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인회-구자경-구본무로 이어온 ‘고객 가치 경영’
바통 이어받은 구광모, '선택과 집중'으로 LG 이끌어
[미디어펜=조우현 기자]“지난 75년, LG의 여정에는 늘 한결같은 고객과 우리 LG인들의 도전이 있었다. 앞으로도 고객과 LG의 더 가치 있는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가자.”

   
▲ 1995년 10월 구본무 회장(왼쪽 두 번째)과 허창수 당시 LG전선 회장(세 번째)이 LG전자 평택공장을 찾아 라인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LG 제공

오는 27일 창립 75주년을 앞둔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지난 24일 사내 방송을 통해 이 같이 밝혔다. 구 회장이 언급한 ‘고객가치 경영’은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 시절부터 전해져온 LG의 경영 철학이다. 

LG의 뿌리는 1947년 1월 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인회 창업주는 그룹의 모태가 된 ‘락희화학공업사(LG화학 전신)’를 설립해 최초의 국산 화장품 ‘럭키크림’을 생산했다. 이후 플라스틱 사업과 정유 사업, 통신·전선 사업, 전기·전자 사업에 뛰어들어 대한민국 산업화의 초석을 다졌다.

   
▲ 구인회 회장이 1961년 국내 최초 국산화 자동전화기(모델명:GS-1)로 시험 통화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LG 제공

특히 그는 플라스틱 사업에 뛰어들며 “기업하는 사람으로서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손대지 못하는 사업을 착수해서 성공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보람 있고 자랑스러운 일인가 생각해 보라”며 특유의 기업가 정신을 발휘한다.

그가 출시한 국내 최초의 플라스틱 빗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물건을 받으려는 상인들이 연일 장사진을 이루는 것은 물론, 당시 이승만 건국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국산 기술로 만든 빗을 보고 받고 ‘나에게도 하나 줄 수 없느냐’고 말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였다.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는 1958년에 설립됐다. 금성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전자공업회사다. 1959년 ‘골드스타’라는 상표를 단 최초의 국산 라디오 제품을 출시했고, 이후 선풍기, 흑백TV, 냉장고, 에어컨 등 주요 가전제품들이 잇달아 생산한다.

모두 ‘고객 가치’를 실현한 결과다. 구인회 창업주는 “생산업자가 국민의 생활용품을 차질 없게 만들어내는 일도 애국하는 길이고 전쟁을 이기는 데 도움이 되는 길”이라는 일념으로 가전제품들의 최초 국산화를 이룩하며 국민생활에 ‘혁신’을 일으킨다. 

   
▲ 1947년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가 국내 최초로 생산한 화장품 '럭키크림'(윗줄 왼쪽), 1966년 4월 락희유지공업(현 LG생활건강)이 국내 최초로 생산한 합성세제 하이타이(윗줄 오른쪽), 금성사(현 LG전자)가 1959년 11월 국내 최초로 생산한 'GoldStar' 상표를 부착한 국산 라디오 'A-501(아랫줄 왼쪽)', 1966년 8월 금성사(현 LG전자)가 국내 최초로 생산한 19인치 흑백TV(아랫줄 오른쪽) /사진=LG 제공


구인회 창업주의 뒤를 이은 구자경 회장은 ‘LG를 대기업의 궤도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1970년 1월부터 1995년 2월까지 만 25년 동안 LG의 2대 회장으로 재임했다.

1950년 락희화학(LG의 모기업)에 입사한 구자경 회장은 20여 년간 현장에서 쌓은 내공을 토대로 회사를 성장시켰다. 그가 25년 간 회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LG의 매출은 260억 원에서 30조 원대로 늘었고, 종업원도 2만 명에서 10만 명으로 증가했다.

평소 그는 “생산 기업을 시작하면서 항상 마음에 품어온 생각은 우리 국민 생활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제품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는 마음으로 경영에 임했다. 이 역시 ‘고객 가치 경영’의 일환이다.

그는 1975년 구미 공단에 연산 50만 대의 대단위 TV 생산공장을 준공해 본격적인 컬러TV 생산을 시작했다. 1976년에는 냉장고, 공조기, 세탁기, 엘리베이터, 컴프레서 등의 생산시설이 포함 된 종합 전자기기 공장인 창원공장을 건립했다. 

화학분야에서는 1970년대 울산에 하이타이, 화장비누, PVC 파이프, DOP, 솔비톨 등 8개의 공장을 잇달아 건설하며 종합 화학회사로의 기틀을 다진다. 1980년대 초반에는 충북 청주에 치약, 칫솔, 모노륨, 액체세제 등을 생산하는 생활용품 종합공장인 럭키 청주공장을 짓는다. 

   
▲ 1976년 1월, 구자경 회장(왼쪽 앞줄)이 LG 최초의 자체 사옥인 럭키빌딩(현 메트로타워)현판식을 하고 있다 /사진=LG 제공

이후 1995년 2월, 구자경 회장이 은퇴하면서 구본무 회장이 LG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구본무 회장은 취임과 함께 그룹 명칭을 럭키금성에서 LG로 바꿨다. 구본무 회장은 구인회 창업주와 부친인 구자경 회장이 다져 놓은 전자·화학·통신 사업을 글로벌 반열에 올려놓았다.

LG는 구본무 회장 재임 기간인 20여년 동안 5배의 외형적 성장을 기록했다. 1994년 말 30조 원이던 그룹 매출이 2017년 기준 약 160조 원에 달한다. 이는 GS, LS, LIG 그룹 등을 계열 분리하면서도 얻어낸 성과다. 

전문경영인이 마음껏 실력 발휘를 할 수 있도록 만든 것도 구본무 회장의 업적 중 하나다. ‘고졸 신화’, ‘샐러리맨의 우상’으로 잘 알려진 조성진 전 LG전자 부회장도 구본무 회장 시절 발탁된 인재다.

구 회장은 타계하기 전까지도 자동차부품, 에너지 등 신성장동력 발굴에 힘쓰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2015년 신년사에서 “LG만의 차별화된 방식으로 시장을 선도하고 철저한 미래 준비로 사업 기회를 잡는다면 거대한 파도가 덮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또 마곡산업단지에 4조원을 투자,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인 LG사이언스파크를 건립했다. 

지난 2018년 6월 취임한 구광모 회장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기업을 이끌고 있다. 그는 블록체인 등 신성장 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반면, 수익성과 성장 가능성이 부진한 스마트폰과 태양광 사업은 과감히 정리했다. 또 자회사 13곳도 매각‧청산하거나 합병해 몸집을 줄이고 있다. 

   
▲ 1995년 2월, 회장 이취임식에서 구자경 회장(왼쪽)이 구본무 회장에게 LG 깃발을 전달하는 모습 /사진=LG 제공

한편, LG는 창립 75주년을 앞두고 사내방송 영상을 제작했다. 영상은 총 7분 분량으로, LG의 도전과 혁신, 고객 감동을 이뤄낸 40여 개의 주요 순간들로 구성됐다. 

또 LG그룹의 전신인 ‘락희화학공업사’가 설립된 1947년에 태어난 LG화학퇴임 임원부터 ‘고졸신화’로 알려진 조성진 전 LG전자 부회장, 2019년 외부에서 영입된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이 직접 출연해 LG가 국내 최초로 생산한 화장품, 라디오, 냉장고 등을 소개하는 등 LG의 여정을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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