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탄소국경제도 비롯한 무역장벽 설립…투자비용·감축수단 부족 속 탄소중립 이행 난항
[미디어펜=나광호 기자]국제유가 및 원자재값 인상 등으로 국내 제조업체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가운데 탄소중립에 따른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배출권거래제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 346개사 중 91.6%가 탄소중립 목표를 수립했다. 이 중 2050년까지 달성하겠다는 기업이 76.3%로 가장 많았고, 2030년이라고 답한 비중은 9.5%로 집계됐다.

하지만 실제로 탄소중립 이행사업을 추진 중인 기업은 26.3%에 그친 반면, 추진 계획이 없다는 기업은 47.4%에 달했다.

   
▲ (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포스코 포항제철소,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동국제강 당진공장, 세아제강 포항공장. /사진=각 사

특히 투자 비용 부족이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SK이노베이션이 울산 컴플렉스(CLX)에서 운용하던 벙커씨 보일러 8기를 액화천연가스(LNG)로 교체하고, 질소산화물(NOx) 저감을 위한 설비를 구축하는데 투입된 비용은 700억원에 달했다.

호주 바로사 지역에서 추진되고 있는 가스전의 경우 탄소 포집 및 저장(CCS) 기술로 온실가스 배출량 16%를 줄이기 위해 16억달러(약 2조원) 상당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응답기업의 83.2%가 정부 자금 활용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기존 설비 개선과 신규 감축 시설 조성 및 감축 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보조금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삼성전자·현대차를 비롯한 기업들이 잇따라 RE100에 가입하고 있으나, 제주지역을 중심으로 태양광·풍력발전 설비에 대한 출력제한이 꾸준히 이뤄지는 등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끌어올리기 어렵다는 점도 언급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제도(CBAM) 등 탄소중립을 명분으로 하는 무역장벽이 확산되는 것도 우려 사항으로 꼽힌다. EU 의회가 철강·전력·비료·알루미늄·시멘트에 이어 유기화학품·플라스틱·수소를 비롯한 품목을 CBAM에 추가하는 수정안을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 26일 서울 세종대로 대한상의회관에서 열린 '글로벌 탄소 무역장벽 현황과 과제 세미나'에서 안정혜 율촌 변호사(오른쪽에서 첫번째)가 발언하고 있다./사진=대한상공회의소 제공

안정혜 율촌 변호사는 이날 대한상공회의소와 산업통상자원부가 개최한 세미나에서 "최근 미국은 기후변화 대응뿐만 아니라 중국 견제를 위해 EU·영국·일본 등과 협력, 글로벌 지속가능 철강협정(GSSA)을 진행하는 등 철강 및 알루미늄 분야 탄소 무역장벽 정책을 급속히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달 15일 CBAM 입법안이 EU 이사회에서 합의됐다"면서 "우리나라의 대EU 철강 수출량은 세계 6위로, CBAM이 이행될 경우 피해가 우려되는 만큼 우리 기업들의 불이익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 수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신호정 한국생산기술원 국가청정생산지원센터 실장도 "글로벌 대기업들이 원료·부품 공급기업을 대상으로 '탄소발자국 인증'을 요구하고 있다"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상장기업의 탄소 배출량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규제안을 마련하는 등 글로벌 탄소 장벽이 다양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산업계가 2018년 기준 연간 2억6000만톤 규모의 탄소를 배출하고 있으나, 생산력 등을 고려하면 높은 수준으로 볼 수 없다"면서도 "정부차원의 지원을 등에 업은 저탄소 관련 연구개발(R&D) 및 설비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 수출경쟁력 확보가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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