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사용 후 배터리 검사부터 재사용까지
[제주도/미디어펜=김태우 기자]화창한 봄날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제주도의 한라산 자락. 녹색의 푸르름이 보여주듯 2050년 탄소제로를 목표로 하고 있는 제주도다. 굽이치는 산길을 따라 이국적인 풍경을 달리다 보면 산 중턱에 제주테크노파크가 자리해있다. 녹색의 자연과는 조금 차이가 있어보이지만 이곳에서는 제주도를 탄소제로 섬으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연구와 실증사업이 진행중이다. 

제주테크노파크에서 가장 관심있게 지켜볼 곳은 '제주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다. 이곳의 주된 업무는 수명이 다한 전기차 배터리의 인생 2막을 준비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 지난 4일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에 전시된 전기차에서 추출한 배터리 모듈이 전시돼 있다. /사진=미디어펜

제주테크노파크가 지난 2019년 개소해 운영중인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는 제주도에서 발생한 대부분의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를 수집해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중이다. 

지난 4일 제주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에 방문했다. 면적 2457㎡(743평)의 산업화센터에는 입구서부터 폐배터리가 빽빽하게 쌓여 있었다. 방문 당시 회수된 전기차 배터리는 약 250개 정도로, 현재 마련된 저장공간을 대부분 채워져 있었다. 

이곳에서는 폐배터리 팩을 모듈 형태로 분리한 뒤 성능을 테스트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용 후 배터리를 수거하고 수거한 배터리 성능에 대해 각종 검사, 등급 분류 등을 실시한 뒤 상태별로 활용 분야를 발굴해 재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사용 후 전기차 배터리 전주기 체계'를 구축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곳이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다.

센터에 따르면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전기차 시장으로 인해 국내에서 전기차를 사용한 뒤 발생하는 배터리가 2030년에 약 20만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해 제주도에서 발생하는 폐배터리 수도 2만1160개 수준에 이를 전망이다.

이처럼 늘어나고 있는 전기차 사용 후 폐배터리는 그냥 버려지는 게 아니라 70∼80%가 재사용되거나 재활용돼 5∼10년 가량을 쓸 수 있다는 게 이동훈 에너지융합센터 활용기술개발팀장의 설명이다.

센터에서는 폐차한 전기차에서 배터리를 떼어내 일단 팩 자체로 다시 재사용할 수 있는지 성능평가를 한다. 성능평가는 잔존가치, 환경, 안전성, 신뢰성 등과 관련해 다양하게 평가가 이뤄진다.

이 단계에서 재사용될 경우 전력을 저장해 사용할 수 있는 신재생에너지 연계 에너지저장장치(ESS)나 양식장 무정전전원장치(UPS) 등 중대형 ESS로 활용된다.

만약 팩 그대로 재사용하기 어렵다면 다시 더 작은 단위인 모듈 단위로 분해한 뒤 성능평가를 실시해 일부 문제가 있는 모듈을 빼내는 식으로 재사용한다. 그러면 골프카트나 스쿠터, 휠체어 배터리, 가정용·가로등 ESS 등 소형 ESS로 폐배터리의 인생 2막이 열린다.

배터리의 열화가 심해 이 방법을 활용할 수 없을 때는 코발트, 니켈, 구리, 리튬 등 소재를 추출해 재활용하는 방법을 적용한다.

   
▲ 제주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내 사용후 폐배터리 보관 공간에서 이동훈 제주테크노파크 활용기술팀장이 사용후 배터리의 성능 평가 전반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한국자동차기자협회
   
▲ 제주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에서 배터리 모듈의 잔존가치를 검사하고 있다. /사진=한국자동차기자협회

이처럼 재생되는 폐배터리는 각종 크기의 ESS부터 전기선박, 소형 모빌리티, 농기계 등까지 다양하게 활용돼 자원 선순환과 비용 절감에 기여할 수 있다.

다만,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이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마다 다른 까닭에 발생하는 비용 문제가 있다고 한다.

이 팀장은 "배터리를 재사용하기 위해 BMS를 새롭게 개발하는 비용이 너무 많다"며 "이는 제조사가 BMS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토로했다. 

배터리를 재활용함으로써 얻는 이익보다 BMS개발에 따르는 비용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다른 제조사들이 만든 BMS를 통합해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게 이 팀장의 제언이다.

배터리 재사용과 관련한 전반적 시스템 구축도 요구된다. 현행법에 따라 제주도에선 폐배터리를 내륙에서 반입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이 팀장은 "사용 후 배터리의 안전성 확보와 지역 내 활용, 다른 지역 반출을 위해 평가할 수 있는 기준과 이를 수행하는 기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는 오는 12월까지 총 70여종의 활용장비를 구축하고 2024년까지 전기차 사용 후 배터리를 활용해 개발한 제품의 시험인증과 신뢰성 평가를 위해 12종의 장비를 추가로 더 들여올 계획이다. 이를 통해 향후 제주에서 1차산업, 관광산업, 재생에너지 연계산업 등 다양한 분야로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테크노파크는 자체적으로 전기차 사용 후 배터리를 활용한 기술지원, 제품개발 지원 등도 추진해 지역 내 전기차 사용 후 배터리 핵심 기업 발굴, 육성 등에 나설 예정이다.

하지만 이처럼 폐배터리의 재활용이 순기능에 핵심 역할을 할 수 있음에도 아직 안전성 평가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임시기준안으로 운영되고 있고 국제표준도 아직 없는 상황이라는 게 이 팀장의 설명이다. 서둘러 기준이 마련돼야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제주도와 제주테크노파크는 전기차 사용 후 배터리 인증시험 대행, 사용 후 배터리 성능·안전성 검사 기준 제도개선 등을 정부 측에 건의하고 있다.

   
▲ 모듈검사를 기다리고 있는 폐배터리. /사진=미디어펜
   
▲ 28개의 전기차 배터리팩을 재활용한 ESS(에너지저장장치)는 전기차 충전 등에 활용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또 규정상 폐배터리를 내륙으로 실어나를 수 없다는 부분도 아쉬운 대목이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전기차가 많은 제주도에서 발생하는 폐배터리를 육지로 보내 재활용하도록 할 수 없어 일단 센터에서 보관하고 있지만 향후 발생량이 늘어날 경우 포화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에 따르면, 국내 전기차 사용 후 배터리는 연평균 39% 증가해 2030년에는 20만개 가량 발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중 10%가량인 2만여개의 배터리가 제주도에서 발생될 것으로 예측된다.

배터리를 다른 지역으로 반출하기 위해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는 것도 시급하다.

이 팀장은 "폐기물관리법의 적용을 받다보니 해상·항공상 운송기준이 없어 육지로 나갈 수가 없다"며 "제주도에서 발생한 배터리는 제주테크노파크로 올 수밖에 없는 만큼 시설증대도 고민이다. 또 육상·해상 운송기준도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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