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점유율이라는 좁은 시야가 만든 안타까운 결정
회수 시 사실상 주요노선 외항사 차지
[미디어펜=박규빈 기자]공정거래위원회가 또 국내 산업계와 항공업계가 우려해오던 우를 범하며 산업성장의 기회를 위기로 전환시켰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은 국내 항공사에서 글로벌 톱티어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메가 캐리어가 탄생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 작업이다. 

더욱이 양사가 합병해도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도록 하겠다는 약속이 있었기에 새로운 일자리 창출 등 메가 캐리어의 등장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는 시선도 많았다. 하지만 이런 기대를 공정위가 조건부 승인이라는 결정을 내리며 씁쓸한 뒤끝을 남겼다. 

   
▲ 대한항공-아시아나 기업결합 조건부 승인…운수권 반환 명령.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이번 양대 국적사간 통합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했던 지난 2020년 조원태 회장과 아시아나항공 채권단, 정부 등 관련자들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진 '빅딜'로 어려운 시기에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단비 같은 희망이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와 글로벌 항공산업 경쟁 심화 등 근본적인 경쟁력 제고 노력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만큼 더 절실한 작업으로 꼽혔다.

지난 20여년간 미국과 유럽 등을 중심으로 규모의 경제를 도모하기 위해 항공사 통폐합이 활발히 진행됐고, 인구 1억명 이상 국가와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에서 '1국가 1국적사 체제'로 재편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일본과 미국 등에서는 항공사 통합이 활발하게 진행 중인 것이 항공업계의 현실이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이번 빅딜이 공론화 되기 전인 지난 2019년 여객과 화물실적 기준 대한항공은 19위, 아시아나항공은 29위를 기록해왔다. 두 항공사의 운송량을 단순 합산하면 세계 7위권으로 순위가 상승하게 된다.

이 밖에도 국적사간 통합 시너지는 상당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허브공항인 인천공항 슬롯(항공기 이착륙 허용능력) 점유율 확대로 글로벌 항공사간 조인트벤처(JV) 확대, 신규 노선 개발, 해외 환승수요 유치 등 외형성장을 꿰할 수 있고, 노선 운영 합리화와 운영비 절감, 이자비용 축소 등의 시너지 효과로 수익성 제고도 예상됐다.

정부는 코로나19 장기화를 감안해 이번 인수를 신속하게 추진하기로 했다. 통합 과정과 통합 이후의 고용안정과 소비자 편익, 관계회사 기능 조정과 재편 등을 속도감 있게 완료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런 희망찬 새출발의 기회를 1년 동안 시간을 끌어온 공정위가 조건부 승인이라는 결론을 내놓으며 기대를 반감시키는 것도 모자라 해외 항공사에게 안방을 내줄 수도 있는 위기로 만들었다. 

지난 22일 공정위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을 조건부로 승인하며 메가 캐리어의 탄생에 한발 다가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앞으로 해결해야 될 문제들은 당초 아시아나항공 회생의 의미를 무색케 하는 결정이다. 

두 국적항공사가 하나가 되며 당초 기대했던 막강한 시너지 효과가 꺾이게 됐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공정위의 기준이 국내 항공 시장 점유율만 바라보고 있어서다.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항공사의 미래를 결정짓는 이번 빅딜을 국내 기준이라는 좁은 시야로 이 같은 결정을 내리며 글로벌 톱티어의 메가 캐리어 탄생에 초를 친 것이다.

앞서 업계와 전문가들은 항공 협정국 간 상호 자율 취항, 외항사와의 경쟁 등 업종 특수성을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해 왔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결과가 됐다. 

여타 제조업과 같이 국내 점유율만으로 결합을 제한할 경우 이번 딜이 '마이너스'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되는 형국을 공정위가 만들었다. 

공정위는 해당 노선 회수 후 국내 타 항공사에 재배분 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사실상 국내 항공사 중 장거리 노선을 소화할 수 있는 회사는 전무하다. 나머지 LCC는 단거리, 중거리 운항에 특화된 사업 모델을 가지고 있어 대형 항공사와 보유 기재 자체가 다르다.

결국 해당 노선은 외항사 몫이 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즉 공정성을 논하는 공정위가 나서서 외항사에 국내 노선을 독점할 수 있도록 상납한 결과를 만든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 출도착 장거리 노선 가격 통제가 불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도 나오고 있다. 

이미 한진해운 파산으로 고수익 주요 노선을 외국 선사가 차지해 국내 제조업이 해상 운임의 급등에 대한 타격을 입은 바 있지만 공정위가 발 벗고 나서 이 같은 우를 재현하고 있는 격이다. 

이에 조건 없는 승인을 기반으로 계획됐던 시너지 효과를 다시 계산해야 될 상황이다. 장거리 노선을 축소하게 될 경우 B787 드림라이너 중심으로 여객기단을 재편하려던 계획을 다시 짜야 하는 문제도 있다. 

또 공정위는 좌석 공급 축소와 운임 인상 금지를 못 밖은 만큼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의 정상화를 위해 인수했지만 한동안 이를 리스크를 감수해야 되는 결과를 만든 것이다. 

이에 따라 우려되는 점은 근로자들의 근무 여건 악화다. 앞서 언급했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결합은 구조조정 없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보였다. 하지만 수익은 줄고 잉여 인력이 늘어나는 만큼 당초 기대한 메가 캐리어의 시너지효과를 볼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항공업은 여타 다른 산업과 달리 국력과 직결되는 국가기간산업이다. 하지만 공정성이라는 틀에 밖힌 편협한 시선의 공정위는 퀀텀 점프가 가능한 항공업에 발목을 잡아버렸다. 나아가 국가차원에서 단행된 일자리 창출의 기회마저.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