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 산업 규모가 제조사 앞질러
다양한 제조사 고객사 유치 가능
부품 넘어 '생산 대행'으로 영토확장
[미디어펜=김태우 기자]전기차 시대가 도래하며 IT분야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고 이를 활용한 전기차들의 등장이 예고돼 있지만 직접적인 완성차를 제작해 판매하는 곳은 등장하지 않고 있다. 

전기모터와 배터리 효율성을 누구보다 잘 다루는 IT업체들이지만 직접적인 사업진출을 선언하는 곳은 없다.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자동차 전장분야를 꼽고 있는 IT기업들이 많아지고 있어도 직접 자동차를 제작하지 않는 것은 부품산업의 규모가 더 크기 때문이다. 

   
▲ 현대자동차 전기차 브랜드 아이오닉의 라인업 티저이미지. /사진=현대차 제공


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올해 초 LG전자와 삼성전자는 각자의 방식으로 자동차 전장산업을 통해 지속가능한 미래먹거리 창출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자동차에서 전자장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고 있고,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등으로 세대교체 될 것으로 전망되며 IT분야의 기술이 필요해졌기 땜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직접적인 완성차 제작에는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지난 1995년 삼성자동차가 출범했다. 일본 닛산 규슈 공장의 설계도를 가져와 부산 신호공단에 생산공장을 지었다. 설계도가 동일하다보니 심지어 화장실 위치마저 닛산공장과 같았다.

대형트럭에 이어 '야무진'이라는 1톤 트럭을 내놓더니 계획대로 승용차 시장에 뛰어들었다. 출범 3년여 만인 1998년 3월, 마침내 첫 양산 모델인 SM5 1세대가 등장했다.

시장 초기 제품경쟁력은 단박에 현대차를 앞질렀다. 하지만 출시와 동시에 IMF 외환위기가 몰아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결국, 2000년 9월 프랑스 르노에 회사를 매각했다.

이후 산업계는 삼성그룹의 완성차 시장 재진출 여부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자동차광으로 알려진 고(故) 이건희 회장 역시 적잖은 미련이 있었다. 그럼에도 삼성그룹은 삼성자동차를 매각한 이후 이제껏 단 한 번도 차 시장 재진출을 고려하지 않았다.

상황은 LG그룹도 비슷하다. LG그룹의 전기차 기술력은 미국 제네럴모터스(GM)의 볼트EV를 만들어 낸 곳이다. 에너지원부터 차체까지 LG의 기술력이 안들어간 곳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만큼 기술력에서는 충분히 전기차를 제작해 판매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들은 자동차를 직접 제작해 판매하지 않는다. 이유는 하나, 자동차 산업에 제작사로 뛰어드는 것보다 뛰어난 기술력을 앞세워 핵심 전장부품 공급사로 남아있는 게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21세기 글로벌 자동차 부품사는 웬만한 완성차 제조사보다 규모가 더 크다.

삼성그룹은 2016년 자동차 전장부품업체 하만을 80억 달러에 인수했다. 우리 돈 약 9조 4000억 원이라는 대형 M&A였다.

자동차 공조장치 분야의 글로벌 톱 기업인 한온시스템(옛 한라공조)은 2018년 세계 3위 자동차 부품사인 마그나 인터내셔널의 유압 제어 사업부를 인수했다. 인수금액만 12억3000만 달러, 우리 돈 1조4000억 원에 달했다.

이를 고려하면 부품사 또는 공급사의 규모들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그만큼 완성차 부품업계의 규모와 자금력은 웬만한 제조사를 가볍게 앞서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막대한 자금력과 경영능력, 체계화된 시스템,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췄음에도 결코 완성차 회사 인수·합병에 뛰어들지 않는다. 자동차 부품사가 자동차 제조사를 인수하면 남아있는 고객사와 공급계약이 끊어질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동차 대형 부품사의 경우 단순한 부품공급 차원을 넘어 생산 대행 체제를 갖추기도 한다.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최적의 대안이기도 하다.

캐나다의 자동차 부품사 마그나는 전 세계 23개국에 생산설비가 있다. 이곳에서 생산한 자동차 부품을 사실상 글로벌 주요 완성차 제조사 전체에 납품하고 있다.

마그나는 오스트리아에 그라츠(Graz) 공장을 두고 이곳에서 완성차를 대신 생산하기도 한다.

한때 미국 크라이슬러의 유럽 수출 버전(일부 디젤모델)은 마그나가 이곳 공장에서 대신 생산해 유럽으로 보냈다. 혀를 내두를만한 조립 기술력을 인정받으면서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의 초호화 SUV를 대신 생산하기도 했다.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당장 현대차그룹의 부품계열사 현대모비스도 미국 현지에서 생산 대행을 십수 년 째 이어오고 있다. 지프 랭글러의 픽업 모델의 언더보디는 현대모비스가 생산한다. 이를 모듈로 만들어 통째로 납품한다.

이처럼 자금력과 규모가 넉넉한 자동차 부품사들이 제조사 인수전과 철저하게 담을 쌓는다. 경영권과 무관한 재무적 투자자(FI)조차 거부한다.

자칫 자동차 제조사 하나를 인수하려다 공급처 수백 곳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자동차 분야에서 완성차를 제작해 판매하지 않고 부품을 공급하는 업체로 다양한 완성차 업체를 지원하는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자동차 산업에 직접 진출을 할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들이 부품사로서 남아있는 이유는 이윤이 더 많이 남는 것도 있지만 신생브랜드로서의 리스크와 인프라 구축과 같은 기반을 만드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며 "단순 판매에서 끝나지 않고 A/S에 대한 책임이 동반되기 때문에 다방면으로 고려해도 전장 부품사로 활약하는 것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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