK증권은 1.97주를 확보했다. 해당 4개 증권사들을 통해 청약한 투자자는 최소 한주씩은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당초 소액 투자자들의 공모주 참여 확대를 위해 마련된 균등 배정이지만 제도 미흡으로 이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균등 배정 방식 역시 청약증거금을 많이 조달할 수 있는 청약자일수록 더 많은 공모주를 받아갈 수 있게 됐다는 지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는 당초 균등 배정 방식을 도입하기로 결정하며 중복 청약을 금지하기로 했었다”면서 “그러나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으면서 소액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계좌 쪼개기가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번 청약에서도 1개 증권사에서 최소 청약금을 납입한 투자자 보다는 다수 증권사에서 중복 청약한 투자자가 더 많은 공모주를 받아갈 수 있다”면서 “일부 투자자는 보다 많은 공모주 배정을 위해 가족이나 친인척 명의의 계좌를 다수 동원하는 등 균등 배정 방식에서도 자본금의 차이에 따른 격차가 발생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이 같은 지적에 청약증거금 예치 업무를 수행하는 한국증권금융을 통해 별도 전산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지만 관련 법안의 처리가 미뤄지며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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