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동건 기자] 경쾌하고 섹시한 범죄물의 대가 류승완 감독의 오랜 팬으로서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밀수'라는 타이틀이 주는 흥미로움이 그 가치를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전략적으로 돌아가야 할 판은 치밀하게 짜이지 않았고, 인물 간 유기적 끈적함이 충분치 않다.

'밀수'는 바다에 던져진 생필품을 건지며 생계를 이어가던 해녀들이 큰 판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김혜수, 염정아가 밀수판에 뛰어든 해녀 역을, 조인성이 전국구 밀수왕 권 상사 역을, 박정민이 장도리 역을, 김종수가 세관 계장 이장춘 역을, 고민시가 정보통 다방 마담 고옥분 역을 맡아 얽히고설킨 힘겨루기를 선보인다.


   
▲ 사진=영화 '밀수' 스틸컷


영화에서는 1970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주축이 되지만 '밀수'를 여성영화로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 선악 구도를 성별로 나눠 배치했을 뿐 여성 해방이나 투쟁 등 특별한 이데올로기를 담아낸 건 아니기 때문이다. 여성영화는 여성 고유의 담화를 형성하거나 의식을 이야기하며 여성을 위한 영화로 기능해야 한다. 

해녀로 대표되는 민초들이 범죄 현장의 한가운데에 던져진 모습을 그린 건 색다른 시도다. 뜨거운 선혈이 낭자하면서도 러닝타임 내내 신선한 분위기를 잃지 않는 점도 분명 오락영화로서 큰 미덕이다.

다만 세력 싸움에 끼어 여러 피해를 입었던 여성들이 행위적 주체로서는 뒤로 물러나있는 모습이어서 결말에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크지 않다. 수중에서 해녀들의 활약이 도드라진다고는 하나 상대의 산소통을 끊거나 상어가 처리하게 하는 등의 방식으로 부드러운 권선징악을 택하고, 무식한 육탄전에는 결코 끼어들지 않는 모습이다. 

해녀들의 모습은 상대의 힘을 흘려보내기만 하는 태극권 같고, 소시민의 순결함과 무고함만을 강조한 나머지 극적인 효과를 포기하게 한다. 생(生)을 위해 조금 더 억척스럽고 강인해도 된다. 건전한 수비대 활동이 되지 않아도 관객들은 이들을 지지했을 테다.

개성 가득히 쌓아올린 남성 캐릭터들은 쟁취에만 눈이 멀어 알아서 자멸하고, 여성 캐릭터들은 잔꾀와 임기응변만으로 최후의 승자가 된다. 이 속에서 범죄물 특유의 전략적인 쾌미나 물고 물리는 힘겨루기의 위력은 퇴색된다. 좋은 재료들이 충분히 어우러지지 못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 사진=영화 '밀수' 스틸컷


드라마를 견인하는 스타플레이어들의 힘은 묵직하다. 각각의 캐릭터를 보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그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건 장도리를 연기한 박정민. '헤어질 결심'(2022)에서 스쳐갔던 불량배의 모습이 생경하고도 신선했는데, '밀수'에서 그러한 모습을 최대한도로 확장해 입체적 재미를 선사한다. 나사 빠진 모습으로 웃음 코드까지 매끄럽게 가져가는 활약은 단연 '밀수'의 키 플레이어라고 칭할 만하다.

'밀수'가 해양 범죄 장르라는 바다에서 건져올린 가장 큰 성과는 무엇보다도 배우들의 얼굴이다. 작품의 오리지널리티보단 배우들의 얼굴로 '밀수'의 잔상이 오래 남을 듯하다.


   
▲ 사진=영화 '밀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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