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1월 13일 시작된 삼성전자 역사
전자제품 회사에서 반도체 기업으로 우뚝
[미디어펜=조우현 기자]창립 53주기를 맞은 삼성전자의 발전 역사에 관심이 모아진다. 1969년 이병철 선대 회장이 ‘삼성전자공업’을 설립한 것으로 시작된 삼성전자는 1973년 반도체 기업 인수를 기점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게 됐다.

올해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승진으로 3세 경영이 확정 되면서 보다 의미 있는 창립일이 됐지만, 이태원 참사 여파로 창립 행사가 축소됐다. 별도의 취임식 없이 회장 업무를 시작한 이 회장도 별다른 메시지를 내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 1980년대부터 삼성전자는 반도체, 컴퓨터 등 산업용 제품에 주력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특히 1982년 가을에 창립한 삼성반도체통신은 현재 전 세계 시장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삼성의 신화를 열게 해준 중대한 시작이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삼성 사옥. /사진=미디어펜

1961년 1월 13일, 삼성전자공업 설립

삼성을 창업한 이병철 선대회장은 “1970년대 삼성의 사업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부가가치가 높은 전자기기 산업과 중화학 공업의 진출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병철은 1960년대 후반, 우리나라 전자 사업이 외국 부품을 도입해 그것을 조립하는 초보적 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파악한다. 그는 “(한국 제품은) 품질이 조악했고 가격도 엄청나게 비쌌다”며 이대로라면 기술혁신과 대량생산에 의한 전자제품의 대중화가 요원하다고 판단했다.

삼성이 전자 산업에 진출해 국내에서 전자제품의 대중화를 촉진하고, 수출전략상품으로 육성하는 선도적 역할을 해보자고 결심한 것이다.

그러나 이병철의 결심에 업계가 시끄러워졌다. 이병철은 당시 상황을 “삼성이 진출하면 한국의 전자업계는 다 망한다고, 기존 메이커는 물론, 심지어 국회의원까지 동원해 새로 시작하는 전자산업의 저지운동을 맹렬히 전개했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정부의 허가 절차가 지지부진했다. 이에 이병철은 직접 박정희 대통령을 찾아가 전자산업의 장래성을 설명하고, 이것이 국가적 사업이 돼야 한다고 설득한 끝에 1969년 1월 13일 삼성전자공업을 설립할 수 있게 됐다.

   
▲ 1985년 5월 21일 삼성반도체통신 기흥 반도체 2라인 준공식에서 고 이병철 선대회장(오른쪽에서 다섯 번째)과 당시 고 이건희 삼성그룹 부회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제막 줄을 당기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전자제품 회사에서 글로벌 반도체 기업으로 우뚝

이병철은 “삼성의 참여가 한국의 전자산업에 어떤 자극과 활력을 주게 됐는지 새삼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라며 자부심을 표했다. 

삼성전자는 창립 9년만인 1978년 흑백텔레비전 2백만 대를 생산해 일본 마쓰시타전기를 앞섰고, 연간 생산에서 세계 최고 기록을 수립했다. 또 1984년 3월 한국 최초로 컬러텔레비전을 생산해 두각을 나타냈다.

1980년대부터 삼성전자는 반도체, 컴퓨터 등 산업용 제품에 주력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특히 1982년 가을에 창립한 삼성반도체통신은 현재 전 세계 시장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삼성의 신화를 열게 해준 중대한 시작이었다.

물론 여건은 좋지 않았다. 대다수가 삼성의 반도체 산업 진출을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봤지만, 1983년 삼성은 마침내 국내에서는 최초로, 국제적으로는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 번째로 64KD램 개발에 성공한다.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알아본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반도체 직접 기술은 1983년에서 1994년까지 10년 동안에만 무려 4000배가 진보했다”고 했다. 실제로 이건희는 일본업체들이 투자를 머뭇거릴 때 투자를 감행하는 공격 경영을 감행해 1993년 메모리 분야 세계 1위를 달성한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에서 두번째) 11일 세계 최대 바이오의약품 생산 시설인 삼성바이오로직스 제4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왼쪽부터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 이 부회장, 존 림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 최성안 삼성엔지니어링 사장. /사진=삼성전자 제공

이병철-이건희-이재용 3세 경영 시작된 삼성전자

삼성전자의 성공은 단숨에 이뤄지지 않았다. 이건희는 자신의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를 통해 “삼성이 지금은 반도체 메모리 분야에서 세계 1위에 있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남모르는 고통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특허 분쟁에 휘말려 미국의 TI사에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기도 했고, 가격 경쟁력에서 삼성보다 앞선 일본 기업들이 제품을 세계 시장에 값싸게 팔아 반도체 가격이 폭락해 1985년부터 2년 간 2000억 원에 이르는 손실을 입기도 했다는 설명이다.

이후에도 삼성전자의 부침은 계속 됐다. 최근 들어서는 이재용 회장이 국정농단 사건에 휘말려 사법 리스크에 시달려야 했고, 여전히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회계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오너 리스크를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이재용 회장 시대가 시작되면서 이병철-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진 삼성전자의 3세 경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삼성의 초석을 다진 이병철, 이를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시킨 이건희, 그리고 이 모든 업적을 수성할 이재용 회장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지난 달 27일 회장 직에 오른 이재용 회장은 △기술 중시 △인재 경영 △동행 등 세 가지 비전을 중심으로 삼성을 이끌어 갈 것으로 보인다. 그는 별도의 취임식 없이 경영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