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윤 대통령 거친 입, 누군가 책임져야" 맹폭에 한 총리 "어떻게 외교참사 될 수 있나"
대통령실 공식입장 "큰 의미 부여하는게 적절치 않다"…'정쟁 발발' 책임질 참모 찾을 수 없나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무대 위에서 공적으로 말한 것도 아니고 지나가는 말로 얘기한 것을 누가 어떻게 녹음했는지 모르지만 그 진위 여부도 사실은 판명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적 발언에 대해 외교적 성과로 연결시키는 것은 대단히 적절치 않다. 어떻게 해서든 대한민국 국익을 위해 지금 이렇게 힘든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데, 그런 일로 외교 참사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유감스럽다."

22일(현지시간) 뉴욕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 논란에 대해 밝힌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의 답변이야말로 기자가 듣기 유감스러웠다. 현 상황을 타개하기에 적절한 입장인지 의문이 들었고, 대통령실 외교라인에서 출구전략을 생각하고 있는지 의심케 하는 발언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 '글로벌 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 참석 후 회의장을 나오면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관련해 미국 의회를 겨냥한 발언을 내뱉었다.

지나가는 길에 예기치 않게 포착된 영상에서 윤 대통령은 "(미)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했다.

동행한 참모진과의 대화 속에 불쑥 나온 사적 발언은 맞지만, 그것이 포착된 장소와 타이밍이 문제였다.

   
▲ 윤석열 대통령이 9월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7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에 앞서 박진 외교부 장관(가운데),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오른쪽)과 함께 논의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해당 회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최한 자리로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비롯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등 각국 정상과 빌 게이츠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 이사장까지 참석했다.

곳곳에 카메라가 포진해 있고 어디서 어떻게 찍힐지 모르는 공적인 공간이었지만, 윤 대통령은 여기를 나오면서 불쑥 본심을 말한 것이다.

해당 발언 자체는 누구나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다. 행사 주최자인 바이든 대통령이 아니라 미 입법부를 겨냥한 평가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자신의 호텔방이나 전용차 안에서 참모진과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수위다.

하지만 그런 얘기를 기자들이 무수히 포진해 있는 공적인 장소 안을 헤집고 나가다가 꺼냈다는 윤 대통령의 '방심' 자체가 문제다.

이 발언이 공개되면서 이날 행사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윤 대통령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관련 의제에 대해 논의했다는 사실은 묻혀버렸다.

가뜩이나 이번 해외순방은 여러모로 질타를 받아왔다.

한일정상회담이 공식 합의되기 전 섣불리 발표해서 일본측의 홀대 끝에 간신히 약식회담 형식으로 성사된 기시다 총리와의 회동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일주일 넘게 한국의 모든 언론이 주목한 가운데 대통령실은 공식 언급을 아꼈고, 일본 언론에서는 온통 부정적인 관측만 흘러나왔다. 결국 기시다 총리가 행사 관계로 머물고 있는 빌딩(주유엔 일본대표부가 위치한)에 윤 대통령이 찾아가서 30분간 만나는 것으로 끝났다.

보통 양국 정상회담에는 정해진 룰이 있다. 암묵적인 가이드라인이다. 양측 합의 하에 회담 내용과 의제, 형식을 차례대로 공개하지만 이번 한일정상회담은 그렇지 않았다.

   
▲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9월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한 컨퍼런스 빌딩에서 한일 정상 약식회담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먼저 발표하고 나섰고, 일본정부 측에서는 이를 부인하는 소식만 확인됐다. (오프더레코드를 전제한) 일본측 관계자 발로 "김태효 차장이 조율 없이 너무 치고 나간다"는 냉철한 평가까지 돌았다.

김 차장 발표 후 대통령실은 이번 해외순방 기간 내내 한일정상회담 성사 여부와 그 내용을 묻는 기자들 등쌀에 노코멘트로 일관했을 정도였다. 철저히 비공개로 일관했고 한일회담 4시간전 열린 브리핑에서도 회담 여부에 대해 확인해주지 않고, 회담 시작 2분뒤 공지했다.

당초 의제로 예상됐던 징용 배상 문제는 이번 회담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고 "양 정상은 현안을 해결해 양국관계를 개선할 필요성에 공감하고 이를 위해 외교 당국간 대화를 가속화할 것을 외교 당국에 지시하는 동시에 계속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는 원론적인 얘기만 오간 것으로 확인됐다.

어차피 일은 터졌고 어떻게 덮고 헤쳐나가느냐만 남았다. 원인은 윤 대통령 자신에서부터 대통령실 핵심 외교라인에 이르기까지 걸쳐 있다.

외교라인의 전면적인 사퇴 외에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의 사적 실언이 정점을 찍었지만 디테일에서 기본적인 룰을 지키지 않았다는 외교상 난맥도 드러났다.

이전 정부의 외교 참사와 비교해서 별 것 아니냐는 반론도 있지만, 문재인 정권 교체라는 국민적 여망을 담아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달라야 한다. 외교에서의 아마추어리즘은 치명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