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일선 경찰, 밀린 신고 대응에 열중…경찰청장, 현장 모르니 핵심 잘못 짚었다는 비판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기 4시간 전부터 압사를 우려하는 112 신고가 총 11건 접수되었지만 경찰이 부실 대응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태는 '경찰 책임론'으로 옮겨붙고 있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지난 1일 이와 관련해 사고 사흘만에 대국민 사과를 했을 정도다.

문제는 일선 경찰들의 여론이다. 경찰의 안이한 대응을 사실상 인정한 지휘부 입장과 다른 맥락의 증언이 쏟아지고 있다.

직장 인증을 통해 등록하고 자신의 업무 사정을 익명으로 기고하는 블라인드 게시판에 올라온 현직 일선 경찰들의 글을 살펴보면, 이번 이태원 사고에서 경찰의 실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달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11월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출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지난 1일 블라인드 게시판에 잇달아 올라온 현직 경찰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번 이태원 사고에서 112 신고가 11건 접수되었지만 현장에서 경찰이 실효성 있게 대응하지 못한 구조적 이유가 확인된다.

바로 경찰 운영의 한계·전례에 따른 안이한 인식·안전의식 실종, 이 세가지다.

먼저 사고 당일 현장을 맡았던 이태원파출소는 비번 근무자들까지 총동원해 30명 정도 근무했다고 전해졌다. 10명 초반대인 평소 인원에 비하면 3배에 가까운 숫자가 투입된 셈이다.

문제는 112 신고건수다. 사고 지역 압사 우려 신고 11건이 전부가 아니었다. 블라인드 게시판에서 현직 경찰이 밝힌 내부망 글(작성자 1******)에 따르면, 사고 당일 야간의 112 신고건수가 400건 이상으로 감당 불가능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다만 이날 교통경찰들은 도로에서 통제 중이었고 파출소 근무자들은 다른 신고를 처리하는 중에도 틈틈이 해당 지역에 대해 해산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라인드 게시판 글에 따르면, 압사 우려 신고 또한 매해 있었다고 한다. 글은 이번 할로윈 기간에 앞서 용산경찰서에서 서울경찰청에 기동대 경찰병력을 요청했으나 지원이 없었다고 전했다.

블라인드 게시판의 또다른 글(작성자 청**)은 이태원역에 있는 신고자가 112를 눌러 압사사고 위험이 있다고 신고하면 상황실에서 이태원역과 가장 가까운 이태원파출소로 지령하는 구조라며, 112 상황실 직원들은 이태원의 긴급한 상황을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서울 권역내 하루 신고 건수가 1만건, 주말 1만5000건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압사 사고 우려가 있다는 신고자의 신고는 1만5000건 신고 중 1건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 윤희근 경찰청장이 11월 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현안 보고에 앞서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현직경찰인 작성자 청**는 글에서 "인원이 너무 많아 통행 안된다, 차량이 너무 밀린다 등의 신고 접수는 연말, 연초, 크리스마스, 명절 연휴 항상 빗발치는 신고 유형"이라며 "무엇보다 조치가 불가능한 이유는 신고 받아 출동한 경찰관 2명이 매우 바쁘고, 그 신고 뒤에 밀린 신고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작성자 청**는 "이태원은 서울경찰청 관내에서도 손꼽힐만큼 신고가 많은 곳"이라며 "마약-성폭행-주폭 등 직접 발생한 범죄사건을 처리해야 할 뿐더러 경찰 무전에선 빨리 마무리하고 다른 신고에 출동을 가라고 지령한다"고 전했다.

그는 "바로 이것이 11번의 신고를 받고도 참사를 막지 못한, 아니 참사를 막을 수 없는 절대 불변의 구조적 과정"이라며 "14번의 보고와 결재라는 과정을 거쳐야 인원 통제가 가능한 기동대 협조를 받았을 것이고, 각 단계에서 한곳이라도 의견 동의가 되지 않으면 이 역시 불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그는 경찰청장의 발언에 대해서도 '핵심을 잘못 짚었다'면서 "현장을 모르니 신고 대응이 어쩌니 저쩌니 그런 말을 하는 것"이라며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경찰 창설 이래 한번도 해소된 적 없는 절대적 인력부족, 경직되고 수직적 조직 문화, 첨탑형 계급구조에 따른 쓸데없이 많은 결재라인, 하위직 공무원의 재량권 부재 등 아주 고질적이고 구조적 문제"라고 밝혔다.

   
▲ 10월 30일 오후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럽 출장 도중 급히 귀국해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인근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사고 당시 2만5000명 운집한 윤석열 대통령 퇴진 집회에 서울 시내 거의 모든 기동대가 차출됐다. 그 4배 이상 밀집도가 높은 이태원에는 단 한 명의 기동경찰이 없었다.

주최자가 없는 이태원 핼러윈 데이에 질서 유지 명목으로 경찰 기동대가 깔릴 수 있었겠느냐는 근본적 질문은 남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번 압사 사고의 결말을 알고 나면 경찰의 대응 문제는 꼼꼼히 따져보고 향후 사전 예방 대책에 반드시 넣어야 하는 핵심이다.

이번 이태원 사고는 아직 진상 규명 중이다. 경찰이 오직 사실관계에 입각하여 엄정하게 수사하고 결론 내리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