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수술·성범죄·인권침해 막아야 vs 불법의료 막으려다 소극적 방어진료
의료행위 특수성·개인정보 유출 '문제'…다음달 국회 보건복지위서 재논의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지난 23일 병원 수술실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자는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보건복지위는 이날 오전 9시부터 오후까지 해당 법안을 릴레이 심의했지만, 다음달 소위에서 계속 심사키로 결정했다. 여야 간 첨예한 입장 차만 확인며 재논의하기로 한 것이다.

이날 가장 큰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CCTV 설치를 의무화할 것인지 자율화할 것인지, 그리고 설치한다면 수술실 내부에 설치할지 (입구 등) 다른 위치에 설치할지 였다.

보건복지위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성주 의원은 법안심사소위 후 기자들을 만나 "여당 입장은 수술실 내부에 설치해야 하고 의무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야당은 수술실 내부보다 입구 쪽 설치와 의무 설치보다는 자율 설치에 대한 입장을 개진했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위 제1법안심사소위원장인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은 이날 기자들에게 "법안 목적을 달성하는 데 수술실 외부 설치가 좋을까 내부 설치가 좋을까 고민이 있다"며 "비용 문제나 개인정보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있다"고 전했다.

다만 여야는 이날 수술실 CCTV 촬영 조건으로 환자가 요구 및 동의할 때 촬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CCTV 영상 열람은 법원 등 공공기관의 요구가 있을 때에만 가능하도록 의견을 모았다. 법원 요구는 의료소송이 일어났을 경우다. 영상 촬영 자체는 외부 네트워크와 분리된 폐쇄회로형으로만 가능하다.

수술실 CCTV 설치, 왜 하자고 할까?

현재 이 논의와 관련해 일반 국민의 찬성 여론은 높다. 여론조사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최고 80% 이상이 수술실 CCTV 설치에 찬성 의견을 보이고 있다. 대리수술, 성범죄, 수술실 내 폭력 행위나 인권 침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 한 대형병원 수술실 앞에서 관계자들이 수술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4일 부산대병원 노조 등에 따르면, 부산대병원 수술실에서 의사가 간호사들을 향해 '수술용 칼' 등 날카로운 의료 도구를 던지고 폭언했다는 내부 고발이 불거졌다.

지난달 3차례 수술에서 A모 교수가 간호사들을 향해 수술용 칼을 던지고 초음파 기계도 바닥으로 집어 던졌다는 폭로인데, 노조는 수술실에 CCTV가 없어 증거를 쉽게 확보할 수 없다는 점을 교수가 노렸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굳이 수술 장면을 세밀하게 찍는게 아니라 수술실 전체를 조망하는 CCTV라도 있었다면 이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민주당은 수술실 CCTV에 대해 '의료사고 시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할 최소한의 장치'라는 입장이다. CCTV가 이미 각 병원 응급실에 모두 설치되어 있는 마당에 수술실은 안 되는 것인지 납득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한 민주당에서는 의료계가 주장하는 소극적, 방어적 진료 가능성에 대해 수술 메스를 잡은 의사의 직업의식을 비추어 보면 '억지 주장'이라는 말도 나온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및 한국소비자단체연합 등 환자들을 대변하는 시민사회는 CCTV 설치에 적극 찬성하는 입장이다. '의료 소비자를 보호하고 최소한의 알권리 확보를 위해 법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명쾌한 이유에서다.

전국 각지에서 암암리에 운영되는 '공장식' 병원들이 무자격자 대리수술이나 유령수술을 시행하고 있다는 건 의료계 일각의 공공연한 비밀이기도 하다. 이를 최대한 방지하기 위해 수술실 내 CCTV 설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미 국내 병원 전체 수술실의 60%에는 외부에 CCTV가 설치되어 있다. 수술실 내에 CCTV를 설치해야 한다는게 설치를 찬성하는 측 입장이다.

앞서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이에 대해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의료기록지 조작이나 병원 측의 조직적인 은폐가 벌어지는 일이 많았다"며 "CCTV 영상이 증거로 사용될 때 반드시 의료진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보지 않는다. 소송 분쟁을 조기에 종료시키는 역할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해외에서도 CCTV 설치를 의무화한 나라는 전무하다. 유럽에서는 입법 논의 자체가 없었고, 미국에서는 위스콘신주와 매사추세츠주에서 입법 시도가 있었으나 도입되지 않았다.

프랑스의 경우 의료 노동자들의 존엄성과 자율성을 존중하기 위해 근무 감독을 목적으로 하는 CCTV 설치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캐나다 또한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의무화한 법은 없다. 다만 '개인정보 수집량 제한' 및 '정보 주체의 동의 필요'라는 조건으로 제한해서 병원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고 있다.

의료계가 밝힌 '설치 반대' 이유는

수술실 실정을 잘 아는 의료계의 반대 여론은 매우 높다.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을 떠나 의료 행위의 특수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수술을 담당한 의사가 CCTV 촬영을 의식할 수밖에 없어 '상시 감시' 상태에 놓이게 된다는게 최대 맹점이다. 이를 의식할수록 환자의 목숨이 걸린 특정 수술에서 의사가 모든 경우의 수를 감안해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회의적인 전망이 높다.

수술을 직접 수행해야 하는 대한의사협회(의협)는 강력 반대 입장이다. 이필수 의협 회장은 이날 이른 아침부터 법안소위가 열리는 회의장을 방문해, 복지위 위원들에게 재차 반대 입장을 적극 전달하기도 했다.

의협은 "의료진을 상시 감시 상태에 둬 집중력 저하를 초래하고, 과도한 긴장을 유발해 의료 행위의 질적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며 "능동적 적극적이어야 할 수술이 의료진의 방어적 소극적 대처로 이어져 환자에게 심각한 위협을 끼칠 수 있고 결국 환자의 건강권이 침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료계 학술단체인 대한의학회 또한 CCTV 설치 의무화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지난 22일 의학회는 "수술실 CCTV는 의료인의 인격권과 직업 수행의 자유뿐만 아니라 환자의 사생활도 침해할 소지가 높다"며 "극히 소수의 무자격자에 의한 수술 및 대리수술 등이 발생하는 사건의 대응책으로 이들을 식별하기 위해 모든 수술실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건 대다수 의료인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하는 행위로, 환자와 의사 간 신뢰를 깨뜨리고 불신을 조장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한 정형외과 병원을 운영하는 김 모 원장(48)은 24일 본보 취재에 "환자 생명을 살리려고 노력한다는 의사도 사람"이라며 "CCTV의 가장 큰 맹점은 의료사고 소송에 쉽게 근거로 쓰일 거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환자는 제각각이고 수술 부위 컨디션은 더더욱 다른데, 책임 소재에 대한 추궁을 피하기 위해 모든 의사가 똑같이 메뉴얼 대로만 수술을 진행할 것"이라며 "이렇다 하더라도 의사가 태업을 했거나 적절히 수술하지 못했다고 제 3자가 판단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나만 해도 생명과 직결되는 바이탈은 아니지만 내 수술 행위가 생명과 직결될 경우 일어나는 긴장감과 고독감은 수술실에서의 의사를 가장 날카롭게 만든다"며 "수술은 전자제품 해체-조립 과정이 절대 아니고 사람 인체, 수술 부위라는 불확실성 앞에서 끊임없이 실시간으로 선택과 결정을 반복하는 극도로 난이도가 높은 과정"이라고 전했다.

이어 "수술실에서 리스크는 항상 있다"며 "그 리스크를 져가면서 어떻게 해야 환자의 생명을 살리고 수술 부위를 마무리할지 고민하는게 수술대에 오른 의사의 심정"이라고 덧붙였다.

30년 넘게 산부인과 전문의로 일해온 한 모 원장(67)은 본보 취재에 "수술에 집중해야 하는 집도의의 신경이 분산될 수밖에 없다"며 "모든 의사가 환자를 위한 수술이 아니라 의료사고에 걸리지 않도록 방어적으로 수술할게 뻔하다"고 밝혔다.

한 원장은 "사실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는 논쟁거리가 아니다"며 "엄연히 사적인 영역이고, 의사와 환자 양쪽중 한쪽이 반대하면 찍지 않는 것이다. 서로 합의하에 찍으면 문제될 일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바이탈쪽 의사 중 CCTV 의무화에 모멸감을 느껴 칼을 놓는 사례도 나올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환자들만 손해다. 믿고 의지할만한, 수술이 가능한 의사들이 점차 줄어들 것이다"고 전망했다.

이어 한 원장은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정부나 국회 등 정치권은 항상 환자와 의사를 싸움 붙이는 일만 하고 있다"며 "환자와 의사 사이를 이간질해 서로에 대한 신뢰 관계를 무너뜨리도록 하고 있다. 이번 CCTV 의무화 움직임도 그 일환으로 읽힌다"고 분석했다.

현재 여당은 "설문조사를 통해 국민의 80% 이상이 원하는 법안"이라며 강행할 움직임이다. 대리수술, 성범죄, 인권 침해라는 사례를 잡아내기 위해 모든 수술실에 CCTV 감시를 의무화하겠다는 발상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된다.

이번 법안은 여야 양측의 팽팽한 줄다리기 속에 심사가 3번째 연기됐다. 다음달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논의가 어떻게 이뤄질지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