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동적 스타일의 경형 SUV…침체된 경차 시장에 활력소 기대
국내시장 규모 한계상 소형 SUV와 판매간섭 가능성도
GGM 임단협 유예 풀리는 5년뒤 노조 강성화 '위기요인'
[미디어펜=김태우 기자]광주글로벌모터스(GGM)에서 위탁생산하는 현대자동차의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캐스퍼' 출시가 임박하면서 국내 자동차시장의 판도 변화가 예상된다. 차종의 증가에 따른 새로운 수요유입과 함께 생산구조의 변화를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성장세가 멈춘 국내 자동차 시장의 한계가 있고 기존 차종들과의 간섭을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특히 GGM의 '반값임금 체제'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 등은 위기요인으로 지목된다.

   
▲ GGM이 위탁생산하는 현대차 경형 SUV 캐스퍼. /사진=현대차 제공


현대차는 지난 1일 경형 SUV '캐스퍼(CASPER)'의 외장 디자인을 공개하며 시장의 기대를 모았다. 캐스퍼는 전장 3595mm, 전폭 1595mm로 기아의 모닝, 레이, 한국지엠의 스파크와 동일하게 경차 기준을 충족시켰다. 대신 전고는 1575mm로 모닝‧스파크(1485mm)보다 높여 SUV의 형태를 갖추도록 했다. 

배기량도 경차 기준에 맞춰 1000cc 미만으로 운영된다. 1.0 MPI 가솔린 엔진이 탑재된 기본 모델과 1.0 T-GDI가 탑재된 액티브 모델(터보 모델)로 구성된다.

이런 캐스퍼의 가장 큰 특징은 같은 경차이면서도 SUV스타일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가격과 연비, 실용성 외에 딱히 내세울 게 없었던 기존 경차들과 달리 캐스퍼는 소비자의 소유욕을 자극할 만한 외양을 갖췄다. 더구나 국내에서 높은 선호를 받는 SUV로 분류된다는 게 강점이다.

해외시장에서는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차급이었지만 국내에서는 실효성이 없고 인건비 등으로 가격경쟁력이 약하기 때문에 출시되지 못했다. 하지만 자동차 시장에서 SUV의 인기가 높아졌고 현대차의 외주로 인해 새로운 형태의 차량이 완성될 수 있게 된 것이다. 

가격도 경차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수준으로 책정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아직 캐스퍼의 가격을 공개하진 않았으나 기존 경차 중 가장 비싼 레이(1275만~1580만원)와 소형 SUV 중 가장 저렴한 베뉴(1689만~2236만원) 사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업계에서는 캐스퍼 기본형이 1400만~1500만원, 터보엔진을 장착한 액티브 모델이 1600만~1700만원 수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캐스퍼의 등장이 국내 시장에 무조건적인 긍정 요인만 가져다줄 것으로 예상할 수는 없다.

국내 자동차 시장은 사실상 성장을 멈췄다. 이미 국민 2명 당 1명꼴로 자동차를 보유한 상태에서 시장이 더 늘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처럼 한정된 시장에서 새로운 플레이어가 등장한다면 기존 수요를 흡수하게 되며 누군가는 판매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1000만원 중반의 예산을 계획하고 있는 소비자들에게 예전에는 모닝, 레이, 스파크에서 만족하거나 조금 더 무리해서 소형SUV나 준중형 세단을 선택해야 했다면 이제는 캐스퍼라는 새로운 대안이 생겼다. 

더욱이 구매 범위를 현대차 내부로만 놓고 본다면 베뉴를 구매할 소비자가 캐스퍼로 타깃을 바꾼다면 회사 입장에선 오히려 손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자동차 시장 상황상 새로운 차종이 기존 차종과 충돌 없이 파이만 늘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결국 시장 나눠먹기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국지엠이 현재 창원공장에서 생산 중인 스파크를 장기적으로 제너럴모터스(GM)의 차기 글로벌 CUV로 대체할 경우 경차 시장에서는 어느 정도 완충 작용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업계에서 가장 큰 관심을 갖는 부분은 바로 캐스퍼를 위탁생산하는 GGM이 계속해서 반값임금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지 여부다. 현대차가 지난 2002년 아토스 단종 이후 경차를 판매하지 않았던 것은 수익성을 맞출 수 없는 임금구조 때문이었다.

평균연봉이 9000만원대에 달하는 임금구조상 1000만원 내외의 경차를 팔아서는 도저히 수익을 낼 수 없었다. 심지어 경차보다 비싼 소형 세단 엑센트 역시 수익성 때문에 포기해야 했다.

연봉수준이 비슷한 기아 역시 같은 이유로 모닝과 레이를 자체적으로 생산하지 않고 협력사와 합작으로 설립한 동희오토에 위탁해 생산하고 있다.

그런 현대차가 다시 경차 부활을 결정한 것은 GGM의 이른바 '반값임금 체제' 덕이었다. 광주광역시가 최대주주, 현대차가 2대주주로 참여해 설립한 GGM은 평균 초임을 3500만원으로 완성차 업체에 비해 크게 낮춘 대신 광주시가 각종 복지 등을 제공하는 방식의 상생형 일자리로 출범했다.

   
▲ 광주글로벌모터스 정문. /사진=미디어펜


이 체제가 계속 유지된다면 현대차의 경차 라인업 운영도 순항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걸 확신할 수 없다.

광주시와 노동계는 GGM 출범 당시 '5년간 임금‧단체협약(임단협) 유예' 조항을 만들어 이 회사의 임금 안정성을 어느 정도 담보했다. 현대차가 캐스퍼 생산 위탁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으로 요구했던 것도 이 조항이라는 얘기도 들려온다.

하지만 그 이후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GGM 근로자들이 임단협 유예 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반값임금이나마 안정적 일자리를 구했다는 데 만족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기존 완성차 업체들과의 형평성을 거론하며 임금 대폭 인상을 요구할 수도 있다.

5년은 국내완성차 의 신차 라이프사이클과 같다. 캐스퍼의 다음세대 모델의 출시유무와도 연관이 깊다. 이 시점에 노조가 고임금을 요구하고, 현대차가 후속모델 투입 없이 위탁생산계약을 종료한다면 GGM은 노사 상생 모델이 아닌 최악의 실패 사례가 될 수밖에 없다.

원칙적으로 GGM은 독립적인 회사고, 현대차 말고도 다른 회사의 물량을 수주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국내완성차 공장들의 여유생산분이 남아있는 만큼 현대차 외의 다른 회사의 물량을 수주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특히 국내에 연고가 없는 해외 업체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GGM 근로자들이 민주노총 금속노조 등에 가입해 상급단체에 힘을 등에 업고 옥쇄파업을 벌이거나 법적 공방에 나설 수도 있다. 이미 완성차 업계는 사내하청 근로자들의 정규직화 요구와 함께 이뤄진 소송전과 정치권의 압박으로 큰 어려움을 겪은 사례가 있다.

사업을 진행할 때는 아무리 합법적이고 제도적으로 보장된 방식이었다고 해도 소송에서 법원 판결 한 번이면 모든 게 뒤집힐 수 있다는 점을 완성차 업체들은 뼈저리게 경험했다.

현대차는 이같은 점을 감안해 GGM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 단순 투자자로서의 지위를 강조하며 거리를 두고 있지만, 상황은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노동계의 사례를 볼 때 5년 뒤 임단협 유예 조항에서 풀린 GGM의 근로자들은 뜨거운 감자가 될 수 있다"며 "특히 별도의 오너가 있는 회사도 아니고 시장의 성향에 따라 불확실성이 큰 지자체가 최대주주라는 건 리스크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태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